[이왕휘 칼럼] 美·中 '디커플링'과 '리커플링' 사이

2021-10-12 06:01

·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통상정책의 기조가 대치에서 대화로 선회하고 있다. 10월 6일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양제츠 중국 외사담당 국무위원은 스위스 취리히 회담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연말에 화상으로 개최하는 데 합의하였다. 3일 뒤 미국무역대표부(USTR) 캐서린 타이 대표는 중국 국무원 류허 부총리와 화상으로 통상 현안을 논의하였다. 미국은 2020년 1월 1단계 무역합의의 조속한 이행을 촉구하고 중국의 비시장적 불공정 무역 정책에 대한 개혁을 촉구한 반면, 중국은 무역전쟁 이후 미국이 부과한 보복관세와 제재를 해제하고 중국의 경제발전 모델과 산업정책에 대한 불간섭을 요구하였다. 회담 결과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양측이 실용적이고 솔직하며 건설적인 의견 교환을 통해 이견을 해소하기로 합의하였다는 점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연이은 미·중 고위급 회담은 무역전쟁 이후 계속 악화되어온 통상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사실 이번 회담이 성사되기 전부터, 미국 통상정책을 관장하는 상무부와 USTR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사하였다. 지나 러몬드 상무장관은 지난달 24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보도된 인터뷰에서 시장의 규모 때문에 미국은 중국과 반드시 교역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화웨이를 비롯한 첨단기술 기업에 대한 제재는 유지하지만, 미국의 제조업을 부흥시키는 데 필요한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서는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러몬드 장관은 미·중 비즈니스 관계 개선은 상호이익을 통해 국가안보와 인권 문제를 둘러싼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기대를 피력하면서 해외에 있는 미국 기업 대표들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 신호는 이달 4일 발표된 USTR의 네 가지 대중 통상정책 기조에서 더욱 분명해졌다. 첫째, 미국은 1단계 무역합의의 이행을 압박하기 위해 중국과 협상을 재개할 것이다. 둘째, 미국은 대중 보복관세의 경제적 피해를 완화하기 위해 관세면제 조치 절차를 개시할 것이다. 셋째, 미국은 1단계 합의에 포함되지 않은 중국의 국가중심적이고 비시장적인 불공정 정책과 관행의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혼자서가 아니라 동맹국 및 국제기구와 함께 중국을 압박할 것이다.

언뜻 보면, 이 기조는 강경론과 온건론의 어정쩡한 절충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재보다는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첫 번째만이 온건론에 속한다. 반면 보복관세의 철폐를 거부한 두 번째와 불공정 무역의 개선을 강조한 세 번째는 강경론의 핵심 의제이다. 일방주의가 아니라 다자주의를 통해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네 번째도 온건론보다는 강경론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통상정책이 트럼프 행정부 2기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런 평가를 불식시키기 위해 타이 USTR 대표는 지난 4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연설에서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차이점을 설명하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탈동조화(decoupling)를 목표로 했던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재동조화(recoupling)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무역을 완전히 단절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동조화는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제품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다는 데 중점을 둔다. 이런 맥락에서 타이 대표는 중국과 긴장관계보다 오래가는 공존(durable coexistence)이 미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대안이라고 주장하였다.

탈동조화에 비해 쉽지만, 재동조화도 단기간에 달성할 수 있는 과제는 아니다. 무역전쟁 발발 이후 미국의 대중 교역은 약간 줄어들었지만 무역적자는 감소하지 않고 있다. 보복관세와 제재에도 불구하고 지난 8월 대중 무역적자는 2019년 7월 이후 최대로 증가하였다. 이렇게 무역불균형이 빨리 해소되지 않는 근본적 이유는 미국의 제조업 공동화에 있다. 미국 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품목이 계속 줄어들었기 때문에, 미국 기업과 소비자는 중국산 제품을 수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가중되면서 중국산 상품에 부과된 보복관세의 철폐가 거론되고 있다. 관세가 철폐되면 수입품 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에, 물가상승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USTR은 관세 철폐에 반대하고 있다. 관세가 중국과의 협상에서 가장 효과적인 압박 수단이기 때문이다. 차선책으로 관세 면제 조치가 검토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0년 코로나19 위기 발생 이후 방역과 치료를 위해 여러 차례 중국산 의약품에 대한 관세를 면제한 바 있었다. USTR은 지난 5일 산업부품, 온도조절기, 의약품, 자전거, 의류 등을 포함한 549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면제 검토 절차를 공고하였다.
대통령의 무역촉진권한이 지난 6월에 만료되었다는 점도 바이든 행정부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경우 대통령이 협상을 체결하고 의회는 협상 결과에 대한 수정 없이 비준만 결정한다. 반대로 이 권한이 없을 경우 대통령은 협상 과정에서부터 의회와 협의해야 한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같이 규모가 크고 참가국이 많은 다자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할 때, 이 권한은 협상의 효율성을 제고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인 노동자와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통해 미국 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기 전까지 새로운 FTA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이 권한의 연장을 포기하였다.

중국이 지난달 17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참가를 신청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무역촉진권한 포기가 중대한 실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중국이 단시일 내에 CPTPP에 가입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가입을 위해서는 중국은 산업통상정책을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하는 것은 물론 기존 회원국들 전체의 동의를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도·태평양전략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과 호주가 미국의 승인 없이 중국의 가입을 용인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렇지만 다른 회원국들은 최대교역국인 중국의 입장을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중국이 무역질서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의 CPTPP 참가가 불기피하다. 무역촉진권한이 없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 임기 내에서 협상을 완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동맹국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첨단기술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한국, 일본, 대만은 물론 유럽연합(EU)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달 미국, 영국, 호주가 결성한 안보협의체인 오커스(AUKUS)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의 반발을 야기하였다.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지원받기로 한 호주가 프랑스와 체결한 400억 달러 규모의 잠수함 건조 계약을 파기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정책도 동아시아 동맹국들에 막대한 부담이다. 9월 23일 반도체 부족을 타개하기 위한 공급망 점검 회의 직후, 상무부는 공급망 병목 현상을 파악한다는 명분으로 참석 기업에 45일 내로 반도체 공정·기술·고객·영업 정보 등 총 14개 항목을 자발적으로 제출하라고 요구하였다. 상무부는 해당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협조하지 않을 경우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동원해 기업의 정보 제출을 강제하겠다고 위협하였다. 삼성전자는 자료를 준비하고 있는 반면, 대만 TSMC는 현재까지 제출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만약 DPA를 통해 TSMC를 굴복시킨다면, 동맹국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통상정책에 자발적으로 협조할 가능성은 사라질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대 국제학부 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