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NA] 동남아 스타트업, 美 SPAC 상장 움직임 확산

2021-10-10 14:18
거액의 자금조달, 높은 신용도 획득 가능하기 때문

[싱가포르의 배차서비스 그랩은 SPAC과의 합병을 통해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한다는 계획이다. (사진=그랩 제공)]


동남아시아의 대형 스타트업들이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와 합병을 통해 미국시장에 상장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SPAC 상장은 통상적인 방법보다 절차의 간소화・신속화를 도모할 수 있으며, 거액의 자금조달 및 투자가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역내 거래소간에도 SPAC 상장을 허용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싱가포르 배차서비스 그랩은 지난 4월, 미국 투자회사 알티미터캐피탈의 SPAC인 알티미터 그로스 코프와의 합병을 통해, 미국 나스닥 시장 상장계획을 공표했다. 부동산정보포털 프로퍼티구루도 지난 7월, 미국 상장사 SPAC 브릿지타운2홀딩스와 통합,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다고 밝혔다.

프리마켓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캐러셀 그룹(carousell group)도 SPAC를 통한 미국 상장을 검토중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신흥바이오기업 미렉세스(MiRXES)도 미국에서 SPAC 상장을 위해 협의중이라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중고차 판매사이트를 운영하는 말레이시아의 카섬, 인도네이사의 여행사이트 운영사 티켓닷컴, 베트남의 IT기업 VNG코퍼레이션 등 싱가포르 이외의 동남아 기업들도 이와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동남아시아 스타트업들이 대거 미국에 SPAC 상장을 추진하는 이유는 세계의 SPAC시장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거액의 자금조달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랩은 미국에서 SPAC 상장을 통해, 최대 45억 달러(약 5009억엔)의 자금조달을 기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싱가포르거래소(SGX)의 올해 신규주식공개(IPO) 최고자금조달액은 9월 30일까지 3억 1437만S달러(약 258억엔)로, 미국과의 갭이 실제로 매우 크다.

역대 대형 스타트업이 미국 상장을 추진하는 또 다른 이유는 ‘투자자의 보증서’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스위스와 싱가포르에 있는 비지니스스쿨인 국제경영개발연구소(IMD)의 하워드 유 교수는 NNA에, “미국 주식시장 상장이란 자금조달만 할 수 있는게 아니라, 회사의 신뢰성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SPAC과의 합병을 통해 미국 상장에 성공하면, 투자가로부터 ‘골드 스탠다드(투자가가 요구하는 기준)’를 충족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역내 증권거래소는 대형 스타트업들에게 미국과 본국에 이중상장을 희망하고 있으나, 본국에 먼저 상장했다 해도 미국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지위’를 획득할 수는 없다. 먼저 미국에 상장하게 되면, “향후 본국에서도 상장 등을 통한 자금조달이 용이하다”(유 교수)고 한다.

미국 투자가들이 투자처를 다각화하기 위해 아시아의 스타트업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도 아시아 기업들의 미국 상장 증가의 한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 매력적인 출구전략
SPAC 상장이란 투자가가 SPAC 설립 후 상장한 가운데, 다른 기업을 인수, 그 기업과 합병하는 수법. SPAC 자체는 실태가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업의 IPO와는 달리, 상장까지 준비기간이 짧고, 심사도 간소화되어 있다.

유명한 투자가가 SPAC을 조성하거나, 신종 코로나 사태로 실적전망이 불투명해져, 통상적인 IPO로는 상장심사 등에 많은 시간이 소요됨에 따라, SPAC 상장이 지난해부터 점차 증가하고 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SPAC을 통한 상장은 매력적인 출구전략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울러 코로나 사태로 인한 과잉유동성을 배경으로, 주식시장에 자금유입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형 회계사무소 언스트&영(EY)은 글로벌 IPO 조사에서, “주식시장 유동성 증가가 SPAC 상장 증가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베이커 맥킨지 법률사무소가 공표한 올해 상반기 통계에 의하면, SPAC 상장의 세계적 중심지인 북미에서는 SPAC의 IPO 건수가 322건으로, 지난해 연간 248건을 이미 크게 웃돌고 있다.

■ 싱가포르도 SPAC 상장 개시
아시아의 증권거래소들도 유망한 스타트업의 상장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싱가포르, 홍콩, 인도네시아에서는 SPAC 상장을 허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싱가포르거래소는 9월 초순, SPAC의 메인보드(제1부) 상장 신청접수를 개시했다. 시가총액이 최소 1억 5000만S달러의 SPAC 상장을 허용한다. 현지 매체에 의하면, 아시아의 주요거래소 중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한 거래소는 싱가포르가 최초다.

싱가포르 통상산업부는 9울 중순, 급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의 상장을 지원하기 위해, 이와 같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에쿼티 파이낸스(신주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지원책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EY는 향후 SPAC 상장 전망에 대해, “미국 시장이 앞으로도 글로벌 중심지가 되겠지만, 싱가포르, 홍콩, 인도네시아, 런던, 프랑크푸르트, 암스테르담 등의 거래소에서도 SPAC 상장이 확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역내 대형 스타트업들의 SPAC 상장 대상국이 향후 다변화할지 여부는 각 지역 거래소가 얼마나 상장유치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