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런 "미국 디폴트 사태 땐 '경기침체' 위험"...인프라법, 축소하나?

2021-10-06 17:43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미국 연방정부의 디폴트(채무 불이행·국가 부도) 사태가 현실화할 경우 '경기 침체(recession)'를 피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5일(현지시간) 미국 경제전문매체 CNBC에 출연한 옐런 장관은 미국 의회의 연방정부 부채한도 증액 논의에 대해 "이달 18일을 '데드라인(dead line·마감일)'으로 보고 있다"면서 "(미국) 연방정부의 청구서를 지불할 재원이 부족한 상황에 처한다면 파국(catastrophic)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옐런 장관은 이어 "이는 물론 경기 침체도 야기할 것이라 확신한다(fully expect)"면서 "미국 국채는 오랫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져 왔지만, 기한이 지나 청구서를 지불하는 데 실패한다면 이는 정말로 재앙적인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출처=유튜브·CNBC]

기술적으로 경기 침체는 경제 성장률이 2개 분기 이상 역성장할 경우를 일컫는데, 따라서 의회가 시한 안에 부채한도 증액에 실패하고 미국 연방정부가 디폴트를 선언할 경우 이 충격이 최소 2개 분기 이상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옐런 장관은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채권)가 미국 달러화에 대한 일종의 준비금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부채한도 증액 시도가 실패해 향후 미국 재무부가 의회가 설정한 부채한도(28조4000억 달러·약 3경3600조원)에 맞춰 보유 국채량을 줄이게 될 경우, 이는 미국 달러화에 대한 수요를 약화시켜 달러화의 국제 기축 통화 위상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현재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 규모는 28조7800억 달러인 상황이며, 지난 7월 30일부로 후속 조치 없이 의회의 부채한도 적용 유예 기한이 만료하자 미국 재무부는 8월부터 비상수단을 활용해 국채와 그 이자를 지불하기 위한 재원을 조달하고 있다.
 
하지만 옐런 장관은 해당 조치가 임시 방편이기 때문에 이달 18일쯤이면 재무부의 모든 보유 현금이 고갈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특히 미국 연방정부의 디폴트 사태가 미국 달러화의 위상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은 전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특별 연설에서 했던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연방정부의 디폴트 선언이 "미국 경제에 '유성이 충돌하는 것'과 같은 대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면서 "이는 (미국의) 경제를 절벽으로 몰아넣고 미국 국채의 안전성을 약화시켜 국제 통화로서 달러화의 지위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그는 디폴트 선언으로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각종 대출의 이자율이 높아지고 사회 보장 혜택을 제공하지 못하게 되는 등 일반 시민의 생활에도 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 우려하며 해당 논의에 대한 공화당의 책임감 있는 태도를 촉구했다.
 
다만, 야당인 공화당은 연방정부의 부채한도 증액 논의를 바이든 행정부의 역점 사업인 인프라 투자 계획과 엮으며 해당 방안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전날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상원 민주당은 부채한도 상한법을 처리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공화당의 협조가 필요하지 않다"면서 여당의 단독 법안 처리 기회(상원의 예산조정 절차)를 부채한도 상향에 사용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와 여당인 민주당으로선 3조5000억 달러 규모의 2차 인프라 투자 법안의 전체 규모를 축소하거나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당초 민주당 측은 3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 2차 인프라 투자 예산안에 예산조정 권한을 발효하고, 부채한도 상향 법안은 양당의 합의를 통해 표결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상태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기 위해선 정원 100명 중 최소 60명의 찬성표가 필요하며, 예산조정 권한을 발동할 경우에는 기준이 과반(50명) 이상으로 줄어든다. 현재 상원은 여야가 동수(각각 50석)를 이루고 있기에 민주당은 예산조정 절차로 단독 표결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부채한도 상향 시도에 예산조정 절차를 사용한다면, 2차 인프라 예산안은 입법에 실패하거나 규모가 상당 부분 축소할 수밖에 없다. 공화당뿐 아니라 조 맨친·커스틴 시네마 상원의원 등 민주당 중도파도 해당 법안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맨친 의원의 경우 해당 예산안의 규모를 1조5000억 달러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이에 따라 이날 백악관과 민주당 측은 부채한도 상향을 위해 향후 2차 인프라 투자 예산안의 규모를 2조 달러대로 축소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타협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날 미시간주를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국가 경쟁력을 잃을 위험에 처했으며, 인프라 투자에 반대하는 것은 미국의 쇠락에 공모하는 것"이라면서 중국을 지목하며 "다른 나라들은 속도를 내고 있는데, 미국은 뒤처지고 있다. 우리는 속도를 재설정해야 한다"고 말하며 의회와 시민들의 인프라법 지지를 호소했다.

아울러, 같은 날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 지도부와 하원의원들과의 면담에서 당초 10년간 3조500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던 법안을 2조3000억 달러 이하로 줄이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당내 진보파 세력은 축소 규모에 대해 2조5000억∼2조9000억 달러 수준을 제시했으며, 민주당 지도부는 이달 31일을 법안 처리 데드라인으로 설정했다고도 전해졌다.
 
한편, 이날 옐런 장관은 일각에서 제기한 1조 달러 가치의 '백금동전(Platinum Coin)' 발행안을 일축했다. 이에 대해 그는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도 없다"면서 "백금동전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부채를 갚기 위한 돈을 새로 찍어내라고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앞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역시 디폴트 방지를 위해 연준의 발권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는 미국 달러화 가치를 내리고 연준의 시장 통제력을 약화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사진=AF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