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통통 튀는 탁구공 같은 주영대의 인생, 탁구를 통한 그의 인생 반전 이야기

2021-10-06 00:10

 

2020도쿄패럴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주영대.

그는 한국 후배 선수인 김현욱과 붙은 남자 탁구 단식 결승에서 3대1로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사실 그는 원래 체육교사를 준비했지만 대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로 인해 장애를 얻어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에 좌절했지만 다른 장애인들과 소통을 하며 다시 일어났고 웹디자이너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복지관에서 우연히 탁구를 시작하게 됐고 이를 통해 새로운 꿈을 갖게 됐다. 2016년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고 2016년 리우 패럴림픽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로부터 5년 후 도쿄 패럴림픽대회에서는 금메달의 꿈을 이뤄냈다.


 

[사진= 주영대 선수 제공/ 주영대 선수]


Q. 이번 올림픽 어떠셨나요?

A. 아무래도 이번 올림픽은 코로나 때문에 준비도 많이 못했던 것 같아요. 6개월 정도 쉬고 그래서 ‘올림픽이 열릴 수 있을까’ 생각도 많이 해서 큰 기대를 안하고 갔는데요. 근데 운이 좋게도 메달을 딴 것 같아요(웃음).

Q. 금메달을 딴 순간 들었던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A. 처음에는 사실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요. 부모님이 “이번에는 몸이 아파서 운동을 많이 못했으니까, 몸 건강히만 다녀와라. 메달 생각하지 말고”라고 하셨는데 그 생각이 제일 많이 떠올랐어요. 올림픽 가기 2주 전에 위에 출혈이 생겨서 일주일 정도 입원했거든요.

Q. 한국 선수끼리의 결승전이라서 더욱 흥미진진 하게 봤는데요. 경기가 끝난 후 김현욱 선수에게 어떤 말을 해줬고, 김현욱 선수는 주영대 선수에게 어떤 말을 했나요?

A. 보는 사람은 부담 없이 볼 수 있는데 저희들은 굉장히 부담감이 있었어요. 서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어떻게 시합을 해야될까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었어요. 저는 올림픽이 두 번째고 김현욱 선수는 첫 번째이기 때문에 김현욱 선수가 긴장을 많이 하는 바람에 실수를 많이해서 제가 운 좋게 이긴 것 같아요. 그리고 끝나고 나서 저는 김현욱 선수한테 ‘수고했다’고만 얘기했고 김현욱 선수도 “고생많으셨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끝나고 숙소에 들어와서는 ‘누가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따던 태극기 세 개를 올려서 행복하다’고 서로 칭찬했어요(하하).

Q. 금메달 획득 이후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A. 굉장히 전화도 많이 받았고요. 인터뷰도 많이했고 리우페럴림픽 때는 은메달을 땄는데 그때보다는 세삼 위치가 많이 올라간 것 같아요(크크).

 

[사진= 주영대 선수 제공]


Q. 예능출연 연락도 많이 왔나요?

A. 아니요. 예능출연 연락은 없었고, 라디오와 TV 인터뷰만 했어요.

Q. 리우올림픽과 이번 도쿄올림픽은 어떻게 다르던가요?

A. 리우올림픽은 올림픽이 처음이기 때문에 긴장도 많이하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처음이라 결승전에서 너무 자신만만 했던 것 같아요(하하). 그래서 너무 자신만만 하다 보니까, 실수를 많이해서 결승전에서 역전패를 했던 것 같고요. 이번에는 몸이 아파서 운동을 많이 못했던 게 있어서 마음을 비우고 갔던 게 금메달을 따는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웃음).

Q. 꿈을 잃었지만 탁구를 통해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주영대 선수에게 꿈이라는 단어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질 것 같아요.

A. 사고로 다치기 전에는 경상대학교 체육교육과를 다니고 있었어요. 운동도 좋아해서 체육교사가 꿈이었는데 다치고 나서 꿈을 이룰 수가 없어서 굉장히 좌절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4~5년 동안은 집 밖을 나오지 못했어요. 사람들 시선이 너무 두려웠고 내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많이 떨어져 있던 와중에 진주에서 복지관을 개관해서 탁구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제가 손을 못 쓰는데 탁구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가보니까 손에 붕대를 묶어서 탁구를 치더라고요. 그래서 ‘아,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그때부터 재활의 목적으로 탁구를 시작한 게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사진= 주영대 선수 제공]



Q. 특수학교에서 교사의 꿈을 이룰 수도 있지 않았나요?

A. 그런 생각도 안 해본 건 아닌데요. 특수체육교육과를 다녀볼까 라는 생각도 했는데 그것보다 지금은 탁구에 올인을 하고 은퇴 후에 그렇게 하는 것도 고민을 해봐야 될 것 같아요(웃음).

Q. 비장애인 선수들의 경우는 40대가 되면 은퇴를 고민하는데 장애인 선수들의 은퇴 나이는 그것보다 늦더라고요.

A.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에 비해서 체력이 많이 딸려요. 근데 장애인 선수들은 아무래도 후천적 장애인이 많기 때문에 운동을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의 나이로 늦게 시작해요. 저도 마찬가지로 30대 후반에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장애인 스포츠는 비장애인 스포츠에 비해서 격렬하지 않기 때문에 꾸준히 몸만 유지하면 오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Q. 사고가 나기 전 탁구를 했을 때와 사고가 난 후 탁구를 할 때 달랐던 점은 뭔가요?

A. 사고가 나기 전에는 탁구를 안 좋아했어요. 사고 나기 전에는 테니스를 했는데 탁구처럼 실내에서 하는 운동 대신 테니스처럼 밖에서 하는 운동을 좋아했었는데 다치고 나니까, 테니스를 못하고 할 수 있는 게 탁구밖에 없었는데요. 탁구를 시작하고 나니까 쾌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탁구를 더 좋아하게 됐어요.

Q. 간절했던 금메달의 꿈을 이뤘습니다. 앞으로의 꿈은 뭔가요?

A. 탁구에는 그랜드슬램이라고 있어요. 패럴림픽, 올림픽, 세계선수권 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를 모두 휩쓸면 그랜드슬램이라고 부르는데 다른 건 다 이뤘는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아직 금메달이 없어요. 은메달만 따서 내년에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서 그랜드슬램을 이루고 싶어요.

Q. 탁구가 주영대 선수에게 준 새로운 인생은 뭔가요?

A.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준 스포츠라고 생각해요. 탁구를 접하기 전만 해도 제 인생이 너무 따분하고 재미도 없고 살아가는 희망도 없었는데 탁구를 하면서 경남 대표가 되려고 열심히 했고 경남 대표가 되니까, 국가대표가 되고자 노력을 했고요. 인생을 살아가는 목표가 생기면서 제2의 인생을 되찾은 것 같아서 탁구가 제2의 인생을 찾아준 스포츠라고 생각해요(하하).

Q. 이번에 특히 올림픽에서 삐약이 신유빈 선수가 눈에 띄었는데 남다르게 봤을 것 같아요.

A. 신유빈 선수가 나이도 어리고 처음인데 처음 나가는 올림픽 무대에서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사실 저도 리우올림픽 때 정신이 없었어요. 이번에 두 번째 나가다 보니까 올림픽이 뭔지도 알겠고 여유도 생겼는데 한번 올림픽을 나가면 쭉쭉 성장을 하는 것 같아요.

Q. 리우올림픽 이후 얼마나 성장을 했다고 보시나요?

A. 주위의 시선도 그렇고 제 스스로 부담감도 많이 생겼어요. 제가 세계 랭킹1위 이다 보니까, 다음 대회에서는 꼭 금메달을 따야 된다는 압박감이나 주위에서 “세계 랭킹 2위니까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야 된다”는 강박으로 인해서 부담감이 있었어요.

Q. 주영대 선수에서 메달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뭔가요?

A.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더 값진 선물이었는데요. 사람이 욕심이 생기다 보니까, 금메달이라는 욕심도 생겼어요(크크). 파리올림픽도 있는데 파리올림픽 때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즐길 수 있는 대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진= 주영대 선수 제공]



Q, 주영대 선수에게 공은 어떤 존재인가요?

A. 탁구에서 공은 자기가 보내고자 하는 위치에 정확하게 보낼 수만 있다면 승률은 거의 100%라고 생각해요. 근데 자기 생각과는 다르게 공이 어디로 튈지 몰라서 공은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할 때 네트에 맞고 들어갈 수도 있고 모서리에 맞고 공이 사라질 수도 있는데 중요한 시기에 그렇게 되면 경기의 흐름을 바꾸거든요. 그래서 공은 행운의 상징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Q. 웹디자이너도 했었다고 들었어요.

A. 사실 다치고 나서 ‘장애인으로서 뭘 할 수 있을까’하다가 처음에 컴퓨터를 배웠어요. 제가 홈페이지 만드는 일을 했었는데 흥미를 느끼다가 복지관에 나가서 탁구 치는 걸 보고 ‘재밌겠다. 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해보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웹디자이너와 탁구를 병행했어요.

Q. 주영대 선수가 생각하는 탁구의 매력은 뭔가요?

A. 성취예요. 자기가 하나의 기술을 사용했을 때 그 기술이 잘 적용돼서 상대방에게 점수를 땄을 때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Q. 장애인 스포츠 행정가로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A. 예전에 경상남도장애인탁구협회 사무국장을 10년 간 했어요. 그러다가 실업팀으로 들어어면서 다른 사람한테 물려주고 지금은 탁구에만 전념하고 있어요.

Q. 불의의 사고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꿈을 찾을 수 있을까요?

A. 일단은 사회로 나와야 돼요. 복지관이든 어디든 밖으로 나와서 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 자신에게 맞는 일이 있을 거예요. 그게 운동이든 컴퓨터든 상관없이. 그렇게 하면 장애를 가졌지만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으니까, ‘밖으로 나와라. 밖으로 나오면 분명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Q. 사고가 나기 전 사회와 사고가 난 후 사회를 겪어보니 어떻게 다르던가요?

A. 사고가 나기 전에는 장애인이라는 걸 잘 몰랐어요. 다리가 불편해서 휠체어를 탄다고만 생각했지 다른 건 전혀 몰랐는데요. 다치고 나서 제일 두려웠던 게 계단이었어요. 계단을 어떻게 올라갈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제일 힘들었던 게 사람들 시선이었는데요. 지금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제가 다쳤을 때만 해도 시선이 별로 안 좋았어요. 그래서 밖을 나오는 게 굉장히 힘들었는데요. 지금은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많이 좋아졌고 장애인 시설도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지금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나 편견들이 지금은 많이 괜찮을 것 같아요(웃음).

Q. 사고가 어쩌다가 나신 건가요?

A. 대학교 1학년 방학 때 시골을 갔는데 운전을 하던 중에 큰 트럭을 피하다가 다쳤어요.

Q. 탁구 외에 해보고 싶은 건 뭔가요?

A. 수영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해보니까 배영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탁구가 안 되면 수영이나 사격을 해보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요.

Q. 올림픽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A. 후쿠시마산 때문에 도시락을 먹었는데 도시락이 너무 지겨워서 식당에 갔는데 폴란드 선수가 다가와서 인사를 하고 같이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서스럼없이 친해지는 게 좋더라고요.
그런 게 인상 깊었어요.

Q. 코로나로 인해서 올림픽이 1년 연기됐는데 경기력에 있어서 달라진 게 있나요?

A. 상당히 많죠. 코로나 때문에 작년에는 1년을 거의 쉰 것 같아요. 훈련도 못하고 시합도 거의 못하다 보니까 실전감각이 없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도 많이 했었는데 다행히 합숙하면서 선수들과 연습도 많이 했는데 저는 중간에 몸이 아파서 운동을 못해서 이번 올림픽은 힘들었던 것 같은데 힘든 와중에 저한테 운이 닿았던 것 같아요.

Q. 다음 올림픽에서 이루고 싶은 게 있나요?

A. 2연패를 이루고 싶은 게 꿈이에요. 그리고 후배들이 대한민국 양궁처럼 금메달을 계속 이어나갔으면 좋겠어요.

Q. 주영대 선수에게 이긴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A. 상대방을 이긴다기 보다 제 자신을 이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탁구를 10년 정도 치고 있는데 상대방이 잘해서 이기는 것보다는 제가 실수를 덜해서 이기는 게 훨씬 더 많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게임에 들어갈 때 ‘실수를 줄이고 나 자신을 이기자’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경기에 임하거든요.

Q. 실수를 했는데 오히려 잘 풀린 경우도 있나요?

A. 실수를 했는데 점수가 되는 경우도 가끔 있어요. 그래서 인생이라는 게 실수를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수도 긍정으로 바꿀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 새로운 꿈을 찾아 달려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A. 사고가 나고 처음에 굉장히 큰 좌절과 분노와 상실감과 제가 뭔가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굉장히 비관적으로 살았어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결코 장애인이 됐다고 포기하지 말고 상심하지도 말고 장애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면 이 사회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회에 나가서 활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