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철의 AI 인문학] ③ 동양 최초의 로봇, 지남거

2021-09-17 00:10

중국 명나라 시대 책 삼재도회(三才圖會, 1609)에 실린 지남거 [사진=위키피디아]


“뿌우~뿌”
뿔 나팔 소리다. 이건 퇴각하라는 소리다. 나팔 소리에 병사들의 시선은 수레 위에 있는 인형에 모였다.
“이쪽이 남쪽이다!”
병사들이 외쳤다. 그리고는 수천명의 병사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지난번, 전투 때, 내 친구는 적진으로 달리다 붙잡혔어. 그땐, 지남거가 없었거든…”
무사히 퇴각해 휴식을 취하던 한 병사가 중얼거렸다.

중국 4대 발명품 중 하나라 불리는 지남거(指南車)는 일종의 나침반 같은 오토마타이다. 이 수레의 인형은 방향이 바뀌어도 항상 남쪽을 가리키고 있어 방향을 쉽게 알기 어렵던 옛날, 전쟁터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광활한 지역에서 치러진 고대 전투에서는 방향을 찾기 힘들었다. 퇴각 명령에 적진으로 달리다가 희생당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전장에서 지남거는 수호신 같은 역할을 했다.

지남거가 동양 최초의 로봇이라 하는 이유는 그 설계가 너무나도 공학적으로 완벽했기 때문이다. 한쪽 방향을 가리키는 나무 인형의 움직임이 자석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교한 목제 톱니바퀴 장치, 즉, 기어가 작동해서 항상 남쪽을 가리키도록 고안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지적도구와 지능장치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유사 이래 인간은 공학이나 천문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지적도구들을 개발해 왔다. 양수기 지렛대, 삼각자, 각도기, 천문도 등이 문명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런 지적도구들은 자율계산과 답을 내놓는 과정이 없다.

반면에 지능장치는 특정 입력값을 넣으면 스스로 작동하여 유저에게 답을 준다. 인공지능의 얼개와 닮아 있다. 지남거를 동양 최초의 로봇이라 하는 이유도 바퀴가 구르는 물리력에 의해 기어가 스스로 작동하여 사람들이 원하는 답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지남거는 중국 고대시대에 해당하는 주나라(周朝, BC 1046~BC 256) 때 주공(周公)에 의해 처음 고안된 것으로 구전되었으나, 근거가 희박하다. 지남거는 3세기경, 삼국시대 때, 위나라의 과학자이며 발명가인 마균(馬鈞, 220~265)이 발명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수운(水運)로봇' 시대의 시작
지금도 디즈니랜드에 가면 '스몰월드'라는 시내 놀이구역이 있다. 배를 타고 동굴처럼 꾸며진 물길이 있고 수변에는 인형들이 움직이면서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표현하고 있다. 얼핏 보면 대단한 기술의 산물로 보인다. 그런데 이 기술이 2000년 넘게 이어져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바야흐로 1세기, 그리스 사람들도 로봇춤에 열광하는 시절이 있었다.

1세기경, 고대 그리스 시대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정교하게 물의 힘으로 운용되는 오토마타, 지금 식으로 말하면, 수운로봇(Waterworks)이 발명되었다. 이 로봇의 발명자는 헤론(Heron, AD 10~AD 70). 그리스 출신의 발명가, 수학자, 기계공학자, 물리학자로 유명한 헤론은 대기압의 힘으로 물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사이펀(Siphon)의 원리를 이용해, 날개를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는 새 모양의 수운로봇을 개발했다.

크테세비오스의 로봇은 물의 낙차에서 얻는 단순동력을 이용했지만, 헤론의 수운로봇은 정교하게 사이펀을 연결해서 더욱 다양한 동작표현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른바 수운로봇 전성시대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고대 최고의 과학자 헤론은 수운뿐만 아니라 풍력 및 수력 오르간, 자동 성수기(聖水機), 자동 개폐기, 자동 연극 장치, 측량기 오도미터(Odometer)와 디옵트라(Dioptra) 등을 발명했다. 헤론은 실용적 공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의 연구는 인간의 실제 생활에 필요한 과학을 탐구하거나 새로운 발명을 통해 과학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헤론의 실용학문은 ‘기체학(Pneumatica)’, ‘기계학(Mechanica)’, ‘측정학(Metrica)’, ‘오토마타(Automata)’ 등과 같은 저서를 통해 전파되었다. 또한 이 저서들에 소개된 다양한 동작 기계장치를 고안하고 실험하여 고대 그리스의 실용 과학을 집대성했다. 또한 헤론은 삼각형 넓이를 세 변의 길이로부터 구하는 ‘헤론의 공식’으로도 유명하다.

헤론의 또 하나 역작은 증기기관이다. 헤론은 증기기관의 효시라 불리는 '에오리아의 공(Aeolipile)' 이라고 불렀던 증기구(蒸氣球)를 발명했다. 이 증기구는 개폐 가능한 관과 속이 빈 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관이 열리면 증기가 안으로 들어갔다가 구의 중심선에 있는 다수의 노즐로 증기가 방출되면서 회전운동을 했다. 헤론의 증기구는 그 당시에는 실용화가 되지 못했으나 동력용 증기기관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헤론의 오토마타는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의 운동논리에 대해 새로운 접근방법을 제시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논리학을 집대성한 오르가논(Organon)에서 생명체가 있는 것들은 자유의지에 의해 동작을 하지만, 무생물들은 자연의 법칙에 의해 작동된다고 했다. 예를 들면, 자연의 이치에 따라 땅이나 흙 같은 고체는 아래로 내려가고, 공기나 불 같은 기체는 위로 향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헤론이 고안한 다양한 원시로봇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두 가지 큰 시사점을 제공했다. 한 가지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인위적 장치에 의해 작동하는 사물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을 실증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자연의 법칙이 아닌 과학의 법칙에 의해 더 대단한 진화를 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정치학(Politics)에서 예견한 “자동화된 사물이 인간 노예를 대체하는 세상” 그리고 “더 이상 인간이 노예가 될 필요가 없는 세상”의 가능성을 헤론이 제공했다는 것이다. 헤론의 발명들로 인류는 자동화된 사물이 만들어 가는 새로운 세상을 열었던 것이다. 그리고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 나가고 있는 지금,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언은 적중하고 있다.

우리가 인공지능과 로봇을 개발하는 것은 우리를 노예와 같은 노동에서 구원해 줄 수 있는 자동화된 사물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기대에는 우려도 따르는 법.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나아가선 우리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던진 교훈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공물 개발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강조 되었다. 결국, 인공지능과 연관된 인문학적 발전이 함께 하지 않으면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고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이 노래하는 새는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생일선물로 줬던 것과 동일합니다.”
스위스의 ‘루즈뮤직’이라는 오르골 전문매장의 설명이었다.

태엽을 감고 버튼을 누르자 화려한 도색이 된 인조새가 아름다운소리를 낸다. 직원이 새장 옆에 있는 화려한 금색 원통 모양의 오르골 스위치를 누르자, 원통이 회전을 하며 ‘엘리제를 위하여’를 청아한 음색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오르골은 작은 핀이 가득 꽂힌 원통형 실린더가 돌아가면서 핀이 금속판들을 터치하면서 스스로 연주하는 일종의 뮤직박스다. 이 실린더는 음악연주를 하는 것처럼 특정 기계를 정해진 순서에 따라 스스로 동작하게 할 수도 있다. 오르골은 프로그램된 기계, 지금으로 말하면, 소프트웨어에 의해 작동하는 로봇이다.

원통형 실린더에 꼽힌 핀은 원통이 회전하면서 연결된 다양한 기관을 터치한다. 이 터치는 일종의 스위치 역할을 해서 보다 큰 힘이나 소리를 내는 식으로 오토마타가 작동하는 것이다. 이를 연결동작으로 구현하면, 음악이 연주되고 오토마타가 다양한 동작을 한다. 지금으로 보면 로봇과 다를 게 없다. 이런 로봇의 원형은 1200여년 전 이슬람 제국에서 바누 무사(Banu Musa) 형제에 의해 시작되었다.

아랍어로 “무사의 아들들”이라는 뜻을 지닌 세 명의 바누 무사들은 9세기경 동서양의 기술을 융합한 천재들이었다. 이 형제들은 헬레니즘 시대의 선구자인 필로와 헤론의 저술물과 중국, 인도, 페르시아 과학자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100개가 넘는 오토마타와 자동기계장치들을 만들었다. 또한, 850년경, 이들은 칼리파의 의뢰를 받아 ‘기묘한 기계장치의 책’을 저술, 오늘날 로봇공학의 초석을 만들었다.

압바스조 왕국의 알마문 왕은 이 형제들에게 연회에서 자동으로 연주하는 오토마타를 주문했다. 그중 대표작이 플룻을 부는 인형이다. 바누 무사들이 만든 사람 크기의 인형은 손가락을 움직여 가며 스스로 피리연주를 했다고 한다. 이 인형의 운지법은 너무나도 정교했다고 한다. 동력은 물론 수력이었다. 수차를 돌려 얻어진 동력이 수많은 핀이 박힌 실린더를 회전시키면서 인형과 연결된 장치들을 터치하면 플룻에 난 구멍들이 프로그램 된 순서에 따라 열리고 닫혔다. 플룻 연주자의 운지법을 그대로 따라했다. 악기를 부는 데는 바람이 필요했다. 수통에 물이 채워질 때마다 바람이 빠져나왔고 그 바람은 플룻의 금관을 통과하면서 아름다운 선율이 되었다.

이와 같이 바누 무사 형제가 만든 인형은 과거의 오토마타가 아니었다. 프로그램화된 동작 순서에 따라 자동으로 피리를 연주하도록 설계된 오토마타, 즉, 인공지능과 하드웨어가 적절히 조화된 로봇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요즘 과학자들 중에는 바누 무사의 오토마타가 소프트웨어 공학의 효시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압바스조 궁전은 로봇왕국이었다. 연못의 화려한 인공나무 위에서는 새 오토마타가 노래를 불렀고, 분수는 시시각각 물줄기를 바꾸면서 쇼를 펼치고 있었다. 오르간은 자동으로 연주되고 있었으며, 음료는 자동으로 채워졌고, 인형소녀가 움직이며 차를 대접했다. 압바스조의 칼리프들은 외국에서 사신이 오면 연회를 베풀며 웅장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오토마타 공연을 통해 군주의 위엄과 우월한 과학을 과시했을 것이다.

요즘, 중동 하면, 우리는 과학과는 먼 지역으로 느낀다. 그러나 천년도 더 된 시기에 중동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이 연구되고 실용화되었다. 그때 노벨상이 있었다면, 아마도 물리학상은 이들 세 형제가 수상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유토피아를 위한 로봇 공학은 이처럼 이슬람 왕국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강시철 휴센텍 대표 [사진=강시철 휴센텍 대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