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백조가 되려 하는 코뿔소 … ‘헝다’ 사태 주목

2021-09-16 18:00

[이진우 GFM투자연구소장]

“사태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국제 형세, 복잡하고 민감한 주변 환경, 엄중한 개혁발전 안정 임무에 직면해 시종 고도의 경계를 유지함으로써 블랙스완과 회색 코뿔소를 예방해야 한다.” 시진핑 주석의 2019년 1월 21일 연설 중 긴장감 넘치는 대목이다. ‘블랙스완(Black swan)’은 발생할 확률은 매우 낮지만 일단 일이 터지면 큰 충격을 주는 위험을 뜻하고, ‘회색 코뿔소(Grey rhino)’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위험을 말한다. 그리고 2년이 지난 뒤인 금년 1월 28일, 시 주석은 공산당 중앙정치국 집체학습에서 발전과 안전을 강조하며 “각종 위험과 도전을 잘 예측해야 하며 각종 블랙스완과 회색 코뿔소 사건에 잘 대비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주문했다. 하늘 같은 당(黨) 주석께서 저렇게 두 번씩이나 언급해주면 관료나 대다수 인민들은 얼마나 감읍하고 조심할까? 그런데, 지난 9월 5일 오전 6시경 국기 게양식 직후 베이징 한복판의 천안문광장에 눈치 없는 검은 백조 한 마리가 나타나 한참 동안 걸어다니다 잡혔다.

여기에서 과연 어떤 현상이 블랙스완에 해당하며 시 주석이 염두에 두고 있는 회색 코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를 따지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지금 중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시스템이 과연 ‘주석님의 한 마디 말씀’만으로 회색 코뿔소의 접근 위험은 완화되고 블랙스완의 출현은 봉쇄될 수 있을 것인가를 의심하는 것이다.

중국 여행의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 몇 번의 여행에서 필자에게 각인된 중국의 인상은 ‘크다(大)’와 ‘많다(多)’이다. 유적지나 유물에서 대단한 예술적 아름다움이나 철학을 발견하기는 어려웠지만 일단 그 어마어마한 크기와 스케일은 인정해줄 만했다. 수다맨으로 기억되는 개그맨 강성범씨가 왕년에 연변총각을 연기할 때마다 들었던 “연변에서는~~”이 그저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중국이 자랑하는 ‘거대한 스케일’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중국의 부동산 시장이나 금융시장에서 그동안 차곡차곡 축적되어 온 거품(bubble)과 부실의 스케일은 어느 정도일까?

하루 종일 지나가는 차량 수를 셀 수 있을 정도의 넓고 멀쩡한 고속도로 바로 옆에 또 길을 닦고, 주민 수 몇 안 되는 깡촌에 30여층의 호화 고층 아파트를 짓고, 그러다 보니 중국 각처에 짓다 만 아파트 단지는 즐비하고, 설령 완공되었다 하더라도 입주민이 없다 보니 유령도시가 되고··· 우리가 지난 수년간 접해왔던 뉴스들이자 저러다 일 내겠는데 싶은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었기에 일종의 회색 코뿔소였다. 그런데 요즘 중국에서는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Evergrande)그룹’의 디폴트 가능성으로 인한 혼란이 정점을 향해 달리는 양상이다.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헝다그룹의 계열사 중에는 자산운용사도 있다. 직원들은 급여 일부를, 납품업체나 하도급 업체들은 자기들이 받아야 할 대금의 일부를 이재(理財)상품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예치하여야 했으니 고속성장은 당연했을 터. 그러나 지금 중국 내 대도시 여기저기에서는 “피 같은 내 돈 내 놔라”며 절규하는 시위대들의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헝다그룹의 부채는 작년 말 기준으로 약 1조9500억 위안(약 350조원), 달러 표시로는 3000억 달러가 넘는다. 거의 ‘리먼 브러더스’급 충격이 예상되는 사안인데, 이건 너무나 뻔한 수순을 걸어왔기에 블랙스완이라고 하기에도 뭣하다.

헝다의 계열사 중에는 ‘차 한 대 팔지 못한 전기차 회사’도 있다. 1년 만에 1000% 넘는 주가 폭등세 끝에 올해 3월 중 74홍콩달러도 찍으면서 860억 달러가 넘는 시가총액으로 테슬라, 도요타, 폭스바겐, 벤츠 다임러 다음으로 자동차 회사 세계 5위에 올랐다. 제너럴 모터스(GM)를 뒤에 세워 버린 것. 그러나 이 헝다자동차의 주가는 9월 15일 현재 3.98홍콩달러로 마감했다. 중국에서는 버블도 저 정도는 되어야 명함을 내밀 수 있고, 주가 폭락이라고 표현할 정도면 저 정도는 빠져줘야 한다.

헝다그룹으로 인한 혼란을 시진핑 주석이 방치하는 정치적 이유 등을 살피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따위 2조 위안 정도? 또 찍어서 막지 뭐' 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다. 이 칼럼을 통해 몇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첫째, 중국의 이러한 상황이 우리에게는 독(毒)이 될 것인가, 득(得)이 될 것인가 하는 점, 그리고 둘째로는 과연 우리에게는 언제든지 검은 백조로 변신이 가능한 회색 코뿔소는 없는가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