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펜트하우스' 유진 "이 도전에 후회는 없다"
2021-09-14 02:06
한때는 '국민 요정'으로 불렸다. 여자 그룹 S.E.S로 데뷔해 '너를 사랑해' '아임 유얼 걸' '꿈을 모아서' '달리기' '저스트 어 필링' 등 내놓는 곡마다 공전(空前)의 히트를 쳤다. '국민 첫사랑' '국민 여동생' '국민 요정'으로 불리던 가수 유진은 드라마 '러빙 유'를 시작으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원더풀 라이프' '진짜 진짜 좋아해' '제빵왕 김탁구' '백년의 유산' '부탁해요 엄마' 등에서 활약하며 연기자로서도 입지를 굳혔다.
결혼과 육아로 긴 공백기를 가진 유진은 '막장극 대모' 김순옥 작가의 신작 '펜트하우스'로 5년 만에 안방극장 복귀했다. 가수 활동의 영향이었는지 단아하고 강직한 성격을 가진 인물을 연기했던 유진은 '펜트하우스' 오윤희 역으로 선악을 넘나드는 인물을 연기하게 됐다.
다음은 유진과 나눈 일문일답
1년여간 '펜트하우스' 오윤희로 살았다. 국내에서는 드라마 연속물(시리즈)이 흔하지 않은데. 끝까지 마친 소감은 어떤가
- 이렇게 길게 촬영한 건 처음이었다. 다행히 걱정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촬영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50부작 드라마는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는데 '펜트하우스'는 아니었다. 힘든 줄 모르겠더라. 시즌제로 찍으며 색다른 재미를 느꼈고 큰 사랑을 받아서 힘든 줄 모르고 찍었다.
5년 만에 안방극장 복귀작이었다
- 오랜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하는 만큼 큰 결심이 필요했다. 작품도 캐릭터도 어렵다고 느껴져서 '잘할 수 있을까?' 고민이 컸는데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이 도전에 후회는 없다. 열심히 했고, 즐거웠다. 드라마 초반만 하더라도 공감대 형성이 부족해 욕도 많이 먹었지만, 점차 그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늘어나게 되더라. 그분들을 보며 힘을 낼 수 있었다. 오랜만에 출연한 드라마가 큰 사랑을 받아서 감사하고 이 역할을 연기할 수 있어서 기뻤다.
오윤희는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선악을 오가는 연기는 어땠나
- 무척 어려웠다. 오윤희라는 인물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삶에 저를 맞추었던 것 같다. 유진으로서는 오윤희를 이해하기 힘들었으나 오윤희화되면서 그의 삶을 점점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노력 끝에 90% 가까이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다행히 실제 저도 엄마기 때문에 윤희가 가진 모성애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가 올바른 모성을 가진 건 아니었지만 딸을 위하는 마음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딸 로나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모든 행동과 장면을 설득할 수 있었다.
매회 충격의 연속이었다. 빠른 전개와 충격적인 반전으로 배우들도 대본을 볼 때마다 놀랐을 것 같다
- 그렇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 대본을 보고 나서야 범인을 알아차렸다. 대본을 받을 때마다 설레고 긴장됐다.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작품의 현장과는 또 다른 재미였다. 이런 건 저도 처음이었다. 배우들끼리도 서로 '누가 범인이냐' '어디서 들은 거 없냐'라고 묻고 나름대로 추리하기도 했다. 시청자 입장에서 보는 것 같았다.
'펜트하우스' 시즌1은 로나 때문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엄마로서 공감하는 바가 있었겠다
- 우리 딸은 너무 어려서(웃음). 미리 경험한다는 마음으로 촬영했다. 저는 사춘기를 겪지 못했기 때문에··· '이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으로 '부디 이렇게 심하게 오지 않기를' 기도할 따름이었다.
오윤희 역은 사건·사고도 많고 감정 변화도 큰 인물이라서 후유증이 있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 후유증은 없었지만, 촬영할 때 쉽지 않았다.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내고 쏟아내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후유증보다는 후련함이 더 컸다.
오윤희의 모든 행동은 '모성'을 기반으로 했다. 연기할 때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는데 실제로 유진은 어떤 엄마인가?
-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지만 어려운 일이다. 저는 '욱' 하는 엄마 같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자꾸만 욱한다. 요즘 제가 욱할 때마다 딸 로희가 동생에게 '엄마 조금 있으면 화 풀릴 거야'라고 하더라. 동생에게 저의 상태를 전달하고 달래는 모습을 보면서 '아, 내가 잘 참지 못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감정 신도 많고 액션 장면도 많았다. 체력적으로는 어땠나
- 체력보다 감정적으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워낙 감정 변화가 크고 몰아치기 때문이었다. 하다 보니 힘든 만큼 재미도 크더라. 체력적으로는 잘 이겨내며 찍은 것 같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배우들끼리 호흡도 잘 맞아 보이던데···
- 배우들과 호흡이 정말 잘 맞는다. 연기할 때마다 느낀다. 천서진(김소연 분)과 대립할 때 어느 정도 감정으로 주고받아야 하는지 척하면 척 알겠더라. 그런 게 신기했다. 누구 하나가 약하거나 강하지 않고 비등하게끔 주고받으며 긴장감을 유발하는 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통하는 순간이 있었다.
'펜트하우스'는 유진의 필모그래피(작품 목록) 중 가장 강렬한 작품이다. 가장 화제성이 높은 작품이기도 하고
- 드라마 자체가 워낙 강렬하니까(웃음). 다른 드라마보다 성취감이 컸다. 어려운 걸 끝낸 기분이랄까? 숙제를 마친 것 같아서 즐거웠다. 어렵게 도전했는데 성공해낸 것 같은 느낌!
'배우' 유진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건 무엇인가
- 연기에 대한 재미다. 그게 가장 크다. 연기가 재미없었다면 때려치웠을 거다. 재미없으면 할 수 없는 일 같다. 처음엔 멋도 모르고 연기를 시작했다. 두 번째 작품부터 '연기가 재밌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계속 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펜트하우스' 전후로 달라진 게 있다면
- 이렇게 파격적이고 센 캐릭터는 처음이다. 앞으로 심심한 캐릭터를 했을 때 재미없게 느껴질까 봐 걱정이다. 사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감정 변화가 크고 휘몰아치는 것보다 정적인 걸 더 좋아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그렇다. 그런데 '펜트하우스' 이후에는 그런 작품이 재미없다고 느껴지면 어쩌나 걱정이다(웃음). 긍정적인 면으로는 '도전 정신'이 생겼다는 거다. '이런 센 캐릭터도 해봤는데 앞으로 뭔들 못하겠어' 싶은 마음이다. 어떤 캐릭터든 기회가 온다면 주저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남편 기태영이 육아를 도맡았다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곤 했는데
- 정말 고맙다. 힘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특히 남편은 육아를 잘하므로 더욱더 힘들었을 거다. 대충하면 덜 힘든데 정말 제대로 하려고 하거든. 촬영하는 동안 미안했다. 남편 덕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제 남편이 작품 활동하면 제가 아이를 돌볼 차례다(웃음).
유진에게 '펜트하우스'는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 기억에 많이 남을 거 같다. 이런 캐릭터를 처음 해봤으니까. 자극적이고 세고 선악을 오가면서 큰 감정 변화를 겪었는데 기억에 남지 않을 수 없겠지. 정말 성취감이 큰 캐릭터였다. 찍고 보니 '이 어려운 걸 해냈구나' 싶더라. 100점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열심히 했고 캐릭터를 공감할 수 있게끔 연기하려고 했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