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직면한 기후 위기, 정치권은 한가하다
2021-09-08 14:11
올여름은 유난히 이상 기후가 잦았다. 예상 밖 폭우와 폭염, 산불은 번갈아 가며 지구촌 곳곳을 거칠게 할퀴었다. 언론은 수십년 만의 홍수, 기록적인 폭염, 산불로 마을이 사라졌다며 기후 위기 실상을 전했다. 이상 기온은 다양한 형태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극지방이 불타고, 텍사스에는 때아닌 폭설이 내리기도 했다. 또 집중호우는 낙후된 중국 지방도시는 물론이고 선진국 독일이나 벨기에도 집어삼켰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록적 폭염에다 가을장마까지 겹쳤다. 그런데도 우리 정치권은 기후 위기에 한가로운 모습이다.
지난 2일 첫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 ‘붉은 지구’가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기후 위기로 인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제작된 ‘붉은 지구’가 전하는 메시지는 강렬했다. 올여름 지구촌 곳곳에서 혹독한 기후위기를 겪은 탓에 실감나게 다가왔다. 4부작으로 제작된 ‘붉은 지구’는 2일 ‘엔드게임 1.5’를 시작으로 9일 ‘침묵의 바다’, 16일 ‘구상나무의 경고’, 23일 ‘기후 혁명’까지 기후 위기로 인한 환경 파괴와 실태를 그리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1부 ‘엔드게임 1.5’는 홍수와 가뭄 피해를 다뤘다. 최근 수년째 지구촌은 폭우와 가뭄 피해를 동시에 입고 있다. 사례로 제시된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르빌 호수’는 심각한 가뭄으로 황무지로 변했다. 오르빌 호수는 풍부한 수량과 우거진 숲으로 이름났지만 2년째 계속된 가뭄으로 호수는 바닥을 드러냈다. 수력발전소 가동도 멈췄다. 이 때문에 오르빌 호수에 기대어 관광 수입으로 생계를 꾸렸던 지역주민들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반면 상당수 지역은 홍수 피해를 입었다. 올여름 미국 북동부지역을 비롯해 중국, 서유럽 도시가 물에 잠겼다. 독일, 벨기에는 2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중국 정저우시는 하루 만에 1년 치에 해당하는 624mm 폭우가 내려 20만명이 대피하고 33명이 숨졌다. 또 서부 독일은 대홍수로 177명이 목숨을 잃었고 100명이 실종됐다. 벨기에도 37명이 홍수로 숨졌다. 이처럼 집중호우는 아시아, 유럽을 가리지 않고 물 폭탄을 쏟아부었다.
이 모든 게 탄소 배출에 따른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영국 웹 사이트 '카본 브리프(Carbon Brief)'는 최근 20년간 발생한 이상 기후 405건을 분석했다. 이 결과, 이상 기후의 70%는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에 의해 발생했고 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이 1.5도를 넘기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상 기후 현상은 앞으로 20년 동안 점진적으로 악화될 전망이다.
최근 세계적인 의학 학술지들은 기후 위기와 관련한 공동저널을 잇달아 발표했다. 보고서는 9월 14일 개막하는 유엔 총회와 10월 중국 쿤밍 생물다양성 회의, 11월 스코틀랜드 기후 회담 등 기후 위기를 논의하는 국제 행사를 앞두고 발표돼 주목 받았다. CNN은 “230여개 의학 학술지 편집자들은 기후 위기로 인간의 건강 상태는 악화일로에 있으며, 지구온난화를 방치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직면할 것으로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보고서는 지난 20년 동안 인간의 건강을 위협했던 질병과 기후 위기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연구 대상 질병은 △임신 합병증 △탈수 및 신장 기능 상실 △심장 및 폐 질환 △피부암 △정신 질환 등이다. 의학저널은 “산업화 이전보다 1.5℃ 이상 높은 평균 기온 상승과 생물 다양성 상실은 인류 건강에 회복 불가능하고 치명적인 해악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세계 각국은 재앙을 막기 위해 기후 위기 대응에 ‘필사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는 11월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탄소 배출량 감축 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다. 과학자들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하는 목표를 총회에 앞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2030년까지는 1.5도 오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후 2040년까지 온난화가 계속되다 지구적인 대응에 힘입어 하락을 전망한다. 물론 이마저도 지금부터 행동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국제사회 움직임과 달리 한국은 상대적으로 한가하다는 느낌이다. 특히 대선 정국에서 수많은 정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기후 이슈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개발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를 반영하듯 국민 10명 중 9명은 “기후 위기 대응을 대통령 선거에서 중요한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또 10명 중 7명은 “대선 후보들이 기후 위기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기후 위기와 관련해 정치권이 국민 인식을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한 조사 결과다. 이는 녹색연합이 의뢰한 ‘2021년 기후 위기 심각성과 기후 정책’ 여론조사에서 확인됐다.
응답자들은 여야 할 것 없이 경선에 참여한 후보와 정당의 무관심을 지적했다. 또 응답자들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느낀 계기로 ‘폭염, 폭우 등 국내 기상 이변’을 꼽았다. 특히 응답자 80.1%는 ‘기후 위기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면서 석탄발전을 종료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후 위기를 직면한 과제로 바라보는 정치권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기후 위기는 미래생명과 직결된 피할 수 없는 현안이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