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철의 AI 인문학] ② 고대의 인공지능과 로봇

2021-09-03 06:00

강시철 휴센텍 대표이사.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흙에서 시작된 인공지능
“일전이요, 이전이요….”
“탁, 탁, 틱, 탁, 틱…….”

강사는 염불 외듯 숫자를 중얼거리고 있었고, 아이들은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고 있었다. 1970년대 우리나라 학원가의 핫 잇템은 주산학원이었다. 학생들은 태권도처럼 승단 심사를 거쳐 급수를 따기도 했고, 대회에 출전도 했다. 상업고 학생들에게는 주산 급수가 졸업 후, 취업을 하기 위한 중요 스펙이었다. 주산왕, 암산왕이란 별명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던 때였다.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체화된 우리의 주판 인자가 오늘날 우리를 디지털 강국으로 만들어 줄 것을….

AI의 대표적 기능은 인지적 정보처리이다. AI는 빅데이터를 분석해서 우리가 필요한 인지적 정보를 빠르게 제공할 수 있다. AI를 처음으로 생각한 과학자들은 귀찮고 어려운 계산을 대신해주는 기계가 인간의 노예상태를 벗어나게 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런 AI와 유사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주판이다. 주판은 복잡한 계산상황에서 인간의 인지적 능력을 증강하여 더 빠르게 대량의 숫자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주판의 도움으로 인간은 복잡한 계산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지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주판은 AI의 일부 능력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이게 바로 주판을 AI의 조상이라 부르는 이유이다.
 

중국 고대 주판.[사진=게티이미지뱅크]


주판은 중국 원나라 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여왔기 때문에 그때 발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의 주판은 한나라 시대에 발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판은 서기 190년경 한나라의 수학자 서열(徐悅)이 저술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장산술(九章算術)이란 고대 수학교과서에 ‘수안판(算盘)’이란 이름으로 처음 소개됐다.

주판의 개념이 최초로 출현한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이었지만 계산 보조장치로서 실용화의 길을 열어준 것은 한나라의 수안판이 처음이다. 오늘날, 중국이 미국과 함께 인공지능 강국으로 부상한 것은 그들의 유전자 속에 이미 인지적 도구사용의 강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주판의 개념은 수안판보다 수천년 더 앞서 나왔다.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된 '토사수판(dust abacus)'이 바로 주판의 원조격이다. 당시의 수판은 고운 모래를 얇게 덮은 간단한 판자로, 그 표면에 손가락이나 막대기를 이용하여 세로 또는 가로로 여러 개의 긴 홈을 파고, 그 홈 위에 '칼쿨리(Calculi)'라는 작은 조약돌을 늘어 놓고 계산에 이용했다.

기원전 5세기경에는 이집트나 그리스, 로마 등에서 선수판(線數板, line abacus)이 등장했다. 이 선수판은 판자 위에 여러 개의 줄을 긋고, 그 줄 위에 작은 돌을 놓아 계산에 이용했다. 그러나, 아라비아숫자의 보급으로 필산(筆算)이 수판보다 편하게 되자 선수판은 유럽에서 17세기 말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외계인을 고문해서 만든 고대의 인공지능 - 안티키테라
“어? 이건 시계 같은데?”

한 고고학자가 난파선 유물을 뒤지던 중 청동으로 만든 기계뭉치를 보고 놀라고 있었다.

“말도 안돼~ 고대 시대에 이런 걸 어떻게 만들어?”

다른 학자가 얼굴을 찡그리며 그 기계를 이리저리 돌려 보며 신기해 했다.

1902년, 그리스의 안티키테라 섬. 이곳 근해를 탐사하던 잠수부들은 해저 약 50m 지점에서 거대한 고대 난파선을 발견했다. 이 배의 침몰 시기는 기원전 약 76년으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항아리, 장신구, 조각품 등 수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물건은 청동으로 만든 기계장치였다. 큰 조각 하나와 작은 조각 둘로 나뉘어 발견된 장치는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톱니바퀴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장치는 진흙과 녹, 석회가 뒤범벅이 되어 있어 함부로 손댈 수가 없었다. 학자들은 발견장소를 따서 그 기계장치를 ‘안티키테라 장치(Antikythera Mechanism)’라고 명명하고 그 기계를 잘 보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후, 50여년이 흐른 1950년대, 학자들은 X-Ray와 컴퓨터를 이용해 이 고대의 장치에 대한 연구를 다시 진행했다.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의하면 315×190×100㎜ 크기의 이 장치는 복잡한 32개의 톱니바퀴로 구성되어 있다. 발견 당시에는 시계의 일종이라 여겼으나 내부 구조를 분석하자 아주 복잡한 움직임을 가진 천체 기록장치라는 것에 의견이 모였다.

안티키테라는 태양, 달, 행성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기계식 달력 인공지능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측면에 있는 크랭크와 기어를 돌려 날짜를 맞추면 행성의 위치를 변경해 그날의 해, 달, 기타 별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놀랍게도, 4년에 하루 정도 날짜가 늦게 돌아가게 설계되어 윤년을 계산했으며, 1년이 365일임을 정확하게 맞추는 기능도 있다.

2008년, 과학자들은 칼리프스 주기를 표시한 것으로 간주했던 청동 부분에서 'Olimpia'라는 문자를 발견했는데, 이것이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개최 날짜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계속된 연구로 행성의 위치와 달의 위상까지도 계산해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구조가 처음보다 매우 복잡했다는 것도 밝혀냈다.

오파츠라는 용어가 있다. 시대에 걸맞지 않은 고대의 유물을 의미하는 단어다. 지금까지 발견된 오파츠는 대부분이 주작으로 밝혀졌다. 하나 안티키테라는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 파에스토스 원반과 함께 공인된 3대 오파츠라고 불린다. 인류 최초의 컴퓨팅 장치라고 부르는 안티키테라. 아무리 봐도 2000년 전 인간의 솜씨는 아닌 것 같다. 정말로 외계인의 손을 거친 것은 아닌지?
 
로봇은 원시신앙의 산물이었다
AI와 로봇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인간과 동물의 몸짓, 표정, 어투를 그대로 흉내내는 로봇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인류가 로봇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와 그 시기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고대 인류가 로봇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무생물에도 영혼이 깃들 수 있다고 믿는 원시신앙, '애니미즘(Animism)' 때문이다.

물신숭배(物神崇拜), 영혼신앙(靈魂信仰) 또는 만유정령설(萬有精靈說)이라고도 부르는 애니미즘은 자연물이든 인공물이든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도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영적 능력이나 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물체에 인간적 특성을 부여하는 로봇과 AI기술은 원시시대 때부터 인류의 관심사였다. 오늘날, 인공지능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빈 민스키(Marvin Lee Minsky, 1927~2016)' 또한 기계를 생명체 관점에서 해석하는 애니미즘적 견해를 피력했다.

자동기술이 출현하기 전, 인간은 신의 마법으로 사물에 영혼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황금 하녀나 청동 거인을 만든 헤파이스토스 신화가 전해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피그말리온의 전설 역시 피그말리온 왕이 조각한 아름다운 여인상 갈라테이아가 신의 도움으로 생명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신화의 시대가 지나가자 이러한 고대인들의 염원은 기술로 승화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오토마타'이다.

간단한 기계장치로 움직이는 인형이나 조형물, ‘오토마타’는 애니미즘적 신앙이 과학의 세계로 전환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오토마타는 '오토머튼(Automaton)'의 복수형으로 최초의 힘이 가해진 후 미리 설정된 프로그램에 따라 일련의 동작을 수행하는 자동기계장치를 말한다. 쉬운 예로 태엽을 감고 풀리면서 작동하는 인형을 떠올리면 된다. 이 용어는 헤론이 저술한 <오토마타(Automata)>의 제목에서 나왔다. 이 오토마타가 오늘날 로봇의 효시다.

근현대에 와서 오토마타는 융합예술의 한 장르가 되었다. 그러나, 초기의 오토마타는 예술 그 이상의 것이었다. 지금의 로봇과 AI의 개념을 제시하고 개발 가능성을 열어준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오토마타였다. 이런 오토마타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그리스 과학자 크테시비오스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3세기 발명한 그의 오토마타에서 우리는 원시적인 로봇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원시로봇의 아버지, 크테시비오스
똑~ 똑~ 똑~ 똑….
물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지고 있다.
물이 떨어질 때마다 원통용기에서 나타난 인형은 저절로 움직인다. 손에 지시봉을 쥔 채로.
인형의 지시봉은 원통에 새겨진 눈금을 오르내리고 있다.
그렇다. 이 인형은 시간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인간은 사물에 혼이 깃들어 있으며, 주술적 힘만이 그 사물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맹목적 믿음이 있었다. 이런 애니미즘적 믿음을 과학으로 입증한 사람이 바로 크테시비오스(Ktēsibios, BC 285~222) 였다. 기원전 250년경, 그리스의 수학자이며 발명가인 크테시비오스는 인형에 마법적 주술이 아니라 과학적 원리를 적용해서 저절로 움직이게 한 첫 번째 인물이다. 심지어 과학적 이론을 적용, 그 인형이 시간을 표시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크테세비오스의 물시계이다. 이 물시계는 애니미즘적 마법의 환상에서 인간의 순수영혼을 구해낸 혁명이었다. 그의 발명으로 인류는 인간을 닮아 스스로 움직이는 사물의 시대, 로봇 시대를 열기 시작한 것이다.

필론, 헤론과 더불어 헬레니즘시대의 3대 기계학자로 알려진 크테시비오스는 수력동력의 장인이었다. 그는 이후에도 수력오르간, 압력펌프, 소화펌프 등을 발명했다. 로봇학자들 중에는 그를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수차를 이용한 로봇을 만들었다. 물이 공급될 때마다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하는 인형이 지금으로 말하면 로봇의 기본 동작 중 하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