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잘못된 전쟁이 남긴 힘의 공백
2021-08-25 12:24
전쟁을 시작한 이래 20년을 끌다 8월 말 아프간에서 미군이 철수함으로써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긴 채 막을 내리게 되었다.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하면서 내세웠던 명분인 알카에다 본거지 척결도 사실상 달성하지 못했다. 게다가 아프간에 천문학적인 원조를 해주고도 지속가능한 민주정부 하나 제대로 못 세우고 빈손으로 철군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국력만 엄청나게 소진하고 탈레반 세력은 더 강성해져서 복귀함으로써 아프간이 다시 테러의 온상이 될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미국이 벌인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은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실패한 전쟁이 되어버렸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이 잘못된 지역에서 잘못된 목표를 향하여 국력을 소진하는 동안 잠재적 도전국이 근력을 키워서 한 마리 호랑이로 등장한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국가지도자들이 전략적 판단을 잘못하면 국가에 장기적으로 얼마나 큰 해를 끼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상 중요한 연구사례가 될 것이다. 당시 미국 정가를 주도하던 네오콘들은 그 전쟁을 통해 위대한 미국의 위력을 전 세계에 과시함으로써 미국의 위상이 더 강화할 될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들은 이제 무대 뒤로 사라지고 지금의 미국민들이 그들의 잘못된 판단의 부담을 오롯이 짊어지고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당시 네오콘들은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은 해외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고 특히 민주 정부를 많이 세우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소위 공세적 현실주의 관점에서 필요 시 미국 군사력을 해외에 선제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그것이 미국의 의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미국 예외주의와 팽창주의가 결합된 시각이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2조 달러의 비용과 2500여명의 전사자를 내고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테러와의 전쟁을 보면서 지금 미국민들의 정서는 그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제는 미국이 더 이상 세계경찰 역할을 할 필요가 없고 미국은 미국의 경제와 안보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는 고립주의적 시각이 만연하고 있다. 사실 미국은 자국 안보만을 위해서는 해외에 미군을 주둔시킬 필요가 없다. 그런데 여태까지 패권국으로서, 자유국가의 리더로서 미국은 세력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해외에 미군기지를 운영하였던 것이다. 이런 미국이 이제 중동지역과 유럽지역에서 미군을 철수하거나 그 규모를 줄이고 있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