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칼럼] 아프간서 발 뺀 세계의 경찰, 미국은 나라빚에 체통도 버렸다
2021-08-2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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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단행된 미국의 아프니가니스탄 철군은 전세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2001년 수천명의 무고한 미국인들이 희생된 9·11 테러로 아프가니스탄에 근거를 둔 알 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이 지목되면서 2001년 10월 미국은 영국 등 우방의 지원을 받으며 아프니가니스탄을 침공해 20여년 동안 막대한 재원과 미국군인들의 희생을 감내하면서 벌여오던 전쟁을 20년 만에 패퇴나 다름 없는 철군을 하게 된 점이 충격적이다. 이미 미국과 텔레반은 작년 3월 도하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금년 8월말까지 미군이 철군하기로 되어 있는데 미군이 미처 완전히 철군도 하기도 전에 카불정권이 함락되고 만 것이다. 완전히 1973년 파리평화협정 후 미군이 철수하자 1975년 4월 30일 함락된 남베트남의 데자뷔다.
막대한 재원과 미군의 투입에도 불구하고 카불정부의 부패와 무능으로 승리가 요원해 진 가운데 미국으로서도 밑빠진 독에 물 붓듯이 계속 재원과 인력을 투입하기 힘들어진 점이 가장 중요한 철군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바이든은 “싸우지 않으려는 정부를 위해 미국이 더 이상 싸울 수 없다”고 철군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이렇게 되면서 미국을 과연 자유우방의 수호자로 믿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비판도 비등하고 있다. 바이든은 이러한 우방의 비판을 의식해 “한국 대만 나토 등은 아프니가니스탄과 다르다”고 애써 무마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철수함으로써 중앙아시아는 물론 원유산지인 이웃의 중동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텔레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이란 이라크 등의 연대 움직임도 있을 것이다. 유럽연합은 긴급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구소련이 붕괴하자 이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대 공산주의 계획경제 간의 오랜 이념 대결은 끝났으며 서구문명 일극체제가 왔다고 주장하는 <역사의 종언>(프란시스 후쿠야마)(1993)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버드대의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1996)을 펴내고 앞으로 세계는 문명 간 충돌이 중요해 지는 가운데 특히 서구문명과 이슬람문명 중국문명의 대결의 장이 될 것이라고 갈파한 적이 있는데 지금 세계는 그러한 추세로 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우선 중국의 부상으로 미국과 중국의 쟁패가 새로운 냉전(1.0의 구소련이 물러간 자리에) 2.0 또는 신냉전 시대를 열고 있고 이번 아프니가니스탄 미국철군은 이슬람세력의 새로운 부상을 예고하고 있다. 서구문명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국가부채/GDP 비율이 100%를 넘은 적은 2차 대전으로 전비지출이 확대되었던 1945년 무렵이다. 이때 국가부채/GDP 비율은 120%에 도달했다. 이처럼 높은 국가부채 비율을 줄이고자 미국은 우선 국방비를 절반 수준으로 감축했다. 그러나 당시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해야 했으므로 우선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지역 즉 유럽에서는 독일을 중심으로 한 나토를 방위하고, 동아시아에서는 일본과 필리핀을 연결하는 애치슨라인이 등장했다. 2차대전으로 철천지 원수로 싸우던 국가를 지원해 2차대전 중 연합국이었던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하는 아이러니가 바로 2차대전 후 등장한 미국의 대소련 봉쇄전략이다.
이러한 결과 등장한 것이 1949년 미군의 한국철수다. 1945년에 해방은 되었지만 38도선 이북에서는 소련군이 진주해 김일성을 앞세워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설립하고 토지개혁을 단행하는 등 착착 건국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남에서는 남로당 건국준비위원회 대구폭동 제주4·3사건 연이은 파업 등 좌익들이 준동하는 가운데 물자도 인력도 없어 근근이 1948년 대한민국정부를 수립했지만 공무원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재정상태라서 국가를 방위할 수 있는 변변한 국방능력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자연히 일본군 항복을 받기 위해 군정을 실시하고 있던 미군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실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1949년 미군철수를 단행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이 120%에 도달했던 높은 국가부채/GDP 비율이었다. 이처럼 높은 국가부채 비율을 줄이고자 미국은 우선 국방비를 절반 수준으로 감축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한국에 주둔해 있던 미군을 철수했다. 북한으로서는 이 절호의 찬스를 놓칠 리 없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일제히 남침을 감행한 것이 엄청난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한 6·25동란이다.
앞으로 서방세계는 딜레마에 직면할 전망이다. 미국의회조사국의 전망처럼 미국의 국가부채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는 경우에는 미국만으로는 중국 공산주의와 이슬람권의 팽창을 막기에 역부족일 가능성이 크다. 유럽연합도 영국의 탈퇴와 일부 회원국들의 사회주의 성향 등으로 미국과 유럽이 연합해서 대응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중국 공산주의와 이슬람권의 팽창을 좌시할 수도 없을 것이다. 트루먼과 처칠, 레이건과 대처 같은 위대한 서방의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결국 미국과 유럽은 2차 대전 후 같은 새로운 봉쇄전략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6·25동란이 끝나면서 종전협정 과정에서 거제도반공포로석방 등 우여곡절 끝에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지난 68년 대한민국의 평화를 유지해 오고 있지만 근년에는 대한민국에 종북 친중 성향이 확산되면서 북한이 미사일과 핵무기로 위협하고 있는데도 종전선언 미군철수 주장 등이 확산되고 있어 우려가 적지 않다. 대한민국의 현명하고 올바른 선택이 중요한 때다.
오정근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학교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