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이준석과 안철수의 잘못된 만남

2021-08-23 07:46

 


이준석과 안철수. 정권교체를 하겠다고 입을 모으는 두 사람이었지만, 제대로 된 담판 한번 없이 등을 돌리고 말았다. 과거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정치적 악연이 합당 논의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두 사람 혹은 그 대리인들은 줄곧 독설공방과 감정싸움만 반복하여 지켜보던 국민의 피로증만 유발한 채 합당 약속을 없었던 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럴줄 알았다는 냉소적 반응, 별 관심 없었다는 냉담한 반응도 많지만, 어쨌든 정권교체를 하겠다는 야권 입장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내년 3월의 대선이 진영 대 진영의 대결로 압축되었을 때 승부는 불과 몇 %의 득표율 차이로 갈릴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두 야당의 합당은 승부를 가르는 그 몇 %를 안전하게 모으기 위한 야권의 중요한 숙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협량한 정치의 모습만 보인 채 합당을 실패의 길로 이끄는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제1야당 대표인 이준석의 책임이 크다. 국민의힘이 안철수를 얕잡아 보거나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지난 4·7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의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될 수 있었던 데는 안철수의 공이 가장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종 열세에 있던 오세훈이었지만, 선두를 달리던 안철수가 야권 후보단일화 제의를 했고 이는 오세훈이 상승세를 타는 결정적 발판이 되었다. 안철수는 단일화에서 패하는 충격 이후에도 오세훈의 당선을 위해 성심성의껏 지원하는 모습을 끝까지 보였다.

아무리 정치의 세계가 비정한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모습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보여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준석은 마땅히 안철수를 예우하며 제1야당의 대표답게 껴안는 통큰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그런데 이준석이 보여준 것은 “소값 후하게 쳐드리겠다” “통합, 예스냐 노냐 답만 하라”는 식의 빈정대고 자극하는 말들뿐이었다. 아무리 안철수가 통합하겠다고 국민 앞에서 약속했다지만, 그런 모욕을 당하면서 굴욕적인 합당을 할 수가 있었을까.

두 당의 합당 결렬은 이준석의 포용력 없는 미성숙한 정치가 낳은 귀결이었다. 이준석의 패착으로 인해 국민의힘은 대선정국에서 두고두고 부담을 안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아무리 안철수가 3석짜리 군소 정당의 대표이고, 여론조사 지지율도 지금은 1~2%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의 독자 대선 출마로 가장 곤란해지는 것은 국민의힘이다. 국민의힘이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는 중도층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라도 안철수에게 관심을 기울여 그가 3~4%의 지지율만 얻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대선의 승부를 가르는 변수가 된다. 국민의힘이 그때 가서 안철수와의 후보단일화를 위해 다시 매달려야 하는 상황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물론 그때 안철수의 몸값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다. 결국 이준석은 자신이 해결했어야 할 합당의 과제를 대선 후보에게 넘겨버리는 정치적 불성실함을 드러낸 셈이다.

그렇다고 안철수가 잘한 것도 없다. 어찌되었든 그는 4·7 재·보선 때 공언했던 국민의힘과의 통합 약속을 어기게 되었다. 통합 결렬의 책임이 꼭 국민의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초 조건 없이 통합을 약속했던 안철수였지만, 막상 합당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실리적 조건들을 제시했다. 일방적인 흡수통합이 되지 않으려는 점은 이해하지만, 어떤 요구들은 자신들의 몸값을 과도하게 높이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때 다르고 지금 다른 것은 국민의당도 마찬가지였다. 애당초 안철수의 통합 약속이 단일화 경선용으로 나온 것 아니었냐는 의심을 살 수 있는 광경들이었다. 진즉부터 안철수의 마음이 합당이 아닌 독자 생존의 길로 가 있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울고 싶었는데 마침 이준석이 뺨을 때려준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가 대선에 독자 출마하려면 당헌까지 고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1인의 사당(私黨)이라는 시선을 피할 길이 없다. 무엇보다 안철수는 선거만 있으면 출마하는 ‘출마 전문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어떤 이유와 명분을 댄다 한들, 선거만 있으면 출마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좋아보일 수는 없다. 한 시절 새로움의 아이콘이었던 안철수였지만, 어느덧 새로움과는 반대되는, 그 자신도 식상한 정치인 가운데 한명이 되고 말았다.

안철수 자신도 이제 혼자서는 어렵다는 한계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를 만나 함께 제3지대의 확장을 도모하고 싶은 의사를 내비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김동연은 “만날 계획은 없다”, “세의 유불리나 정치공학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은 취지와 맞지 않는다. 정치세력의 교체를 위해 뚜벅뚜벅 제가 생각하는 길을 가겠다”면서 안철수와의 연대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정치세력의 교체를 내건 김동연으로서는 굳이 안철수와 손잡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철수로서는 혼자 독자 출마를 했다가 나중에 이준석이 아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 연대를 하려는 구상을 가질 법하다.

물론 두 야당의 이번 합당 결렬이 전화위복이 될 가능성은 있다. 어차피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에서 시너지 효과도 없을 억지 합당을 하느니, 안철수는 따로 중도 지지기반을 넓힌 뒤에 11월 이후 후보단일화나 합당을 하는 것이 야권의 입장에서는 효과가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의 합당 결렬 선언을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약속했던 합당을 통 큰 리더십을 발휘해 성사시켰다면 최선이었겠지만,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 되었다. 그래도 이준석과 안철수가 보여준 협량한 정치가 아무 성 찰없이 되풀이될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