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新아방강역고-41]토문강은송화강 지류 스모킹건 10선(2)
2021-08-10 06:00
조선후기 대다수 관찬지도 토문강, 두만강 각각 표기
1884년 체결 무역조약도 마찬가지
양국 국경은 토문강, 길림·조선의 경계는 두만강
1884년 체결 무역조약도 마찬가지
양국 국경은 토문강, 길림·조선의 경계는 두만강
4. 태조실록 1395년(태조 4년) 12월 14일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토문’ 계열(土門, 豆門, 頭門)의 지명은 지금의 백두산 북쪽 송화강 상류 일대에 등장하는 지명으로 토착 여진족이 관련된 장소이다.
오랑합과 수오적개 등 4인 투항사실과 당시 북방 야인들의 귀화 실태
여진은 알타리 두만(豆漫) 협온맹가첩목아· 화아아 두만(豆漫) 고론 아합출, 토문(土門)맹안 고론발리·아목라 올랑합은 토문(土門)의 괄아아팔아속... 「태조실록」, 1395년(태조4년) 12월 14일
태조 이성계가 1270년 압록강을 두 번이나 건너 남만주 일대 여진족을 평정한 후 두만강 이북의 여진족은 두만으로, 송화강 상류 토문강 부근의 여진을 ‘토문’으로 통치했음을 알 수 있는 증거다. 이는 또한 토문강과 두만강은 별개임을 조선 '조선왕조실록'중에서도 최초의 실록 '태조실록'이 명확히 말해주고 있는 사상 최초의 핵심 증언이다.
5. 조선후기 대다수 관찬지도 토문강은 토문강(분계강), 두만강은 두만강 표기
17세기 만주족이 청을 건국하자 백두산과 그 주변지역은 새롭게 주목을 받는다. 만주족도 백두산을 민족의 발상지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경을 확정하고 상호 월경과 충돌을 방지하려는 청의 요구로 1712년 백두산 정계비가 세워졌다. 두 나라의 경계는 백두산을 기준으로“서쪽은 압록강, 동쪽은 토문강”이라 정해졌는데, 토문강의 발원지 및 유로를 놓고 이후에 논란이 계속됐다.조선시대 지도에는 이들 하천의 유로가 묘사돼 있으며, 1712년의 정계비 건립 이후 조선 관방이 제작한 지도에는 두만강은 두만강, 토문강은 토문강 또는 분계강(조선과 청나라와 국경강)으로 표기된 조선전도·도별도·군현지도·관방지도등이 매우 많다. 3건의 지도만 선정해 간략히 소개하겠다.
(1) <해동지도>
1770년대 영조의 명을 받들어 신경준이 주도해 제작한 <조선지도> 함경도 무산부 지도는 두만강과 분계강 상류(토문강)의 위치를 잘 보여 준다. 백두산에서 직접 발원하는 수원은 분계강으로 시작되는 부분에 복류라고 표시되어 있고, 아래의 분계강 상류의 본류까지는 마른내로 연결돼 있다. 아래쪽의 두만강 상류부분과도 목책으로 연결 표시를 했다.
(3) <북관장파지도>
서북경략사 어윤중의 두만강상류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880년대에 제작된 <북관장파지도北關長坡地>에는 분수령 상에 정계비가 세워져 있다. 지도 오른 쪽 위로는 동북쪽으로 흐르는 분계강(토문강, 오도백하)을 별도로 표시했으며, 두만강 상류부분은 자차두만강시류(自次豆滿江始流)라고 표기해 여기서부터 두만강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19세기 말엽에도 한·중 양국의 동북국경은 두만강이 아니라 토문강이라는 사실을 증언해주고 있는 귀한 지도이다.
6. 1884년체결 무역조약, 양국 국경은 토문강, 길림과 조선의 경계는 두만강
〈길림과 조선상민 수시무역 장정〔吉林朝鮮商民隨時貿易章程〕〉은 1884년 고종 21년 5월 26일
조선의 서북경락사 어윤중(魚允中)과 청 나라 형부낭중 팽광예(彭光譽)가 검토 승인한 조약이다.
제1조 두 나라의 국경은 토문강(土門江)을 경계로 한다. 토문강(土門江) 북안과 동안은 길림에 속한 땅으로서 태반이 황폐해서 지난날 마을이 없었고 돈화현성은 강안과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제11조 길림과 조선은 도문강(圖們江)을 경계로 하여 길게 땅이 연결되어 있다. 두 나라에서 논의하고 결정한 시장의 대안 나루터에 관에서 나룻배를 만들어 놓고 날마다 들어오고 나가는 화물을 조사하며, 상인들이 다른 곳에 건너다니는 배를 마련하고 길을 돌아 몰래 빠져나가는 폐단이 없게 한다.
제1조는 토문강이고 제11조는 도문강이다. 제1조에 양국간의 국경은 토문강(土門江)은 지금의 백두산 북쪽으로 흐르는 송화강 상류 중의 하나 즉 지금의 오도백하(五道白河)다.
제11조의 도문강(圖們江)은 양국간 국경이 아니라, 길림과 조선 행정 지역의 경계로 백두산에서 동쪽으로 약 30㎞나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발원해 동쪽으로 흘러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즉 두만강이다.
요컨대 토문강은 한국과 중국의 국경인 반면에, 두만강은 함경도와 길림성의 지역 경계이다.
즉 19세기말에도 한중 양국 중앙정부차원에서 토문강은 두만강이 아니라 송화강 상류임을 공식 확인하는 강철 증거 중의 하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