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테크] "탈서울·물류기지형 데이터센터가 미래"

2021-08-07 08:00
좁고 높은 도심형 데이터센터, 공간·전력 확장성 한계 맞아
국내 진출 글로벌기업 수요 유망한 창고·모듈형 데이터센터
수도권 과밀억제·전력수요 분산 맞물려 지방데이터센터 바람
데이터센터 개발 선도 위해 ICT 컨설팅·건축설계 전문가 맞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클라우드가 디지털전환의 핵심 기반으로 부각되면서, 그 자원을 공급하는 데이터센터의 구축과 운영을 최적화하는 방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특히 한국의 신규 데이터센터 건립 프로젝트는 수도권 외곽 지역을 비롯한 전국 지방으로 뻗어나가는 '탈(脫)서울' 현상과 더불어, 좁은 땅에 높게 지었던 형태를 버리고 넓은 부지를 적극 활용하는 '창고형' 또는 '물류기지형(warehouse)' 설계를 채택하는 방향으로 가는 분위기다. 수년 내 친환경성·고효율성을 갖춘 '하이퍼 그린 데이터센터' 시대가 열릴지 주목된다.

강원도가 이런 흐름에 앞서 있다. 지난 2017년부터 '빅데이터 산업 수도 춘천'을 구현하고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핵심 거점 확보 차원에서 추진해 온 '케이클라우드 파크(K-Cloud Park)' 사업 얘기다. 2019년 말 강원도와 춘천시는 이 사업 계획을 발표하며 춘천 소양강댐의 수열에너지를 활용하는 부지면적 15만6000㎡ 규모의 친환경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집적단지와 29만㎡ 규모의 케이클라우드 데이터산업 융합밸리 조성을 예고했다. 이 집적단지에 대형·중형 데이터센터 6곳이 건립될 예정이다.

차세대 친환경 데이터센터 설계·구축·운영 전문기업인 데우스시스템즈와 건축설계·시공감리업을 수행하는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해안건축')가 강원 춘천 케이클라우드파크 프로젝트에 데이터센터 설계를 맡아 참여하고 있다. 그간 양 사의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가와 건축설계 전문가들이 협업해 왔고, 최근 데이터센터 집적단지에 구축될 6개 데이터센터 건물의 '기본설계'를 도출했다. 토지사용계획이 승인되면, 이 기본설계를 바탕으로 내년 초 본격적인 데이터센터 건립·구축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케이클라우드파크의 친환경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집적단지는 댐의 차가운 물을 활용한 냉각방식으로 데이터센터 냉방비용을 75% 절감하고 소양호 수상태양광발전단지(200㎿)로 공급되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활용한다. [사진=강원도 제공]

  
좁고 높은 도심형 데이터센터, 공간·전력 확장성 한계 맞아
류기훈 데우스시스템즈 대표는 "국내 데이터센터 다수가 수도권 내 도심에 6000㎡(약 2000평)쯤 되는 땅에 연면적 4만㎡(약 1만2000평) 규모 건물로 높게 세워졌다"라며 "구조상 (서버 냉각을 위한) 공기순환 등 운영 측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형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외국에서는 동일한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더 넓은 부지에 낮은 직사각형 구조로 만들고 규격이 이미 표준화된 전력·공조 설비를 활용해 건립 기간 단축과 효율 향상을 꾀하는데, 한국엔 아직 그런 사례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수도권 지역은 신규 데이터센터 입지 후보에서 제외되는 추세다. 사업자들이 그 대신 친환경 데이터센터 건립에 관심을 돌렸는데, 특히 단위면적당 토지 가격이 저렴하고 지자체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광활한 부지를 활용해 더 효율적인 설계를 적용하고 이를 통한 공사기간 단축으로 전체 사업비용을 절감하기가 수월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케이클라우드파크에서도 데이터센터 1기당 부지 3만3000㎡(1만평)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류 대표는 "설계를 시범적으로 구현할 레퍼런스 사이트를 확보해 부지의 규모 내에서 세울 수 있는 건물의 구조 등 가닥을 잡았고, (설계의) 프로토타입이 나와서 이를 케이클라우드파크에 접목시키는 것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와 해안건축이 워킹그룹에서 의견을 개진하고 있고, 현장에서 필요한 토목을 비롯한 제반 사항과 (행정지원 등) 제도 관련 요청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가 봐도 '저건 데이터센터다' 싶게 생긴 건물이 세워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데이터센터 건물을 넓고 낮게 지을 때의 장점은 명확하다. 우선 비용이다. 도심에선 고도제한과 토지 효율을 고려해 데이터센터 건물을 세우기 전에 지하공간부터 만드는데, 이 땅을 파내는 과정에서 인근 건물과 시설에 피해가 없는지 검토해 인·허가가 이뤄지는 데만 5~6개월이 걸린다. 이는 공사를 포함한 전체 사업기간을 늘려, 사업 총투자·금융비용을 증가시킨다. 반면 물류기지형 설계로 데이터센터를 지을 땐 고도제한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지하공간도 불필요해, 6개월의 시간과 예산을 아낄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진출 글로벌 기업 수요 유망한 창고·모듈형 데이터센터
확장성 역시 물류기지형 데이터센터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데이터센터 건물 자체는 한 번 지은 뒤 설계를 바꾸거나 증축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수직으로 높게 지은 도심형 데이터센터는 처음부터 쓸 수 있는 부지를 최대한 활용하기 때문에, 수용 공간을 모두 채운 뒤에는 공간을 늘릴 기회가 희박하다. 물류기지형 데이터센터는 전력 용량에 여유만 있다면, 남아 있는 부지를 더 활용해 수평으로 증축·증설이 가능하다. 해외 대단위 데이터센터처럼 전력·공조 등에 표준화된 모듈형 설비도 활용할 수 있다.

표준화된 모듈형 데이터센터 설비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페이스북 등 소비자용 디지털서비스나 기업용 클라우드서비스를 제공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데이터센터에 입주할 때 요구하는 규격을 더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미국 본사나 유럽 등에 다수의 물류기지형 데이터센터를 구축한 경험으로 데이터센터에 공급될 수 있는 전력 용량부터 건물의 구조와 내부 설비까지, 어느 정도 규격화된 요구사항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민재 데우스시스템즈 이사는 "도심형 데이터센터에선 수변전실·공조장치를 지하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창고형으로 구축하면 모두 지상에 둘 수 있고, 증설과 확장에 유리한 모듈형으로 구축할 수 있다"라며 "한국의 LS일렉트릭이나 해외의 슈나이더일렉트릭과 같은 업체에서 제공하는 무정전전원공급장치(UPS)나 공조시스템 등 기성 솔루션이 많이 있고, (입주사 요구사항에 맞추기 위해 필요 시) 이들과 공동개발하거나 협업할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내 시장에 진입하는 해외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엔 이런 모듈형 데이터센터가 익숙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이렇게 구축되길 원하는데 아시아권에서 아직 이렇게 진행된 사례가 없었다"라며 "에퀴닉스와 디지털리얼티 같은 곳은 모두 이런 모듈형으로 짓고 필요에 따라 소규모 데이터센터를 인수합병하며 인프라를 늘려 왔는데, 이런 곳이 기존 20·40메가와트(㎿) 규모의 인프라에서 더 막히지 않고 60㎿ 이상으로 확장하려면 지금과 같은 (모듈형 구축) 모델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수도권 과밀억제·전력수요 분산 맞물린 지방 데이터센터 바람
케이클라우드파크에선 소양강댐을 이용한 수력발전 에너지를 활용하고 데이터센터 냉각에 심층수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상대적으로 덜 구체화된 서남권의 차세대 데이터센터 단지 조성 계획에도 화석연료 사용을 최소화하거나 아예 불필요하게 만드는 수준의 발전시설을 갖춰 데이터센터의 친환경성, 재생에너지 활용을 통한 지속가능성 등을 강조할 수 있다. 이는 모든 소비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RE100' 캠페인에 참여하는 국내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는 데 큰 장점이 될 전망이다.

데우스시스템즈와의 협업을 위해 꾸려진 해안건축의 데이터센터 태스크포스팀장을 맡고 있는 김영환 해안건축 책임은 "정부가 현재 국내 전력 수요의 지리적 분산을 제도화하려고 검토하고 있어, 향후 데이터센터 건립 계획에선 전력확보 방안도 큰 고려사항으로 대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개발 업체들은 기업 스스로 전력사용량을 감축하거나 수도권의 접근성과 인프라를 활용할 수 없는 것을 감수하고 지방으로 갈 수 있을 만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데우스시스템즈는 단순히 서버 수용에 매몰된 기성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재생에너지 활용과 친환경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유연하고 효율적인 클라우드 자원으로 데이터센터 설계·구축을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자체 ICT 인프라 전문가 그룹과 외부 솔루션 파트너 네트워크도 갖췄다. 데이터센터 인프라의 기계·전기·소방 설비 안전성 확보부터 하이퍼스케일 아키텍처 구현까지 책임지겠다는 메시지를 내걸고, 해안건축과 함께 맡은 케이클라우드파크와 같은 실제 프로젝트에서 이를 실행 중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개인의 일상과 기업의 비즈니스가 디지털 기술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하는 추세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막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와 인공지능(AI) 기술이 부각되고 있다. 고성능의 AI는 대규모 병렬 연산을 처리할 수 있는 다수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자원을 요구하는데 여기서 일반적인 중앙처리장치(CPU) 자원보다 더 많은 전력소비가 일어난다. RE100과 같은 목표로 재생에너지 비율을 매년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데이터센터 전체의 에너지효율도 함께 중시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데이터센터 개발 선도 위해 ICT 컨설팅·건축설계 전문가 맞손
해안건축처럼 지자체의 물류기지형 데이터센터 사업을 발굴해 설계 단계부터 ICT 전문가들과 협업해 추진하는 전략은 기성 건축사무소 관점으로 보더라도 임대수익 실현 가능성이나 중장기 사업성 확보에 유리하다. 사업비에 포함되는 토지가격이 수도권 대비 훨씬 저렴하고, 위치에 따라 태양광·풍력·수력 등 재생에너지 활용으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이슈에 대응할 수 있어서다. 향후 국내 최초 물류기지형 데이터센터 표준화 모델의 선도사례 확보와 시장선점 가능성도 기대할 만하다.

김 책임은 "국내에 태양광·풍력 등을 활용하는 대단지 발전시설은 전국 몇몇 산업지구에 모여 있어, 이런 지역에서 지자체가 데이터센터 부지를 선정한다면 ESG 경영 목표와 관련된 데이터센터 수요가 쏠릴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다만 최근 알려진 'LEED 인증'은 빗물 재사용, 자연채광, 친환경 자재 등 건물 자체의 친환경성을 강조하는 것이고, 우리가 말하는 친환경은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주요 가동 전력을 재생에너지 기반 발전 전력으로, 전부는 아니더라도 의미 있는 비중으로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안건축은 대형 건축사무소 가운데서도 건축설계와 건설사업관리(CM) 기능을 모두 수행하는 드문 경우다. 프로젝트 전체 과정을 한 곳과 온전히 협업할 수 있다는 점에선 데우스시스템즈에도 해안건축이 좋은 파트너다. 양 사의 협업은 데이터센터를 위한 ICT 분야와 건축설계 분야 각각의 고유한 노하우를 통합할 수 있는 모델로 보인다. 이들은 설계에서 시공으로 넘어가는 과정 간의 리스크·변경 부담을 최소화하고, 주어진 예산·일정 내의 비용과 소요기간으로 도출되는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명화 해안건축 개발사업관리(PCM) 사업부 이사는 "대형건축사무소 중 디자인(설계)과 CM 기능을 같이 갖고 있는 곳은 흔하지 않다"라며 "해안건축은 설계와 CM 기능을 다 갖고 있어 아예 초기부터 데우스시스템즈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PCM에서 디자인과 CM이 협업해야 시공 단계의 문제를 줄일 수 있듯이, 데이터센터처럼 IT 컨설팅도 중요한 프로젝트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한 팀이 돼 초기부터 긴밀한 협업을 진행해야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원 춘천 수열에너지 융·복합 클러스터 사업단지 조감도. [사진=강원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