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겉은 세계적 게임사, 속은 성추문으로 썩는 중

2021-07-30 08:06
블리자드, 라이엇 등 유명 게임사에서 성추문 논란 불거져
업계 내 남성 위주 '프랫 보이' 문화로 차별, 혐오 등 발생
"개발자들의 인권 보호하고 평등하게 근무하도록 경각심 가져야"

‘리그 오브 레전드’(롤), ‘오버워치’,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게임 개발사 액티비전 블리자드(블리자드)와 라이엇게임즈가 내놓은 이 게임들은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각 개발사는 대표작들이 가져다주는 막대한 부와 명성을 바탕으로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회사 내 한쪽에는 말하지 못하는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블리자드·유비소프트·라이엇... 성추문에 휩싸인 게임사들

28일(현지시간) 블리자드 직원들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내 성차별 문제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29일 게임 업계에 따르면 최근 각 게임 개발사 내에서 성추문 문제가 잇따라 발생하는 중이다.

CNN, AFP 등 외신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블리자드가 직장 내 만연한 성차별 혐의로 제소됐다고 보도했다. 캘리포니아주 공정고용주택국(DFEH)은 블리자드가 성차별적인 문제로 주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블리자드 내 여자 직원은 임금이나 승진 등에 관해 성차별을 호소했다. 또한 DFEH가 제출한 고소장에는 남성 직원들이 여성 직원들에게 성희롱을 일삼고 업무를 떠넘기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일부 직원은 회의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수유실에 있던 여성 직원을 쫓아내기도 했다. DFEH는 “회사 경영진과 인사담당자들이 성희롱 사실을 알고도 합당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 여성에 대해 보복했다”고 밝혔다.

블리자드는 곧바로 공식 성명을 통해 “우리는 직원들에게 공정한 보수를 지급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논란은 더 커졌으며 직원 300여명은 파업을 선언했다. 이들은 코로나19 여파로 온·오프라인으로 파업에 동참했다.

바비 코틱 블리자드 최고경영자(CEO)는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코틱은 직원과 투자자에게 젠더 문제에 무감각했음을 인정하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코틱은 “올바른 공감과 이해를 하지 못해 죄송하다. 불평등한 급여, 성차별, 괴롭힘을 포함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조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 업계에서 성추문이 일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프랑스 게임회사 유비소프트에서도 성추문 문제가 터졌다. 지난 15일 프랑스 노조 ‘컴퓨터 연대’는 1년간 자료 수집을 거쳐서 현지 법원에 유비소프트 내 직장 괴롭힘 및 성추행 사건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유비소프트는 ‘어새신 크리드’ 시리즈로 세계적 게임 개발사가 됐지만, 사내에서는 고위 간부가 여성 직원에 대해 성적 가해부터 인종차별까지 괴롭힘을 일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간부들은 자신의 행위를 거부하는 직원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블랙리스트도 작성했다. 프랑스 매체 ‘리베라시옹’은 사측이 이러한 행위를 인지했으나 방관하고, 오히려 피해 직원에게 “그들과 일하기 싫으면 떠나라”며 논란을 잠재웠다고 비난했다.

‘롤’ 개발사로 유명한 라이엇게임즈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성추문 주인공은 니콜로 러렌트 라이엇게임즈 CEO였다. 러렌트는 올해 초 전 비서였던 샤론 오도넬로부터 성희롱 혐의로 고소당했다. 오도넬 측은 2017년부터 부당 해고 전인 3년 동안 러렌트에게 신체적, 언어적 괴롭힘을 당했으며 거부 의사를 밝힌 뒤에는 업무량을 줄이고 일방적으로 해고당했다고 주장했다.

2018년 ‘회사 내 성차별’ 문제로 홍역을 치른 바 있는 라이엇게임즈는 곧바로 특별위원회를 통해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오도넬은 다양한 사람에 의해 작성된 불만 사항으로 인해 해임된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법정 공방은 아직 진행 중이다.
 
게임업계는 남성 위주 '프랫보이' 문화... "경각심 가져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게임 업계 내 성 관련 문제는 ‘프랫보이(Frat Boy)'가 직장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프랫보이란 남성성이 강하고 성적으로 문란한 남자를 의미한다.

DFEH는 “직장 내 여성이 20%에 불과한 블리자드가 프랫보이 직장 문화를 조장했다. 임원들이 여성을 성희롱하고 남자 직원도 공개적으로 성적인 농담을 일삼았다”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성희롱과 차별 문제는 사내 노동자와 경영진이 주로 백인과 남성으로 구성된 게임 산업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게임 이용자들은 논란이 있는 게임 개발사에 대해 분노와 실망감을 표했다. 게임 이용자들은 “내가 정말 즐겨 했던 게임들을 불매할 계획이다”, “이 정도로 유명한 게임회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등 반응을 보였다. 블리자드 게임 중 하나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이용자들은 유색인종 여성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3500달러를 모금해 비영리단체 ‘Black Girls Code'에 전달하기도 했다.

한편 국내 게임 업계에도 성 관련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와 함께 진행한 ‘게임 업계 노동 실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직장 내 괴롭힘, 갑질, 성희롱, 성추행 등을 경험하거나 들은 사람은 31.9%에 달했다. 전 의원은 “사내 갑질과 괴롭힘 등 열악한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한국게임학회장을 역임 중인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블리자드가 그랬다는 것은 상당히 경각심을 가지고 주의해야 하는 이슈다. 과거 게임사에는 남성이 많았다. 블리자드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회사가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게임사들이 성인지감수성 관련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지만, 별개로 사내에서 개발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평등하게 근무하도록 임직원이 자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아주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