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능률 떨어지는데... 기로에 선 IT업계 재택근무

2021-07-25 14:28
사무실 출근 시행하려던 애플, 직원 반발에 연기
게임업계, 장기간 재택근무로 신작 출시 연기 속앓이
직원 불만·퇴사율 낮추는 재택근무의 순기능은 분명... 재택과 출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제 확산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사진=AP통신]


코로나19 시국이 계속되면서 재택근무(원격근무 포함)는 정보통신(ICT) 기업들의 '뉴노멀'로 자리 잡았다. 일부 빅테크 기업은 재택근무를 사내 복지 중 하나로 소개할 정도다. 하지만 이로 인한 기업들의 고민도 함께 커지고 있다. 재택근무 장기화에 따른 기업의 생산성 저하가 눈에 띄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미국 CNBC에 따르면 애플은 오는 9월로 예정했던 사무실 복귀 계획을 10월로 미뤘다. 코로나19 델타 변이의 확산 추세를 보고 복귀 시기를 더 뒤로 미룰 가능성도 있다.

애플은 원래 9월부터 주 3일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2일은 집에서 일하는 하이브리드(혼합형) 근무제를 도입할 예정이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는 지난 6월 전 직원에 이메일을 보내 월·화·목요일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수·금요일은 집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재택근무를 고수하는 다른 실리콘밸리의 기업과 달리 애플이 이렇게 혼합형 근무제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생산성 저하 때문으로 알려졌다. 매년 3분기에 신작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출시하는 애플 입장에서 생산성 저하로 인한 출시 일정 연기는 매출에 치명타를 입히는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델타 변이가 확산하고, 재택근무를 계속하게 해달라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혼합형 근무제 도입은 연기됐다.

생산성 저하는 비단 애플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게임 업계도 장기간 재택근무에 따른 신작 출시 연기 문제에 직면했다. 엔씨소프트의 기대작 '블레이드앤소울2'는 재택근무로 인해 출시일을 올해 상반기에서 8월 말로 연기했고, 엔씨소프트의 '트릭스터M'과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X' 등도 출시 일정을 연기했다.

재택근무로 인해 신작 게임 출시일이 연기되는 이유는 게임 업계의 특유의 '고강도 협업체계(크런치 모드)' 때문이다. 게임 출시에 앞서 여러 팀에서 나눠서 작업하던 결과물을 취합하고 게임 전체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이 필요한데,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 고강도 협업을 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실제로 이장욱 엔씨소프트 IR 실장은 실적발표 당시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이어질 경우 정상적인 게임 개발 일정을 맞추기 어렵다. 게임 출시가 다가올수록 개발부서 간 밀도 있는 협업이 필요한데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면 일정에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넥슨의 강민혁 커뮤니케이션본부장도 지난해 게임산업을 결산하며, 재택근무로 인한 서비스 일정 지연을 하나의 이슈로 꼽았다.

이는 전 세계 게임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올해 게임개발자회의(GDC)에서 전 세계 3000여명의 개발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4%가 재택근무로 인해 게임 개발이 지연됐다고 밝혔다. 지난해보다 11%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응답자의 24%는 재택근무로 인해 창의성과 생산성이 줄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재택근무가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으며 오히려 직원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니콜러스 블룸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재택근무를 하면 직원들의 생산성은 13% 향상되고, 업무 만족도가 훨씬 높아진다. 특히 재택근무를 한 직원들의 퇴사율은 사무실에 나오는 직원들의 절반 수준으로 크게 줄어든다.

블룸 교수는 "재택근무는 사무실에서 일할 때보다 더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무실에선 동료들과 관계를 위해 업무를 중단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 입장에서도 퇴사율이 줄어들어 새 직원을 채용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애플이 사무실 복귀를 연기한 이유도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면 재택근무를 중단한다는 쿡 CEO의 발표 이후 불만을 품은 직원들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재택근무를 지속하는 경쟁사로 이직하기도 했다.

이에 경영학계에선 향후 재택근무와 사무실 출근의 장점을 합친 혼합형 근무제를 채택하는 기업이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혼자 집중해서 해야 하는 일은 집에서, 함께 협력해야 하는 일은 사무실에 출근해서 처리하는 게 보편화될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국내 ICT 기업들도 지금은 4단계 거리두기에 따른 전면 재택근무에 들어갔지만, 거리두기가 완화되면 혼합형 근무제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동통신 3사는 거점오피스를 도입해 직원들이 한 군데 몰리는 것을 막으면서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협업할 수 있게 하는 형태로 혼합형 근무제를 시험하고 있다. 3N(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을 포함한 주요 게임사는 현재 전면 재택근무 중이지만, 신작 개발과 업데이트가 연기되는 문제가 있어 거리두기가 완화되면 재택근무와 사무실 출근을 병행하는 혼합형 근무 체제가 자리 잡을 전망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ICT 기업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재택근무를 하면 처음에는 생산성이 올라가다가 결국에는 생산성이 떨어지는 모습이 관측된다. 동료와 협의하지 않아도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재택근무가 효과적이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대화하고 조정해야 하는 일은 재택근무가 어렵다. 재택근무가 어려운 대표적인 사례로 게임 업계를 들 수 있다. 게임을 완성하기 위해 동료 간 소통의 양이 급격히 늘어나는 데 이럴 때 재택근무를 하면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직원 입장에서도 업무 시간과 휴식 시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실제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문제가 있다. 동료와의 인간관계도 약해진다. 때문에 기업은 재택근무를 도입하기에 앞서 재택근무와 사무실 출근을 적절하게 섞는 정교한 계획을 세울 필요성이 있다. 프로젝트 일정을 나누고 재택근무가 가능한 시기에는 재택근무 위주로 일을 처리하고, 협업이 필요한 시기에는 사무실 출근 위주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