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혼의 재발견 - (1) 광주정신] 세계를 사로잡은 끼와 혼, BTS 제이홉 스프릿(spirit)

2021-07-22 22:47
이것이 Z세대 광주다

BTS 제이홉

제이홉(정호석‧27)은 방탄소년단(BTS) 멤버 7명 중 유일한 광주 출신이다.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광주서일초교, 일곡중, 광주국제고교를 졸업했고, 글로벌사이버대학교(방송연예학)를 거쳐 한양사이버대학교 대학원(광고‧미디어 MBA 과정)에 재학 중이다. 팀의 메인댄서와 래퍼를 맡고 있는 인기 절정의 이 잘생긴 청년은 춤으로 세상을 사로잡았다.

美도, 日도, “제이홉처럼 추세요”

그의 춤은 이제 국제적으로 모두가 배우고 따라하는 춤이다. 미국의 온라인 댄스스쿨 ‘스티지 스튜디오’는 지난 6월 21일 유튜브에 ‘댄서들, 방탄소년단 제이홉의 댄싱에 반응하다’(Dancers React to BTS J-Hope Dancing)란 제목의 동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에서 이 학원의 강사들은 수강생들에게 제이홉의 장점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가르쳤다. “제이홉처럼 추세요”라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일본의 저명한 댄서이자 안무가인 아라타는 제이홉을 아예 ‘대선생’(大先生)으로 부른다는 보도도 있었다(세계일보, 2021년 6월 28일, 5월 31일).

이보다 앞서 미 월스트리트 저널 매거진(The WSJ)은 2020년 11월 BTS를 음악부문 ‘올해의 혁신가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제이홉을 ‘팀의 스타댄서’라고 소개했다. 그 외에도 ‘맹렬한 무대 존재감의 래퍼‧댄서‧송라이터‧프러듀서’(롤링스톤), ‘팀의 가장 뛰어난 댄서’(엔터테인먼트 위클리), ‘댄스 플로어의 마스터, 킬러 댄서, 댄서 그 이상’(엘리트 데일리), ‘BTS의 춤의 제왕, 춤의 핵심’(빌보드) 등 극찬이 쏟아졌다.(서병기, 헤럴드경제, 2020년 11월 14일).

나이 먹은 세대는 이해하기 쉽지 않기에 그의 춤에 대한 평가를 위키피디아에서 한 대목 인용한다. “…테크니컬 웨이브, 팝핀 등 기교가 요구되면서도 파워풀한 안무에 특히 강하다. 동작이 매우 정확하며, 몸이 유연하고 탄력적이어서 힘이 요구되는 동작들도 쉬운 듯 해낸다. 각종 테크니컬, 기교에 관해선 절대 불변의 1인자, 허리와 관절을 정말 잘 사용한다.…”

“시험 끝나면 선생님께 꼭 감사인사”

제이홉은 키 177㎝로 춤에 적합한 체격에 좋은 다리 라인을 가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춤을 잘 췄다. 광주의 한 댄스학원에 다녔는데 2NE1의 공민지 등도 이 학원 출신이라고 한다. 2008년 전국 댄스경연대회에서 우승하고, BTS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최초의 계약 연습생이 된 게 신화의 시작이었다. 그는 작사, 작곡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 112곡에 달하는 저작권도 갖고 있다. 2018년 3월 내놓은 첫 믹스테이프 ‘Hope World’는 빌보드 200 차트, 63위와 38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 솔로 가수가 빌보드 200에서 2주 연속 차트에 오른 것도, 빌보드 200과 핫 100에 모두 진입한 것도 그가 처음이다.

우리 취재팀은 광주국제고교를 방문해 제이홉의 고교 3학년 때 담임이었던 박상인 교사를 만났다. 그는 제이홉이 “예의가 바르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중간‧기말고사를 치를 때면 시험을 끝낸 학생들은 그냥 귀가하지만, 제이홉은 교무실에 들러 담임에게 ‘시험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꼭 인사하고 갔다. 지금도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새 앨범이 나오면 보내주고 스승의 날에도 잊지 않고 감사 문자를 보낸다.”

제이홉은 예체능과 어학, 독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같은 국제고교 국어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소설, 역사, 철학, 과학책에 심취했다. 풍부한 독서량이 뒷날 노랫말을 쓰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초중학교 때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부모는 제이홉이 춤추는 걸 처음엔 몰랐을 것이나, 아들이 하고 싶어 하는 걸 알고 지지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엘리트 충원의 배타적 二元化 구조

BTS처럼 제이홉에 관한 얘기도 끝이 없다. 그런데 왜, 갑자기 제이홉인가? 우리는 광주 정신의 미래, 그 한 부분을 제이홉에게서 찾고 싶었다. 광주 정신 또는 문화는 고정된 것도, 누구로부터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광주사람들의 총체적인 삶에 의해 구성(構成)될 뿐이다. 제이홉의 삶과 스토리도 미래세대, 광주의 정신가치를 구성하게 될 많은 요소 중의 하나가 될 걸로 본 것이다. 제이홉은 더 다양하고 더 열린 미래 광주의 상징인 것이다.

광주의 엘리트 충원은 전통적으로 이원화(二元化) 구조였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30년 군사 권위주의체제 아래서 엘리트층은 체제 순응세력과 저항(민주화)세력으로 양분됐다. 처음엔 주로 고시(考試) 출신들인 순응세력이 앞서 갔으나, 김대중 중심의 민주화세력이 광주에 뿌리를 내리면서 세(勢)가 역전됐다. 그 사이에 재빨리 말을 갈아 탄 사람들도 있어서 지금은 서로들 섞였지만 이들 두 세력이 광주 엘리트층의 두 축(軸)을 이뤄온 게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제대로 주목받지도, 성장하지도 못했다. 관(官)과 정치권력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조선조 500년 유산으로부터 자유로운 지역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광주가 유독 심했다. 덕분에 인구 대비 고시 합격률이나 명문대 진학률은 뒤지지 않았고, 민주화도 앞서나갔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영역의 가치와 인재들에 대한 인식은 낮았다. 관직과 정치(政治)에 대한 신앙과도 같은 집착이 광주를 협소한 전근대적 공간 속에 가둔 셈이다.
 

조선대 K컬처공연ㆍ기획학과 권세진

조선대 K컬처공연ㆍ기획학과 김동주


더 다양하고 열린 미래 광주의 상징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한다. 디지털 시대엔 자유분방하고 상상력이 넘치는 역동적 인재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엘리트로 우뚝우뚝 설 수 있어야 한다. 제이홉처럼 말이다. 광주의 옛 도청 자리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서있다. 오늘날, 광주의 정신(문화)을 견인하는 데 필요한 것은 건립비만 7000억원에, 연간 운영비만 수백억이 든다는 이 거대한 전당일까, 아니면 제이홉이나, 제이홉을 발탁한 미학(美學) 전공의 BTS 창업자, 방시혁 같은 인물일까.

우리는 제이홉에 대한 젊은 세대의 생각이 궁금했다. 조선대학교 K컬처 공연‧기획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권세진(21) 김동주(20) 학생을 학과장인 손영미 교수와 함께 만났다. 제이홉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는지를 물었다. “춤 실력이 뛰어나다. 모방이 아닌 독창적인 춤을 춘다.”(권세진) “실력이다. 단원들이 창의적인 발상을 하고 제이홉의 의견이 잘 반영되는 것 같다. 어려운 춤동작이 음악과 어울려 시너지 효과를 낸다.”(김동주) 두 학생 모두 자신의 이 같은 선택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지방이냐, 서울이냐는 중요하지 않다”고도 했다.

 

조선대 K컬처공연ㆍ기획학과 손영미 교수
 

손 교수가 이렇게 거들었다. “BTS의 성공 비결은 기획력이다. 개성 있는 작사와 작곡, 춤으로 청년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세계적인 보편성을 갖췄고 가사에 청년들의 고민을 담았다. SNS를 통해 피드백을 정확하게 한다. 그 기획력은 배울 만하다. 어릴 적부터 교육을 통해 기본을 갖춰야 대스타가 될 수 있다. 암기 위주의 교육을 벗어나 인문학과 예체능이 섞여야 한다. BTS는 인문학적 소양이 드러나고, 단원들의 인성까지 좋아서 성공한 것이다.”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의 말이다. “과거 B보이들은 학교에서 존중받지 못했다. B보이에서 K-팝과 BTS에 이르기까지 30년 가까이 걸렸다. 성적순 1열주의가 사라지고 아이들의 존재가치를 존중하도록 교육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시험성적 위주의 구태의연한 사회는 변화속도가 느리다. 다양한 생각을 하고 창의적인 아이들이 역사를 이뤄낸다. 창의성을 잘 살릴 수 있도록 교육해 제2 제3의 제이홉이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 분명히 나올 것이다.”

“모두 다 눌러라 062-518”

제이홉의 광주사랑은 곡진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2015년 자신이 작사, 작곡한 힙합 마 시티(Ma City) 광주 편에서 이렇게 노래(랩)한다. “나/전라남도 광주 baby/…/무등산 정상에 매일매일/내 삶은 뜨겁지, 남쪽의 열기/…/나 KIA 넣고 시동 걸어 미친 듯이 바운스/오직 춤 하나로 큰 꿈을 키워/…/날 볼라면 시간은 7시 모여 집합/모두 다 눌러라 062-518”

여기서 ‘7시’는 극우단체들이 광주를 비하할 때 쓰는 표현이다.(광주가 한반도의 중심에서 7시 방향에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이런 비하 발언에 대해 제이홉은 ‘그래 어쩔래, 우리들끼리 7시에 모이자, 모여서 광주의 지역 번호인 062와 광주의 심장인 518(5‧18 민주화 운동)을 누르자’고 맞받아친다. 가사 중 ‘KIA’도 광주 기아자동차의 KIA다. 올해도 5‧18 41주년을 맞아 한 팬이 이 가사를 올리자, 제이홉은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양의 이모지(이모티콘과 이미지의 합성어)를 팬 커뮤니티인 ‘위버스’에 올렸고, 불과 4시간 만에 전 세계의 팬들이 1만3000개 이상의 5‧18 추모 댓글을 달았다(광주일보, 2021년 5월20일).

BTS는 지난 9일 공개한 신곡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 뮤직비디오에서 수어(수화언어)를 이용한 안무를 선보여 또 한번 감동을 줬다. 세계의 수많은 청각장애인들이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그 BTS의 메인댄서가 제이홉이라는 게 기쁘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