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전쟁 후 최악위기?"...호찌민市, 확진자 폭증에 혼란 거듭

2021-07-22 00:10
코로나19 연이어 최대치 경신...총리령 16호 남부전역으로 확대
운송차질에 생필품도 부족현상...발 묶인 시민들 불안감 호소
기업 생산활동 연이어 잠정중단....첫 한국인 사망자도 발생
베트남, 7개 부처 모여 특별실무단 설치..."국민건강 최우선할 것"

호찌민시 최대 중심거리인 응우웬후에 광장이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독자제공]


“호찌민 내 확진자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 달 정도만 감내하면 될 줄 알았는데 갈수록 사태가 심각해져 큰일입니다. 이제 호찌민 내 주요 시내도로를 보면 공허한 유령도시 같습니다. 마치 1975년 사이공 함락 직전 길거리가 텅 비었을 때를 연상케 합니다.”(60대 떤빈 거주 A씨)

“식품 사재기를 하지 말라는 정부의 말만 믿고 식료품을 구매하지 못했는데, 이제 식료품점에 물품이 없습니다. 온라인 주문도 배달이 일주일 이상 밀렸다는데 당장 먹거리를 구하지 못하는 현실이 돼버렸습니다.”(40대 가정주부 D씨)

“우리 사업장을 포함해 여러 한국 기업의 공장들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베트남 정부의 방역수칙을 지키면 생산 활동을 할 수 있지만, 이미 많은 근로자들이 호찌민을 떠나고 있어 공장을 가동할 인원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한국교민 50대, K씨)

베트남 최대 경제도시이자 가장 인구가 많은 호찌민시가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연일 수천여명의 확진자가 나오면서 사실상 도시 전체가 봉쇄됐고 시민들은 불안에 휩싸였다. 시 당국은 의료진과 보건부 인력 1만여명을 투입해 통제와 관리를 강화하고 있지만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면서 벅찬 모습만 역력해 보인다. 확진자가 계속해서 증가하면서 지난 17일에는 베트남 내 첫 한국인 사망자까지도 나왔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호찌민 9군의 한 대형마트에서 야채코너가 텅 비어 있다. [사진=독자 제공]


21일 베트남 보건부에 따르면 전날 베트남의 코로나19 확진자는 4795명이 발생했다. 이 중 호찌민의 확진자는 3322명이다. 전날에도 4000명대 발생한 가운데 호찌민시는 2875명의 환자가 발생해 다수를 차지했다. 지금까지 호찌민시에서 나온 확진자만 3만7098명이다. 4차 대유행이 시작된 지난 4월 27일부터 현재까지 감염자 수가 5만8421명인 점에 비춰보면 절반이 훌쩍 넘는 수치다. 시 당국은 이날 주요 확진자들이 주로 봉쇄지역과 밀접 접촉자(F1)로 격리된 이들에게 나왔다고 밝혔다.

당장 문제는 먹거리다. 뚜오이체 등 현지매체들에 따르면 시민들은 먹거리를 제때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당초 당국은 호찌민에 충분한 생필품이 공급될 것이라면서 사재기를 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이미 총리령 15호에 이어 16호까지 수주째 영업중지가 계속되자 곳곳에는 주요 품목들이 동이 나고 있는 현실이다.

한 시민은 동네 소매점뿐만 아니라 대형 체인슈퍼마켓에 가도 먹을거리가 텅 비었다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업체가 온라인을 통해서 예약주문을 받는다곤 하지만 이마저도 5일 이상 기다려야 한다며 당장 양질의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10만 교민이 살고 있는 호찌민시에서 한인마켓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상대적으로 한국식품이 다수인 대표적인 K마켓과 스카이마트, 롯데마트 등은 상황은 그나마 낫지만 정작 계란, 파 등 필수적인 물품들은 재고가 없는 상황이다. 한인마켓 관계자는 시 전역에서 운송통제가 이뤄지면서 물품배송에 차질이 생기는 가운데 공급 가격도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기업들의 불만도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 당국은 각 기업의 사업장 내에서도 확진자가 속출하자 사업장 내에서 숙식과 격리가 가능할 때만 생산 활동을 허락하고 있다. 삼성전자 호찌민 가전공장과 같은 대규모 시설은 직원들의 숙소를 별도로 마련하고 생산을 지속하고 있지만 중소업체들은 이 같은 여건을 마련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근로자들이 공장 영내생활을 할 경우에만 생산시설을 허락한다며 작은 기업들은 기계설비 제외하면 충분한 부지를 확보하기 힘들고 베트남 정부가 요구하는 1주일에 1회 진행하는 코로나10 테스트비용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현실을 토로했다. 나이키와 유니클로의 1·2차 협력업체인 다수의 한국 봉제·신발기업들도 잠정적으로 생산 활동을 중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7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베트남 내 첫 한국인 사망자도 발생했다. 호찌민총영사관과 한인회 등에 따르면 교민 A(58)씨는 코로나에 확진된 뒤 이달 초 확진 판정을 받고 생활 치료시설에 격리된 뒤 상태가 악화해 대형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사망했다. 베트남 당국은 이날 A씨를 사망 직후 화장한 뒤 호찌민총영사관 측에 최종 사망을 통보했다. 유족들은 A씨가 평소에는 다른 기저질환이 없었다면서 오히려 열악한 군병원에 격리돼 상황이 악화됐고 유족의 동의절차 없이 당국이 임의로 화장을 진행했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총영사관에 따르면 현재까지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고 베트남 내 시설격리 중인 한국인은 약 10명이다.
 

베트남 보건당국은 공장 근로자들에게 출·퇴근을 하지 말고 영내 숙소에 머물면서 생산활동을 지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독자 제공]


베트남 보건당국은 19일부터 호찌민시를 비롯해 남부전역 16개 성·시에 총리령 16호를 발효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호찌민시는 기존 적용되고 있는 16호가 계속해서 2주간 연장된다. 총리령 16호에 따르면 시민들은 최소 2m 이상 간격을 유지해야 하며 직장, 학교, 병원을 제외한 공공장소에서 2인 이상 모임이 금지된다. 직장은 공무와 필수생산을 위해서만 근무가 가능하다. 이동 허가를 받은 인원이 아닌 일반 시민이 산책 등 불필요한 외출을 하다 적발되면 100만~300만동(약 5만~15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정부는 남부와 북부를 오가는 항공편도 19일부터 내달 1일까지 일부편을 제외하고 잠정적으로 운항을 중지한다고 밝혔다. 만약 호찌민 등에서 하노이로 오는 경우는 필수적으로 의료신고서와 블루투스(bluetooth)·위치정보시스템(GPS)을 작동시켜야 한다. 또한 호찌민 시당국은 외곽은 물론 도심 내에도 검문소를 추가로 설치해 시민들의 이동을 억제한다는 방침이다. 사실상 남부(호찌민)와 북부(하노이)의 왕래를 차단해 남부발 확산이 북부로 전이되지 않게 양 지역을 분리하겠다는 전략이다.

팜민찐 총리는 20일 호찌민시에서 코로나19 전염병을 예방하고 통제하기 위해 7개의 ‘특별실무단’ 설립에 관한 문서에 서명했다. 총리는 "경제와 방역의 이중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일관된 과제“라면서도 ”특히 현재와 같은 시기에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다. 이제부터는 정부 부처가 합동으로 진행하는 특별실무단을 중심으로 코로나19 방역계획과 실행을 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7개 부처에는 코로나 관련 부처인 국방부, 산업통상부, 농촌개발부, 교통부, 건설부, 정보통신부, 노동보훈사회부가 포함됐다. 특별실무단은 각 부처 차관의 직접 지시를 받고 지방정부와 긴밀히 협력하여 지역의 전염병 예방 및 통제 관련 문제를 사전에 처리하고 즉시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다.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결정사항은 국가질병통제위원장인 부득담 부총리가 총리에게 전권을 위임받아 업무를 시작했다.
 

부득담 베트남 질병통제관리위원장 겸 부총리가 호찌민 코로나19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베트남통신사(TTX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