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청소노동자] 2년 전 폭염 속 사망…비극 되풀이

2021-07-19 08:00
시설·사람 등 근무환경 개선 필요성 대두

서울대에서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이 2년여 만에 또 발생했다. 과거 고인은 창문이나 에어컨 하나 없는 휴게실에서 숨져 열악한 근무환경이 문제가 됐다. 이번에는 관리자 '갑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진위를 두고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인권 침해에 대한 경각심이 다시금 요구된다. 서울대가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무더운 여름, 열악한 휴게실서 노동자 죽음
 

서울대에서 2019년에 이어 올해에도 청소노동자가 근무 중 숨졌다. 사진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정문. [사진=서울대 제공]


2019년 8월 9일 낮 서울대에서 일하던 60대 청소노동자 A씨가 사망했다. 공과대학 제2공학관 직원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벌어진 일이었다. 심장질환을 앓던 A씨는 수술을 앞둔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져 더욱더 안타까움을 샀다.

이 사건으로 시설관리 노동자 근무환경 개선 필요성이 대두됐다. 서울대 학생 모임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은 성명을 내고 "이 죽음은 사회적 죽음"이라며 "서울대는 비인간적인 환경에 고인을 방치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제의 공간이었던 직원 휴게실은 계단 아래 마련돼 창문과 에어컨이 없었다. 벽에 달린 작은 환풍구 하나와 선풍기가 전부였다. 비좁은 데다 환기조차 잘 안 돼 숨이 턱턱 막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곳에서 고인은 낮 기온이 35도에 육박하던 날 숨을 거뒀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재정 지원을 받는 서울대에서 생긴 일인 만큼 파장도 컸다.

공동행동은 "고령 노동자를 고용하면서 비인간적인 환경에 방치한 건 학교 측 책임"이라며 "모든 노동자에게 인간다운 근무환경과 처우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교수·학생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교수 갑질'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봤다. 우 교수는 페이스북에 "열악한 환경과 공간 부족은 기본적으로 교수 갑질 때문"이라며 "교수들이 학내 구성원을 배려하기보다 교수가 왕이고, 교수 공간도 부족하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수라는 지위·환경을 자기 혼자 힘으로 얻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교수와 청소노동자 등 다양한 대학 구성원 각자 역할을 인정하길 바랐다.

이에 서울대는 전담팀을 꾸려 학내 직원 휴게실 실태를 전수 조사했다. 자체 표준지침(가이드라인)도 만들어 개별 단과대가 이를 이행하도록 권고했다. 고용노동부도 실태 조사를 통해 휴게실 15곳에 대한 개선 권고 조처를 내렸다. 특히 계단 밑에 위치한 휴게실은 부적합하다고 판단해 폐쇄·이동하도록 했다.

◆이번에도 근무환경 문제···"시설 아닌 사람"
 

6월 9일 서울대 청소노동자들이 '제1회 미화 업무 필기고사'를 보고 있다. [사진=전국민주일반노조 제공]
 

하지만 약 2년 만인 지난달 26일 50대 청소노동자 B씨가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번에는 시설 문제가 아니었다. B씨 관리자인 안전관리팀장이 평소 청소노동자들에게 업무와 관련 없는 시험을 보게 하는 등 갑질을 해왔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시험 문제로는 '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로 쓰라', '919동 준공연도' 등이 출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지난 17일 익명의 제보자에게서 받은 '제1회 미화 업무 필기고사' 현장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 청소노동자들은 지난달 9일 치러진 시험에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면 화면에는 문항별 배점과 함께 '점수는 근무성적 평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라고 적힌 안내 문구가 보였다.

앞서 서울대 측은 외국인 유학생에게 안내가 필요한 때에 대비해 시설물 이름을 영어나 한자 등으로 쓰는 시험 문제를 출제했다고 해명했다.

노조는 반발했다. 해당 사진을 근거로 "청소노동자들에게 필요 없는, 또 취약한 필기시험을 통해 모멸감을 주고 이를 근무평가에 반영하는 전형적인 노동자 통제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일부 청소노동자들은 시험 성적에 대한 박탈감과 자괴감 등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는 학내 인권센터를 통해 이번 사건 전말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기간 안전관리팀장은 기존 청소노동자 관리 업무 대신 코로나19 대응 업무를 맡는다. 징계 여부는 인권센터 조사가 끝난 뒤 결정된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지난 13일 입장문에서 "고인의 산업재해 신청과 관련해 성실하게 협조하고, 인권센터 조사 결과 미비한 부분이 발견되면 적극적으로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고인은 2019년 입사 후 2년 동안 누구보다도 성실히 학생들을 위해 애쓰셨던 분"이라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공정한 인권센터 조사에 대한 의지도 내비쳤다. 그는 "청소업무 시설관리직 직원들 의견을 충분히 경청해 근무환경과 인사관리 방식을 다시 점검하고, 부족한 점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업무 매뉴얼을 통해 업무 표준을 정립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족과 노조는 서울대 자체 조사가 아닌 공동조사단(노조·학교·국회 등)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페이스북에 2차 가해 글을 남겼던 구민교 교수, 고인 근무지 책임자였던 관악학생생활관 관장 노유선 교수가 인권센터 운영위원으로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치권은 이번 사건을 봉준호 감독 영화 '설국열차'에 비유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산업재해예방 태스크포스(TF) 소속 의원들은 지난 15일 서울대 현장을 점검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회 통과 등 법·제도적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흡한 점이 있다며 고인을 애도했다.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전날 상임위원회에서 이 사건 관련 논의를 했는데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며 "마치 설국열차와 같이 서로 다른 두 개 기차 칸에서 살면서 다른 칸 상황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TF 의원들은 고인이 사망한 장소를 방문한 뒤 유족·노조 측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민주당은 이날 간담회를 포함해 노동 현장 실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내년 시행할 중대재해법 시행령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더불어민주당 산업재해예방 태스크포스(TF) 이해식·장철민·이탄희 의원이 15일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사건과 관련해 기숙사인 관악학생생활관을 현장 방문하고 있다. 사진은 청소노동자들이 근무하는 분리수거장을 찾은 민주당 의원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