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이슈페이퍼] ④ 기후변화 리스크, 암울한 전망과 변화의 움직임

2021-07-09 00:10

[황인창 서울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 박사)]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사실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과학계에서 기후변화의 가능성이 처음으로 제기된 것은 125년 전이었다. 스웨덴의 과학자 스반테 아레니우스(Svante Arrhenius)는 1896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CO2)의 농도 변화가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을 유발할 수 있음을 밝혔다. 이후 20세기 중후반을 지나면서 관측 자료가 늘어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NAS)의 분석,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의 평가보고서 등이 출간되면서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사실은 대중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보편적 지식이 되었다. 물론 일부에서는 기후변화에 관한 회의적인 시각(대표적으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존재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계가 축적한 이론과 자료는 일관되고 분명하게 산업화 이후 평균기온 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은 온실가스 배출임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가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보다는 온난화의 정도가 지구의 에너지 균형을 파괴할 정도로 강력한 것인지, 더 나아가 에너지 균형이 파괴되는 속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빠를 것인지 등이 보다 큰 관심사가 되었다.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받은 에너지를 사용해 생명체의 활동을 유지하고 지구가 가진 에너지의 일부는 우주로 방출함으로써 오랫동안 에너지의 균형을 유지해 왔다. 산업화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온실가스(대부분 화석연료의 연소과정에서 배출)는 지구가 우주로 내보내는 에너지를 잡아 지구 표면으로 다시 돌려보냄으로써 적어도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지구의 에너지 균형에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지구의 활력(vital sign)을 측정하는 주요 지표들은 에너지 균형 상태에서 이미 균열이 발생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일례로 2020년은 기온 관측이 시작된 1880년 이래 가장 뜨거운 해 중의 하나였으며, 역사상 연평균기온이 가장 높았던 20개 연도 중 19번은 지난 20년 사이에 발생했다. 평균기온뿐 아니라 이산화탄소 농도, 북극 해빙의 넓이, 남극과 그린란드 빙상의 넓이, 해수면의 높이, 해양이 축적한 열에너지의 양 등 지구의 에너지 균형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들은 역사상 최악의 기록을 거의 매년 경신하고 있다. 보다 암울한 것은 지금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지구의 에너지 균형 상태는 균열을 넘어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파괴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현재와 같은 속도로 온실가스 배출을 지속하면 이르면 2030년대부터는 기후 시스템의 붕괴가 시작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한 연구 결과도 있다.

이처럼 암울한 전망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행히도 최근 각국 정부와 시장에서 보이는 변화의 움직임은 어느 정도 희망을 품게 한다. 우선 전 세계 주요 국가와 도시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부문별 목표를 수립하고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와 서울시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110개 국가와 169개 이상의 도시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을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지난해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에너지 산업과 관련하여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하나는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가 내연기관차의 대표주자인 도요타를 제치고 시가총액 1위를 달성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재생가능에너지를 주력으로 하는 에너지기업 넥스트에라에너지가 대표적인 석유화학기업 엑손모빌을 제치고 미국 에너지기업 시가총액 1위를 달성한 것이다. 물론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 기인한 바가 없지는 않지만, 두 가지 사건은 에너지 산업과 관련하여 중요한 전환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참고로 자본시장이 코로나19의 영향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난 현재 기준으로도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도요타의 2~3배에 달하며, 넥스트에라에너지의 시가총액은 엑손모빌과 셰브론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를 중심으로 중장기 전략을 재편하고 있으며, 재생가능에너지 기업들의 시가총액 규모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자본시장에서는 이미 에너지 산업과 관련한 시대적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머서(Mercer)가 영국과 독일 정부, 국제금융공사(IFC)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연구에서는 산업별 기후변화 리스크 차이로 인해 글로벌 자본의 저탄소 산업으로의 이동이 향후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장의 변화에 민감한 금융 분야에서도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기후 및 환경관련 금융리스크 관리를 위한 목적으로 2017년에 설립된 녹색금융협의체(NGFS)에는 현재 전 세계 95개 중앙은행과 감독기구가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9년 한국은행을 시작으로 2021년에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NGFS에 가입했다. 각국 중앙은행과 금융감독기구는 기후변화가 금융을 포함해 개별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별 기업 단위에서도 기후리스크 대응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글로벌 기업은 저마다 탄소중립 목표를 제시하고 자사의 공급망을 관리하고 있다. 또한 역사적인 배출량을 모두 포함해 배출량 제로(net zero)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는 기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기후변화 리스크가 초래한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떠한 성향의 정부가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시장의 변화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화석연료 친화적인 트럼프 정부하에서도 미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는 점이 하나의 예이다. 우리 사회는 ‘기후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하며 정부는 어떠한 지원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 정부, 학계, 연구자들이 상대방과 자신의 근거를 검토하여 서로의 입장을 좁혀나가는 과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사회화를 통한 학습). 관련하여 현재 중앙 정부는 탄소중립 국가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데, 탄소중립 전략의 하나로 ‘사회화를 통한 학습’을 통해 국내 산업계와 시장이 기후리스크가 촉발한 시대적 변화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경제 분석 모형을 활용해 연구를 하다 보면, 더 이상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도 거대한 재난을 향해가는 지구의 상태를 돌이킬 수 없다고 판단될 때 합리적인 사회구성원들이 선택하는 독특한 삶의 방식을 관찰할 수 있다. 그것은 재난이 오기 전까지 가용한 모든 자원을 먼저 다 써버리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연구자에 따라서는 이르면 2030년대부터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전망이 현실화된다면, 그때까지 우리 사회가 지구의 에너지 균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거대한 재난이 오는 것을 당연시하면서 화석연료와 자원을 서로 먼저 사용하기 위해 다투는 암울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기후리스크가 사회리스크로 전이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가장 암울한 전망이지만, 정부와 기업을 포함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는 이러한 전망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지금부터 행동해야 할 것이다.
 
※ 칼럼 제공 : 오픈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