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중국 100년의 경제적 성과

2021-07-09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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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진핑 주석은 중국몽의 일환으로 공산당 창당 100주년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을 의미하는 ‘두 개의 백 년’을 목표로 제시했다. 그중 첫 번째 행사가 7월 1일 성대하게 치러졌다. 1921년 57명으로 시작한 공산당은 2021년 중국 전체 인구의 6.5%에 달하는 9514만8000명의 당원을 가진 세계 최대 정당으로 발전하였다. 시진핑 주석은 아편전쟁 이후 나락으로 떨어졌던 중화민족이 부흥하는 데 공산당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치하하였다. 공산당이 1949년 설립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청조의 멸망 이후 반식민지 상태를 극복하고 강대국의 지위를 회복하였다.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천안문사태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중국 경제는 세계 최대의 제조국가인 동시에 4차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로 부상하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공산당의 가장 큰 성과는 경제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40년간 중국이 이룩한 경제적 성과는 엄청나다. 경제사학자 앵거스 매디슨의 추정에 따르면,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20년 32.9%에서 1950년 4.6%까지 급락하였다. 개혁·개방이 시작된 이후 비중은 2003년 15.1%에서 2030년 23.8%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와 영토를 고려할 때, 경제 규모의 성장을 역사적 업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소득 수준의 향상은 유례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매디슨의 통계를 보면, 중국의 1인당 소득은 1000년 466달러, 1500년 600달러, 1820년 600달러로 정체되어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한 다음 해인 1950년 1인당 소득은 아편전쟁 이전보다 낮은 448달러에 불과했다. 즉, 이 당시 중국인은 950년 전보다 더 못살았던 것이다. 공산당 통치 하에서 소득은 1973년 838달러, 2003년 4803달러에서  2030년 1만5763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소득 증가는 절대적 빈곤 문제의 완전한 해결로 이어졌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2월 25일 전국 탈빈곤 총결산 표창대회에서 절대적 빈곤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선언하였다.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4월 공개한 ‘인류 빈곤감소의 중국 실천’ 백서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소득뿐만 아니라 교육 및 보건에서도 발전을 이뤘다. 이런 결과는 2012년 이후 가속화된 농촌 지역 빈곤 퇴치 정책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100년의 완수가 두 번째 100년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첫 번째 100년보다 두 번째 100년의 난이도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 경제에서 정부 부문이 줄어들고 민간 부문이 늘어났기 때문에 공산당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계속 줄어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중 무역전쟁 이후 대외 여건도 상당히 악화되어 수출 지향 성장 전략이 한계에 봉착하였다.

공산당이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빈부 격차의 확대이다. 아주 못사는 사람은 이제 없어졌지만,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사이의 차이는 훨씬 더 커졌다. 상위 10%의 소득 비중이 1978년 27%에서 2015년 41%로 증가한 반편, 하위 50%의 소득은 27%에서 15%로 감소하였다. 불평등에 대한 국제비교를 주도하는 토마 피케티 교수에 따르면 중국의 분배 구조는 사회주의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이다. 개혁·개방 이전에는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노르딕 국가와 유사했던 불평등이 현재는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미국과 유사하게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도 공산당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축소시켰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전쟁을 시작한 이후 공산당에 대한 비판이 본격화되었다. 미국 정부는 홍콩 보안법과 신장위구르자치구 인권 탄압에 연루된 공산당 간부에 대해 직접 제재를 부과하였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 미국의 제재 강도는 더 세질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취임 후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구상의 성장세가 2019년부터 둔화되었다. 중국의 대외투자가 주춤하게 된 핵심적인 이유는 미국의 견제이다. 그러나 기업의 비협조도 무시할 수 없다. 시노펙, 코스코, 화웨이와 같은 국유 기업 또는 국가 대표 기업은 정부의 정책 목표에 잘 따르는 편이다. 그렇지만 정부로부터 직접적인 지원을 받지 않는 기업은 시장 논리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수의 민영 기업들이 정부가 원하지 않거나 때로는 정부에 반하는 투자를 하고 있다. 공개적으로 금융정책을 비판했다가 공개석상에서 사라진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나 정부의 지시를 어기고 뉴욕증시에 기업공개를 한 디디추싱이 대표적이다. 국진민퇴((國進民退) 사례가 많아지면, 개혁·개방의 후퇴는 불가피하다. 더 좋지 않은 사례는 안방보험과 하이항그룹(HNA)과 같이 개혁·개방을 악용하는 기업이다. 부정부패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자 재산을 해외에 도피하는 기업과 개인이 증가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자산의 채굴·거래를 막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러한 자본 도피를 막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창당 100주년 기념식이 열리기 일주일 전인 지난 6월 25일 중국 정부는 '중국신형정당제도' 백서를 공개하였다. 이 백서는 공산당과 8개 민주당파 및 무당파의 새로운 다당협력과 정치협상제도의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신형정당제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산당은 또 다른 변신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100년까지 남은 약 30년 동안 공산당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바뀌어 있을지 궁금하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대 국제학부 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