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디디추싱이 '괘씸죄'에 걸린 3가지 이유
2021-07-08 04:00
美증시 입성 뒤 십자포화 맞는 디디추싱
당국 경고 무시, 공산당 100년 전날 상장
데이터 보안 이슈 피하려는 미국행 의혹
미·중 갈등 속 국부유출 "적을 도와줬다"
당국 경고 무시, 공산당 100년 전날 상장
데이터 보안 이슈 피하려는 미국행 의혹
미·중 갈등 속 국부유출 "적을 도와줬다"
공유경제의 아이콘, 차세대 홍색 자본가로 불리던 젊은 스타 기업인이 하루아침에 매국노 취급을 받게 됐다.
중국 최대 차량 호출 업체인 디디추싱(滴滴出行)을 창업한 청웨이(程維) 회장 얘기다.
청 회장은 지난 2월 빈곤 퇴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청 회장도 "젊은 IT 기업으로서 탈빈곤에 참여하고 공헌한 데 대해 긍지를 느낀다"며 맞장구를 쳤다.
지난달 30일 디디추싱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하면서 상황이 급전했다.
아울러 디디추싱의 신규 가입자 유치도 금지했다.
온라인에서는 "디디추싱이 해외에서 상장한 건 중국의 중요 데이터를 미국에 갖다 바치려는 행위"라는 비판이 확산됐다.
지난 3일 리민(李敏) 디디추싱 부사장은 자신의 웨이보에 "악의적인 유언비어는 삭제를 했더라도 소송으로 대응하겠다. 추측을 자제해달라"라고 적으며 맞섰다.
이튿날인 4일 당국의 철퇴가 또다시 날아들었다. CAC는 모든 앱스토어에서 디디추싱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불법적으로 개인 정보를 수집·사용했다는 혐의를 씌웠다.
결국 디디추싱은 "리스크를 조사할 수 있도록 지도해준 당국에 감사 드린다. 최선을 다해 고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백기 투항을 했다.
누가 봐도 괘씸죄에 단단히 걸려든 모양새다. 디디추싱의 뉴욕증시 상장을 전후로 당국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미국행을 결정한 게 패착이었다는 분석이 자연스럽다.
◆"감히 뒤통수를 쳐?" 당국의 분노
지난 4월 인민은행과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은보감회),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회), 국가외환국 등 금융 당국은 디디추싱을 상대로 공동 웨탄(約談·예약 면담)을 진행했다.
웨탄은 당국이 문제 소지가 있는 기업을 소환해 질타하며 개선책을 제시하는 절차다.
인민은행이 공시한 웨탄 기록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증권 발행·거래에 대한 규범과 해외 상장 행위'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디디추싱이 보유한 데이터가 미국 등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을 경계하며 상장 연기를 권고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5월에는 교통운수부 등 8개 부처가 디디추싱을 포함한 10곳의 온라인 차량 호출 서비스 기업을 불러 웨탄을 실시했다.
운전기사에게 과도한 사납금을 요구하거나, 임의로 가격을 조정하고 빅데이터를 활용해 사용자를 차별화하는 등의 행태를 지적했다.
당국의 거듭된 경고에도 디디추싱은 은밀히 상장 작업을 지속했다. 비밀리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기업공개(IPO) 신청서를 제출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중화권 매체 둬웨이는 소식통을 인용해 "디디추싱이 상장 전에 감독 당국과 수차례 소통했지만 경고를 외면하고 상장을 강행했다"며 "베이징 고위층이 격노했다"고 전했다.
디디추싱의 상장일은 중국에서 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이 열리기 하루 전이었다. 잔칫날에 제대로 재를 뿌린 셈이다.
디디추싱은 임직원들에게 청 회장 명의의 비공개 내부 서신을 발송하는 식으로 상장 소식을 조심스럽게 알렸다. 대표적인 상장 세리머니인 타종 행사도 없었다.
당국의 심기를 살핀 행보들이었지만 후폭풍을 피하지는 못했다.
CAC와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공안부, 재정부, 인민은행 등 12개 부처는 온라인 플랫폼 기업을 감독·규제하기 위한 '네트워크 보안 심사 방법'을 공동 제정했다.
디디추싱은 지난해 6월 1일 공식 발효된 이 규제책의 첫 적용 대상이 됐다.
◆대형 악재 피하기 위한 얌체 상장
지난달 10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데이터 보안법'이라는 명칭의 법령 제정을 승인했다.
오는 9월 1일 본격 시행되는 해당 법은 데이터 보호와 분류·관리, 리스크 평가 및 응급 대응 등과 관련해 기업의 법적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다.
데이터 보안 관련 이슈를 '조례'나 '방법'이 아닌 법으로 직접 규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은 디디추싱처럼 중요한 데이터를 관리하는 기업이 미국에 관련 자료를 넘길 가능성에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 기반으로 성장한 중국의 빅테크(대형 IT 기업)들은 다양한 개인 정보는 물론 교통과 각종 인프라 정보까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보관 중이다.
미국은 지난해 말 도입한 '외국회사 문책법'을 통해 회계 감독 기구인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의 자료 제출 요구를 중국 기업이 거부하지 못하도록 옭아맸다.
중국 당국이 미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의 회귀나 홍콩 증시 상장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디디추싱은 미국 증시에 입성했다.
중국 당국의 의지를 과소평가했거나, 적어도 '데이터 보안법' 시행 전에 중국을 탈출하려는 '얌체 행보'였다는 비판이 거세다.
둬웨이는 "베이징의 관료들, 특히 CAC는 디디추싱의 미국 상장을 계기로 대량의 데이터가 외국인 손에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보도했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현 시점에서 중국 내 데이터 관련 사업자가 해외 IPO를 추진하는 건 상당한 위험이 있다"며 "디디추싱에 대한 압박은 다른 기업들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라고 말했다.
◆재주는 중국이 넘고 돈은 미국이 번다
중국이 디디추싱의 미국행을 언짢게 여기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국부 유출이다.
중국에서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엄청난 돈을 벌면서 미국 증시 투자자들의 배만 불린다는 논리다.
실제로 중국 교통운수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디디추싱의 월간 차량 호출 건수는 5억6200만건으로 집계됐다.
디디추싱이 지방 중소도시를 겨냥해 별도로 출시한 플랫폼 화샤오주(花小猪)는 320만건 수준이었다. 두 플랫폼을 합친 시장 점유율은 90.58%에 달한다.
디디추싱의 월평균 사용자 수는 5439만명, 점유율은 88.71%다.
우웨이창(吳偉强) 저장공업대 교수는 중국신문주간에 "디디추싱은 우선 각종 수단을 동원해 시장 점유율을 높인 뒤 운전기사들이 내는 사납금을 높이는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다"고 지적했다.
디디추싱의 올 1분기 매출은 421억6300만 위안(약 7조3900억원)인데, 중국에서 392억 위안을 벌었다. 매출의 92.9%가 중국 내에서 발생하는 구조다.
이번 디디추싱에 닥친 위기는 알리바바가 2014년 미국 상장을 이룬 뒤 겪었던 고난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상장 직후인 2015년 1월부터 중국 당국의 '알리바바 때리기'가 시작됐다.
당시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공상총국)은 "알리바바는 저질 짝퉁 제품을 유통하고 직원들은 뇌물수수를 일삼는다"며 알리바바의 정품 판매율이 37%에 불과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알리바바 주가는 폭락했고 집단소송 움직임까지 일었다. 사태 초기 반박에 나섰던 알리바바는 곧 역부족임을 깨달았고, 마윈도 직접 공상총국을 찾아가 고개를 숙였다.
6년 전과 달리 지금은 미·중 갈등이 극에 달했다는 점에서 상황이 더 심각하다.
중국 시장에서 얻은 이익을 미국 투자자에게 이전할 경우 중국 내 부의 축적과 재분배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인식이 더 강해졌다.
미국 자본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커촹반(科創板·과학혁신판) 등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대형 첨단기술 기업이 중국 본토나 홍콩에 상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 증시의 한 관계자는 "디디추싱이 미국에서 상장하는 건 스스로 인질이 돼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크다"며 "정무적 판단이 결여돼 빚어진 논란"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 입장에서는 우수 기업을 빼앗기고 잠재적으로 데이터 보안 리스크까지 떠안게 된 셈"이라며 "미국과 신냉전에 가까운 갈등을 겪고 있는 만큼 디디추싱의 행태가 고까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