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의 열린경제] ESG 우등생 되는 법? 기업 리더십에 달렸다
2021-07-06 17:12
<EGS 심층 진단 中>
'오르스테드'와 '파타고니아' 보세요
'오르스테드'와 '파타고니아' 보세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마라톤 경기이다. 경영과 생산 등 가치 사슬 전반에 ESG 가치가 스며들게 해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높이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 관련 조직을 가동한다든가 하는 식의 대외적 선언만으로 ESG 경영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첫 발자국을 뗀데 불과하다. 진정성을 가지고 꾸준히 친환경 사업, 이해관계자와의 소통, 투명하고 깨끗한 경영 등을 해나가야 의미 있는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
ESG 경영을 잘하면 기업이 많은 수익을 내고 투자수익률도 양호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문제는 이게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긴 호흡을 가지고 ESG와 경영혁신을 잘 융합해야 이룰 수 있는 열매이다. ESG 우등생이 되는 효과적인 길 중 하나는 모범 기업으로부터 배우는 방법이다. 그래서 돋보이는 성과를 올리고 있는 두 기업을 소개하려 한다. 한 기업은 덴마크의 재생에너지 기업인 오르스테드, 다른 한 기업은 미국의 아웃도어 제품 기업인 파타고니아이다.
먼저 오르스테드. 이 기업은 캐나다의 금융정보 기업인 코퍼릿 나이츠가 선정한 2020년 글로벌 지속가능 100대 기업 중 1위에 올랐다. 오르스테드가 그동안 이뤄낸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은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이다. 지난 10년 동안에 전통적인 화석연료 기업에서 재생에너지 기업(연안 풍력발전 세계 1위)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혁신의 가속화로 완전히 새로운 기업으로 재탄생하는 ‘파괴적 창조’를 완성했다.
그동안 오르스테드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자. 2006년, 덴마크에서는 6개 에너지 기업이 ‘동(DONG) 에너지’라는 ‘한 지붕’으로 통합됐다(회사 이름은 2017년에 현재의 오르스테드로 바뀐다). 지배주주는 정부였다. 당시만 해도 이 기업은 화석연료 비중이 85%에 달하는 화력발전 기업이었다. 덴마크 온실가스 배출량의 3분의1을 뿜어댔다. 하지만 유럽 지역에서 기후변화가 심각한 이슈로 제기되자, 경영진은 미래를 내다보고 지속가능 에너지기업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위한 방안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목표는 2040년까지 녹색발전 비중을 85%로 확대하고 화석연료 비중을 15%로 크게 낮추는 것. 이를 위해 화력발전소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 부문에 대한 대규모 신규 투자도 중단했다. 대신 연안 풍력발전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려나갔다. 잘나가던 사업의 몸집을 크게 줄이고,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녹색 에너지에 기업의 운명을 거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었다.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2012년, 가스 사업의 적자 발생으로 위기가 찾아왔다. 경영진은 주눅이 들지 않고 역풍을 헤치고 나아가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가스발전 등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녹색 경영혁신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신규 사업으로 밀어붙여온 연안 풍력발전의 단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이었다는 점. 이 때문에 경쟁기업들이 사업에서 철수하는 와중인데도 오르스테드는 더 과감한 도전에 나섰다. 발전 단가 인하를 위해 매우 의욕적인 목표치를 설정한 다음 대규모 터빈 설치 등 규모의 경제를 통해 마침내 성공적으로 단가를 크게 낮췄다. 그 결과 재생에너지 비중 85%를 계획보다 21년이나 앞선 2019년에 조기 달성한다. 대변화의 실험이 진행됐던 2007년부터 2020년까지 오르스테드가 만들어낸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탄소 배출량이 무려 86%나 줄어들었다.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대수술했는데도 영업이익은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재생에너지 사업이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8%까지 상승했다. 오르스테드는 앞으로도 △2023년 석탄 사용 중단 △2025년 자체 탄소 중립 △2040년 공급체인 탄소 중립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오르스테드가 이처럼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를 이뤄낸 힘은 무엇일까? 먼저 미래를 정확하게 내다본 선견지명이다. 기후변화에 비춰 화석연료 비즈니스가 위기에 빠져드는 대신 재생에너지 부문에서 새로운 기회가 생길 것임을 일찌감치 읽어냈다. 달성하기 쉽지 않아 보이는 열정적인 목표를 세운 다음 단계적인 실행 계획을 마련해 추진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 요인이다. 특히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 뒷걸음질하지 않고 과감하게 ‘녹색 혁신’을 밀고 나간 것도 그린에너지 기업으로의 변신을 가능하게 했다. 추가로 눈여겨봐야 할 강점은 정부, 투자자, 근로자, 소비자, 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와의 활발한 소통을 통해 지속가능 과제를 선정하고 이를 전사적으로 추진한 현장중시형 실행력이다. 오르스테드는 매년 이해관계자와의 접촉을 통해 지속가능 경영을 위한 중요 현안을 포착하고 있다. 예컨대 ESG 평가기관과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이슈는 무엇인지 등을 파악한다. 이 1단계 일이 완료되면 과제별로 중요도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과정이 이어진다. 최종적으로는 경영진과 이사회가 이 중 전략적으로 중요도가 높은 과제를 선정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오르스테드가 이런 방식으로 확정한 2020년 지속가능 프로그램은 녹색 자금조달, 해양 생물다양성, 지역사회 지원, 근로자 안전, 인권, 사이버 보안 등 20개에 이른다. 지속가능과 ESG 경영이 체질화돼 있는 ‘역할모델’ 기업인 것이다.
다음으로 소개할 기업은 파타고니아. 오르스테드가 기존 사업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친 경우라면, 파타고니아는 처음부터 기업의 목적이 ‘첫째도 환경, 둘째도 환경, 셋째도 환경’인 사례이다. 1973년에 회사를 창업한 이본 쉬나드는 환경 보호를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경영철학으로 고수하는 경영자이다. 그는 저서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에서 말한다. “우리는 회사를 팔거나 공개회사로 만들어 ‘환경 위기에 대한 공감을 형성하고 해결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사업을 이용한다’는 우리의 사명을 타협할 생각이 없다.” 투자자의 이익 극대화 요구에 밀려 환경을 뒷전으로 미루는 상황을 아예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그런 만큼 성장과 이윤을 바라보는 시선도 크게 다르다. 이사회에 제출된 ‘우리의 가치관’이라는 내부 문건은 “성장과 확장은 회사의 기반이 되는 가치관이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실제로 쉬나드는 이윤을 내는 것이 파타고니아의 목표가 아니며, 옳은 일을 하면 이익이 따라올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파타고니아는 환경을 전략과 가치 사슬 전반의 핵심 가치로 삼은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그 전환점은 1994년에 찾아왔다. 당시 파타고니아는 의류 생산을 위한 목화재배 과정에서 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화학물질이 쓰이고 있음을 알아내고 중대 결정을 내린다. 모든 스포츠웨어를 친환경적인 유기농 목화로 제조하기로 한 것이다. 이 목표는 불과 2년 만에 현실화됐다. 핵심은 공급망에 대한 철저한 관리였다. 유기농법으로 재배하는 소수의 농부와 목화 직거래를 텄다. 특히 인증기관의 협조를 받아 모든 섬유가 친환경적으로 생산되는지를 역추적하는 시스템까지 갖췄다. 파타고니아는 의류의 재사용에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2011년부터 오래된 제품을 회수해 수선센터에서 고치고 있다. 원하는 고객에게는 다시 보내주고, 그렇지 않으면 옷을 되사들인 다음 수선해서 재판매하고 있다. 버려지는 옷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파타고니아는 어찌 보면 ‘경영의 이단자’ 같은 기업인지도 모른다. 성장 속도를 조절하고 이익을 많이 내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 데다 환경을 위해 소비를 줄이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기업이다. 소비자들이 이 기업의 가치에 공감하고 품질 좋은 제품에 ‘구매’로 화답하면서 지속가능경영의 성공 사례로 자리 잡았다.
오르스테드와 파타고니아는 ESG(지속가능) 경영의 본질을 잘 말해주고 있다. 분명한 중장기적 비전, 세심한 계획, ‘사명감’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있는 강력한 실행력, 이해관계자와의 활발한 소통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아이오아니스 아이오아누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 등 연구진 3명이 내놓은 보고서는 지속가능경영 우량 기업의 특성을 좀 더 상세하게 열거하고 있다. 먼저 이들 기업에서는 이사회가 ESG 실행을 하는 데 책임 있는 역할을 한다. 경영진의 보상은 그 성과에 연동돼 있다. 특히 이해관계자와 소통하기 위한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으며, 보다 장기 지향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 환경, 사회 등 비재무 정보를 측정하고 공시하는 데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예컨대 포드 이사회는 지속가능 성장을 촉진하고, 온실가스 감축에 대응하는 데 있어 경영진을 지원하며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인텔은 1990년대 중반 이후 CEO의 보수를 환경보호 성과에 연동하고 있다. 필립스의 경우는 사업구조를 친환경으로 전환하면서 에너지 절감 전구를 개발하고 태양광발전 사업에 진출하는 등 성과를 냈다.
ESG 경영, 기업마다 상황이 다를 것이고 해법도 상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업의 ‘업(業)’과 목적 자체를 변화시키면서 건강한 경영 상태를 유지함은 물론 사회의 지속가능 성장에 기여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무엇일까. 오르스테드가 걸어온 길을 회고하며 내놓은 보고서 ‘그린 비즈니스 혁신’은 이런 답을 주고 있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기술적 또는 재무적 도전으로 보이는 문제들이 사실은 리더십의 이슈라는 점이다. 우리는 보다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의 혁신을 이루기 위해 리더십을 중시했다.” 결국 ESG 경영의 성패를 쥐고 있는 열쇠는 리더십이라는 말이다. 경험한 기업이 던져주는 ‘큰 화두’이다.
최남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경영학 석사 ▷MTN 대표이사 사장 ▷YTN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