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사나워진 중국夢, 옆나라 한국도 오싹
2021-07-06 06:00
[주재우의 프리즘] 지난 7월 1일 세계는 중국공산당의 창당 100주년 행사를 목도했다. 행사는 가히 성대했다. 천안문 광장에는 동서로 각각 50개, 총 100개의 중국 국기, ‘5성 홍기’가 휘날렸다. 행사의 개막 선포와 동시에 Z-10과 Z-19 헬기 29대로 이뤄진 편대가 숫자 100자를 그리며 비행쇼를 펼쳤다. 그리고 56문의 대포로 100발의 축포를 쏘아 올렸다. 중국공산당의 창당 최대 목표 중 하나인 이른바 아편전쟁(1840) 이후 중국인이 겪은 ‘100년의 치욕과 수모’를 180년 만에 씻어냈다고 선포하는 자리였기에 온 나라가 흥분의 도가니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중국공산당의 위대한 영도력과 치적을 만천하에 알리고 앞으로 당의 결의를 담은 당 총서기 시진핑의 연설이었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100년 전의 상황과 오늘날을 비교하면서 중화민족의 부흥을 위해 중국공산당의 단결이 중국인민에게 어떠한 성과를 가져다주었는지를 강조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중국공산당이 개척해야 할 미래를 소개한 것이다. 이에 중국인들이 고무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공산당 국정 목표의 완성을 알리면서 ‘중국의 꿈’을 향한 자신감을 강력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이 40여년 전 개혁개방정책을 채택하면서 책정한 첫 번째 국정목표가 이른바 중국의 ‘소강(小康, 샤오캉)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즉, 중국인들이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을 누리게끔 하는 목표였다. 이의 완성을 시진핑은 연설을 통해 선언했다. 중국공산당에게 소강사회의 기준은 중국사회의 탈빈곤이었다. 중국이 빈곤에서 벗어났다고 선언한 것은 지난 2월 25일이었다.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 탈빈곤 표창 대회에서 시진핑은 이런 공산당의 과업을 “역사에 길이 남을 완전한 승리”라고 정의했다. 그럼으로써 중국의 두 개 백년대계 중 하나가 이룩된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치적은 가히 찬사를 보낼 만하다. 가령 상상을 해보자. 14억의 중국인이 아직도 빈곤에 허덕이는 우리의 이웃나라로 존재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빈곤 규모가 오늘날 아프리카 전체의 몇 배를 능가하는 상황에서 중국 난민들이 바로 가까운 인접국이자 풍요로운 나라, 즉 우리나라로 유입되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떠했을까.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게 역사적으로도 입증되었다. 1960-70년대의 문화대혁명 시기 때 극심한 기아 때문에 수많은 중국인들이 북한을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에 제일 근접한 이웃국가로 중국과 앞으로 공존해야하는 우리의 운명을 생각하면 시진핑의 창당 100주년 연설문은 너무나도 자극적이고 우려스럽다. 특히 앞으로 ‘중국의 꿈’을 이루기까지 중국공산당이 추구할 대외적인 국정목표가 우리의 정체성, 주권과 생존권을 위협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세 가지 맥락에서 유추할 수 있다.
둘째, 사회주의 노선을 견지하면서 자신의 길로만 가겠다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시진핑은 중국이 앞으로 그 어느 누구가 “‘선생’처럼 기고만장한 설교” 하는 것을 “절대 듣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백히 했다. 즉, 외부의 압박과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정진하겠다는 결의를 밝힌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중국식 현대화의 새로운 모델, 인류문명의 새로운 형태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를 위해 중국의 ‘핵심이익(국가주권, 안보와 발전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이 수반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즉, 세계 일류의 군사력을 겸비하는 것이 중국의 꿈 중 하나라고 자인했다.
셋째, 중국 중심의 인류운명공동체 건설이다. 시진핑은 ‘중국의 꿈’ 중 하나를 인류운명공동체의 실현으로 규정했다. 이의 실체를 잘 파악하지 못한 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년 동안 시진핑과의 대화에서 인류공동체의 건설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문제는 중국이 추구하는 인류운명공동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중국의 역사 왜곡 인식에 있었다.
그는 중국이 지난 5000년 역사 동안 정의를 숭배하고 포악한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민족임을 자부했다. 그러면서 그 어떠한 이민족도 압박하거나 괴롭히거나 노역을 삼지 않았고,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중화민족의 피(DNA)에는 남을 침략하고 패권을 칭하는 유전자가 없다”고 부연했다. 5000년의 역사를 공유한 우리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역사 해설이었다.
더 나아가 시진핑은 같은 맥락에서 대외적인 경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 언론에서 대서특필된 “외세가 중국을 괴롭히면 머리 깨지고 피 흘릴 것”이라는 입장이 밝혀진 것이다. 인류운명공동체의 대목에서 말이다. 그는 “어떤 외세의 괴롭힘이나 압박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만약 누구라도 중국을 괴롭히거나 압박하거나 노예로 삼겠다는 망상을 품는다면 14억의 중국 인민이 피와 살로 쌓은 강철 만리장성 앞에서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흐를 것”이라며 전 중국인의 말초신경을 자극시켰다. 그는 인류운명공동체 완성의 시기를 “중화민족이 남에게 유린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던 시대”의 종결로 정의했다.
외부세계 관점에서 시진핑의 이번 창당 100주년 연설이 황당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중국을 세계의 전 인류와 동급화한 데 있다. 중국공산당이 표방하는 것이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고 중국공산당이 나아가는 길이 전 인류가 동일하게 추구하는 길이라는 인식을 노골적으로 표명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이 세계 평화의 건설자이고, 세계 발전의 공헌자이며 국제질서의 수호자라고 천명한 대목 때문이다. 이는 중국이 최근에 보이고 있는 공세적이고 공격적인 대외 행위를 볼 때 상당히 어폐가 있다.
이번 창당 100주년 연설은 중국공산당이 내세운 현대화 성과에 부응하는 품격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를 청취한 지나 레이먼도 미 상무장관이 평가했듯 ‘허풍과 미사여구’로 가득 찼다. 이 또한 점잖은 평가였다. 과거와 비교해도 창당을 기념하는 성스러운 날에 세계와 날선 발언으로 이렇게 장식된 적이 없었다. 이번 창당 100주년 연설은 창당 80주년의 장쩌민 연설이나 90년의 후진타오 연설, 그리고 95주년의 시진핑 연설이 세계 평화와 발전을 위한 중국의 협력과 개혁개방의 지속적인 추진 결의를 보였던 것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홍콩문제에서도 이번 연설문은 ‘일국양제(하나의 국가, 두 개 체제)’의 원칙과 취지를 완전히 부정했다. 과거에는 모든 지도자들이 홍콩의 고도의 자치(自治) 방침을 견지할 것을 천명했었다. 그러면서 홍콩인이 홍콩을 통치해야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번 연설에서도 시진핑은 이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연설문에서 중국공산당의 홍콩에 대한 위상을 재정립하면서 ‘일국양제’의 실질적인 사문화를 선포한 것이다. 그가 당 중앙의 홍콩특별행정구에 대한 전면적인 관할권(官治權)이 실행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홍콩보안법의 통과가 우리 국회격인 전국인민대표자대회가 주체가 아니었음을 시인하는 방증이다. 즉, 중국공산당이 배후세력임을 자인한 것이다.
이번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의 시진핑 연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선 ‘중국의 꿈’은 우리의 정체성, 이념과 가치와 결이 다르다는 사실이 노정되었다. 둘째, 중국이 표방하는 인류운명공동체는 왜곡된 역사 인식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중국 주변국 중에서 중국이 가장 많이 침략하고 노역을 부린 민족이 우리 민족임을 중국 스스로 부정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일국양제’의 허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중국은 정체성, 가치와 이념이 다른 체제가 하나로 통일될 수 있음을 스스로 부정한 셈이다. 통일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정체성, 가치와 이념의 통일이다. 따라서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 통일 방안, 즉 ‘고려연방제(연방제 통일론)’가 어불성설임이 반증되는 대목이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