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회장님들] ③'차명회사 누락' KCC 정몽진·'계열사 부당지원' 대림 이해욱

2021-07-02 06:00
두 사람 모두 공정위 고발로 검찰 수사 시작
검찰 약식기소 정몽진, 법원서 정식재판 넘겨

KCC 서울 서초동 사옥. [사진=KCC 제공]


범현대가(家)인 정몽진 KCC 회장이 이달 첫 재판을 앞두고 있다. 정 회장은 일부러 계열사 신고를 빠트리는 등 대기업집단 지정자료를 허위로 제출한 혐의를 받는다.

이해욱 대림산업(현 DL그룹) 회장은 2년째 서울 서초동 법원을 오가고 있다. 이 회장은 계열사를 동원해 개인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한 혐의로 2019년 재판에 넘겨졌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양은상 부장판사는 오는 19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 회장에 대한 1차 공판기일을 연다.

정 회장은 2016~2017년 대기업집단 지정에 필요한 자료를 내면서 본인이 차명으로 소유한 회사와 친족이 지분 100%를 보유한 KCC 납품업체 9곳 등 10개 회사 자료를 일부러 누락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공정거래위원회 고발로 정 회장 수사에 나섰다. 공정위는 정 회장이 2016∼2017년 차명으로 운영해 온 '실바톤어쿠스틱스' 자료를 대기업집단 지정자료 제출 때 일부러 빠트렸다가, 2017년 12월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차명 보유 사실이 드러나자 뒤늦게 냈다고 판단했다.

친족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9개 업체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봤다. 정 회장 친족은 자신들 회사를 KCC 납품업체로 추천했고, KCC 구매부서 직원들은 이곳들을 '특수관계 협력업체'로 별도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정 회장 외삼촌과 처남 등 외가쪽 친인척 23명을 친족 현황자료에서 누락한 것도 적발했다.

공정위는 이런 자료 누락 행위로 KCC가 대기업집단에서 빠져 각종 규제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흔히 대기업집단으로 부르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계열회사 간 상호출자를 비롯해 신규 순환출자·채무보증을 할 수 없다. 소속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행사가 제한된다. 비상장사 중요 사항과 대규모 내부거래 이사회 의결, 기업집단 현황 등도 공시해야 한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 기준은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에서 2016년 10조원 이상으로 높아졌다. KCC는 당시 자산을 9조7700억원으로 신고해 2016∼2017년 대기업집단에서 간신히 빠졌다. KCC는 2017년에야 새로 편입했다.

공정위는 정 회장이 대기업집단 지정 자료를 허위로 제출한 것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여기에 법 위반 행위가 상당히 중대하고, 누락 기간 미편입 계열사들이 총수 일가 사익편취 제재 규정을 적용받지 않았다며 올해 2월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수사에 나선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도 정 회장이 제출해야 할 친족회사 등 자료를 고의로 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지난 3월 4일 정 회장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벌금 1억원에 약식기소했다. 약식기소는 비교적 가벼운 혐의이면 정식 재판에 넘기지 않고 법원에 약식명령으로 벌금·과료·몰수 등 형벌을 내려달라고 청구하는 절차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 이동희 판사는 약식으로 판결하기보다는 직접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정식 재판에 넘겼다.

애초 정 회장 첫 재판은 지난 6월 21일 열릴 예정이었지만 서울중앙지법 직원이 코로나19로 확진되면서 이달로 미뤄졌다.

정 회장은 고(故) 정상영 KCC 창업주 장남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큰삼촌,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과 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이자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이 사촌형이다.
 

계열사 부당지원 혐의로 기소된 이해욱 DL그룹 회장이 지난해 8월 20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창업주 3세인 이해욱 회장은 본인과 아들이 지분 100%를 가졌던 사실상 개인 회사를 대림 계열사를 통해 부당 지원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회장은 이준용 명예회장 장남이며 대림산업 창업주인 고 이재준 회장의 손자다.

이 회장 역시 공정위 고발로 검찰 수사를 받다 재판에 넘겨졌다. 공정위에 따르면 대림산업은 2010년 7월 호텔사업을 전담할 'APD'라는 법인을 설립했다. APD는 이 회장과 당시 초등학생이던 이 회장 장남 이동훈씨가 출자해 만든 회사다. 이 회장 지분이 55%, 동훈씨가 45%였다.

APD는 2012년 '글래드(GLAD)'라는 호텔 브랜드를 내놓았다. 대림산업은 2014년 이후 문을 연 계열 호텔에 글래드 이름을 붙였다. 호텔 운영은 대림산업 100% 자회사인 오라관광(현 글래드호텔앤리조트)에 맡겼다.

대림산업은 오라관광을 통해 APD와 글래드 브랜드 사용권 계약을 맺었다. 오라관광은 APD에 매달 브랜드 사용 명목으로 수수료를 냈다.

옛 대림 여의도사옥 터에 2014년 개장한 여의도 글래드호텔을 비롯해 제주 메종글래드호텔·글래드라이브 강남호텔 등에 브랜드명을 사용한 대가가 사실상 이 회장 부자 개인 회사인 APD로 들어갔다. 2016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오라관광이 APD에 낸 수수료는 31억원에 달했다.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자 이 회장과 동훈씨는 APD 지분 전부를 오라관광에 무상 양도했다. 

공정위는 APD에 과도한 수수료 지급이 이뤄졌고, 이를 통해 이 회장과 동훈씨가 부당한 이익을 챙겼다고 판단했다. APD가 호텔 브랜드만 있지 호텔 운영 경험 등이 없는데도 유명 해외 프랜차이즈 호텔 수준으로 수수료를 챙겼다고 봐서다.

그러면서 대림산업에 4억300만원, 오라관광 7억3300만원, APD에 1억6900만원 과징금을 각각 물렸다. 이 회장과 대림산업·오라관광은 공정거래법상 총수 사익편취 혐의로 2019년 5월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공정위는 "사업 기회 제공을 이용한 총수 일가 사익편취 행위에 공정거래법을 적용·제재한 첫 사례"라면서 "가치평가가 어려운 브랜드(무형자산) 특성을 이용해 사익편취 수단에 동원한 사례를 적발한 점도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공정위 고발 내용을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이며 2019년 12월 이 회장을 불구속기소했다. 법원은 2020년 5월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고 심리에 들어갔다. 같은 해 8월부터 정식 재판에 돌입했다.

현재 재판은 마무리 단계에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김준혁 판사는 7월 9일 결심공판을 열고 변론을 마무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