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SW 인재 대란] ① "20년 전 수준보다 10배의 파고"… IT 넘어 전 산업에 '개발자 부족'

2021-06-28 00:05
전통기업들, SW인재 확충해 비전 실현·위기 극복
'1차 SW 인재 대란' 뛰어넘는 인재부족 사태 맞아
모든 민간·공공 디지털 전환 "수십만 SW인재 필요"
前 구글 CEO, 미국 정부에 "인재 확보 총력" 권고
전문가들 "우리 정부 SW인재 정책, 재점검 해야"

[그래픽=김효곤 기자]


#1 현대자동차그룹의 스마트모빌리티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 2018년 인공지능(AI) 연구개발조직으로 신설된 사내 독립법인, '에어스컴퍼니'가 다음달 11일 마감하는 20여개 AI·소프트웨어(SW) 분야 채용 공고를 게재하고 있다. 출범 3년이 돼 가는데도 급속히 확장되고 있는 역할에 따라 최소 수십 명의 핵심 기술·서비스 연구와 개발·운영을 위한 담당자를 충원하고 있는 모습이다.

#2 하나투어가 코로나19 사태로 현재 본사 사옥 매각 절차를 밟을 만큼 악화된 경영상황에도, 웹시스템·자연어처리·검색·데이터베이스 개발자와 주요 IT인프라 운영·관리자를 포함하는 10여개 직무의 담당인력을 충원하고 있다. 여행업에 의존해 맞게 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문화관광 유통기업으로 부활하려는 움직임이다.

지난해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한 비대면·디지털 기술의 전방위 도입과 확산이 빨라졌다. 이는 서서히 다가왔던 디지털 경제 시대로의 전환을 가속화했고, 이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던 기업들은 운영·성장의 지속가능성을 보장받기 어려워졌다. 생존과 도약을 위해 AI·SW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전환(DX)'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 IT기업뿐 아니라 전통산업 분야 기업들이 급변한 경영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기반으로 SW인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모든 산업에서 SW 관련 분야 인재를 구하다 보니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 유명한 대기업·중견기업들조차 제때 사람을 뽑지 못해, 똑같은 SW인재 채용공고를 몇 달씩 반복 게재하거나 아예 연중 '수시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닷컴버블이 꺼진 2000년대 초중반에 이어 2020년대 한국에 두 번째 'SW 인재 대란'이 터졌다.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벤처·스타트업 간 유능한 SW인재 영입 전쟁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1차 대란은 네이버, 다음, 엔씨소프트 등 IT업계 대기업들의 '경력직 모시기' 경쟁이었다면, 2차 대란은 모든 산업에서 벌어지는 SW인재 확보 경쟁이다.

문용식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원장은 나우콤(아프리카TV)을 창업한 벤처 1세대로서 당시를 회고하며 "IT업계의 채용 패러다임이 신입 채용에서 IMF 구제금융 이후 경력직 우선으로 바뀌고, 큰 회사에선 한 번에 100명씩 경력직을 뽑기도 했다"면서 "그럴 때 '테헤란밸리'에 직장이 있는 개발자 2만여명이 연쇄작용으로 들썩거리곤 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과거에는 그런 일(SW인재 채용 경쟁)이 IT기업과 그 산업계 안에서만 있는 일이었다면, 지금은 대한민국 모든 곳, 제조·물류·의료·농임업 등 전통산업을 포함한 전 산업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며 "모든 산업의 DX가 본격화돼 이 전환을 담당할 SW인재가 필요해졌고, 이 때문에 1차 SW 인재 대란보다 적어도 10배 수준의 파고가 밀려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SW 관련 인재 부족 사태는 민간 기업뿐만 아니라 공공·행정·교육 분야에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데이터기반행정법'에 따라, 모든 정부부처·공공기관·지방자치단체가 데이터기반행정책임관(CDO)을 두고 데이터에 근거한 정책 수립과 시행을 추진해야 한다. 이 CDO의 업무를 지원할 데이터분석가 또한 전국적으로 부족할 전망이다.

문 원장은 "코로나19 확산 사태 이후 산업, 행정, 교육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DX가 가속화됐고, 이걸 전면화시킨 방아쇠는 정부의 '디지털뉴딜' 정책"이라면서 "모든 분야에서 DX를 실행하기 위해 당장 10만, 20만명 단위의 SW·데이터·AI 관련 인재가 필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현재로서는 그만큼 충족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NIA에 따르면 SW 인재 부족 문제에는 대학의 관련 전공학과 정원과 졸업생의 역량 부족, SW 인재를 필요로 하는 기업들의 교육 투자와 SW인재에 대한 수용성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조사 결과 AI·빅데이터 등 주요 IT 분야의 인재 부족 규모는 작년 5000명, 올해 약 1만명, 내년에는 1만5000명가량에 달할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는 지난 9일 기획재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고용노동부·중소벤처기업부 공동으로 '민·관 협력 기반의 SW 인재양성 대책'을 발표했다. 기존 대학 교육과 정부 양성사업으로 오는 2025년까지 배출될 SW인재 규모 32만4000명에 추가로 8만9000명을 양성하기 위해 기업 재직자훈련, 기업·대학 협력과 대학전공자, 범부처 인재양성사업 인프라를 늘리기로 했다.

AI·SW 분야 선도국가인 미국도 최근 에릭 슈미트 전 구글 최고경영자가 이끈 미국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회(NSCAI)' 차원에서 인재전쟁을 선언했다. 지난 3월 발간한 최종보고서에서 중국과의 기술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인재 파이프라인을 확장해 세계 최고 인재를 유치하고 AI에 준비된 국민 교육에 2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는 NSCAI 최종보고서에 대해 "기술 혁신에서 인재의 중요성을 부각하면서 전 세계 인재에게 문을 더 열어놓으라는 권고는 미국 외 국가에 위협이 될 수 있고, 국제 협력을 얘기하지만 결국 '미국 AI 기술 개발에 협력하라'는 뜻"이라며 "우리 AI 국가전략을 재점검하여 다른 나라가 참고할 만한 국제경쟁력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