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시대, 북·중의 시선] 한반도 평화구상 실험으로 잃은 것들
2021-06-18 06:00
우리의 對中 對北 전략, 원칙과 기본을 다시 세우자
5월 21일의 문재인-바이든 공동성명은 우리의 대중(對中), 대북(對北) 전략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이번 공동성명 이전에 한·미동맹 강화에는 다소 소홀하면서도 친중 표현과 대북(對北) 평화 프로세스에 집중하던 우리 정부의 태도 변화는 동북아 역학구조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본지는 바이든 시대의 한반도 정세를 진단하는 전문가 7인의 릴레이 칼럼을 마련했다. 그 다섯 번째는 김충근 전 동아일보 초대 베이징특파원이 맡았다. 김 전 특파원은 미국 서던 일리노이대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을 수학하고,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을 거쳐 20여년간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에 진출한 삼영화학 사장으로 주재하면서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연구해왔다. <편집자주>
하노이 노딜 이후 미·북 간에 경색국면이 계속되는 가운데 개막한 미국 대통령 바이든 시대는 북핵문제, 곧 북한체제와 김정은 리더십의 운명을 가를 골든타임(golden time)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우리는 문재인 정부의 섣부른 ‘한반도 평화구상’ 실험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문 대통령이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임기 말 정책방향을 선회한 것은 그나마 잘한 일이긴 한데, 아직 정책기조의 온전한 재조정(resetting)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다음 세 장면을 보자. 문재인의 중재외교 운전자론이 자초한 우리의 몰골이다.
장면1; 5월 21일 워싱턴, 한국전 당시 청천강 전투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서 싸운 미국의 참전용사 앞에 문 대통령이 무릎을 꿇었다. 바이든이 먼저 무릎을 꿇어 문 대통령의 체면을 점잖게 살려줬지만 ‘북·중에 굴종하고 한·미동맹을 배신한 데 대해 벌 서는 한국 대통령’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현대판 삼전도의 굴욕을 연상시키는 사진 속 문 대통령은 웃고 있다.
장면2; 문 대통령이 G7회의 참석차 출국을 앞둔 지난 9일, 왕이(王毅) 중국외교부장이 정의용 외교장관에게 “다른 (미국) 장단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라”고 훈계조 협박전화를 걸었다. 아직도 우리를 속국 대하듯 하는 중국의 저 오만과 무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장면3; 사흘 뒤 6월 12일 북한 김정은은 당중앙 확대회의에서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운운하며 “전투력을 높이고 군의 격동태세를 철저히 견지하라”고 지령했다. 그는 현재 핵무기를 베고 드러누워 대미 시위농성 중인 셈인데, 그의 요구는 파키스탄 모델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이다. 벼랑 끝 몽니를 부리는 북한 앞에 정작 우리가 설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핵보유국 지위 인정받겠다는 김정은 목표는 불변
북한이 파국으로 가지 않고 살자고 한다면 머잖아 남·북·미 간의 핵 교섭과 외교는 재개될 것이다. 13일 폐막한 G7 정상회의는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을 향해 대화 재개에 응하라고 촉구하고, 모든 국가들이 유엔의 대북 제재를 이행할 것을 강조했다.
비핵화 협상의 다음 라운드를 위해 남·북·미 3자 정상외교로 상징되는 문재인표 평화구상의 좌절 배경을 되짚어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문 정권의 세 가지 착각, 즉 김정은은 김일성·김정일 선대 수령들과는 완전히 다른 신세대 계몽군주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오인(誤認),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남북이 뭉치면 미국과 자유세계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오판(誤判), 과거 핵협상 실패의 기억은 다 잊고 북한의 핵논리를 그냥 따르는 굴종(屈從) 때문에 야기된 것이다.
중국은 본래 한반도를 속국으로 거느리며 우리를 괴롭힌 국가이다. 6·25 때 압록강을 건너 무단 참전, 목전에 닿은 우리의 통일을 무산시킨 장본인이다, 천안문사태를 무력 진압한 후 서방 제재로 고생할 때 전폭적인 우리의 경제기술 협력과 대미 중재 덕에 개혁·개방의 꽃을 피웠다. 우리 한국에 대해 중국이 오만방자와 하대(下待)의 극을 치닫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중국의 사드 보복(2016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와중에 문 정권이 군사주권 영역에서 3불 약속(2017년)을 해준 데 기인한다. 롯데뿐만 아니라 수많은 우리 기업과 국민들이 중국 땅에서 잃고 흘린 재산과 피눈물을 생각하면 우리가 당할 수 있는 보복은 이미 다 당했다. 중국에서 우리가 잃은 것 중 가장 크고 아픈 것은 중국 인민의 마음 습속(習俗)에서 한국의 정체성이 허물어진 것이다. 그동안 중국인의 뇌리에는 ‘한국은 정치·경제 양면에서 대성했을 뿐만 아니라 알아 갈수록 더 배울 점이 많은 경이로운 나라’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었다. 통일전선 인해전술처럼 진행된 사드 보복은 당시 공산당 주도로 이미 추진되고 있던 역사문화 공정과 겹치면서 중국인의 한국관 자체를 뒤집어 엎어 버렸다. 그 후 한국은 한줌 변방세력으로 추락했고, 한류도 멈췄다. 정체성의 상실은 쉽게 회복될 성질이 아니다. 북한의 핵 무력 완성은 중국의 묵인·방조 없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북제재의 뒷구멍은 대부분 중국 쪽에서 발견됐다. 이런 중국이 우리의 사드 배치에 보복의 칼을 들이댈 때 우리가 순응한 것은 잘못이다. 중국이 한국에 배치되는 사드가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고 우길 때 “그럼 미국하고 다투고 해결하라”고 왜 저항하지 않았나. 이 정권은 남북 교류협력과 한반도 평화에 ‘미국은 방해꾼, 중국은 조력자’라는 이상한 프레임을 갖고 출범했고 미국은 ‘멀리’, 중국엔 ‘더 가까이’를 기치로 삼아왔다. 중국은 반드시 상호주의로 대해야 할 나라다. 안보와 주권은 한 국가가 존립하는 데 전제되는 대원칙이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상대국의 원형과 국가 성격을 잘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은 기본적인 전략사항이다.
중국은 ‘兩彈一星’으로 체제변혁에 성공
1945년 핵무기가 등장한 이래 국제정치사에 정립된 하나의 정설이 있다. ‘핵폭탄을 가진 나라끼리는 전쟁하지 않고, 핵보유국 중 양탄일성을 구비한 국가는 반드시 체제변혁을 거쳐 선진강국으로 도약한다.’ 양탄일성(兩彈一星; 원자탄·수소탄+ICBM) 개발에 성공한 후 구소련과 중국이 걸어온 체제변혁 경로가 그 대표 케이스.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대륙간 탄도로켓 화성-15형 발사실험에 성공함으로써 양탄일성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선언했다. 그 후 북한은 비핵화를 전제로 남북,북·미 연쇄 정상회담에 나왔으나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는 바와 같다. 비핵화만 하면 북한이 누릴 미래 발전상을 문 대통령은 USB에 담고, 트럼프는 CD로 구워 각각 김정은 눈앞에 내밀었으나 그는 꿈쩍도 않고 해묵은 생떼만 반복하고 있다. 북한의 논리는 “비핵화 말고 핵군축은 논의할 수 있다”로 요약된다. 하노이 이후 김정은은 인접한 미국의 두 동맹국 한국과 일본을 겨냥한 미사일 위협을 계속하는 ‘아빠 찬스(김정일의 대미 선군강압외교)’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만 무서워하고 북·미 정상회담을 알선해준 한국엔 은혜를 모욕과 협박·공갈로 갚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과거의 수많은 핵협상 실패 경험칙 상 이미 예견된 것이다. 문 대통령과 주변 전략가들은 공통적으로 “북한이 비핵화하겠다고 하니 그 말을 빌미 삼아야만이 우리가 끼어들 구석이라도 생긴다”고 말한다. 비핵화하지 않을 줄 알지만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무대책의 관여(involvement), 즉 대화중재라도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절대무기 양탄일성을 거머쥐고 세계 최강 미국과 맞짱 뜰 수 있도록 추켜세운 측은 바로 우리 한국이다.
‘親中從北’으로는 북핵의 강 못 건너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대중 봉쇄전략의 핵심은 결국 기술동맹이다. 갈등대치-대화협력이 뉴노멀(New Normal)로 된 미·중 패권경쟁에서 기술 및 생산의 블록화가 본질이 될 때 안미경중(安美經中) 같은 안일한 생각은 4차 산업혁명기 신기술의 속성상 통할 수 없다. 미국은 우리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이념과 가치를 공유한 국가이고, 우리를 북한의 남침적화전쟁에서 구해준 혈맹이다. 무엇보다 남한 적화에 실패한 북한이 수령 3대의 지난 70년 동안 몽매에도 소원하던 관계정상화의 대상이, 문 정부가 거리를 두고자 한 바로 그 미국이다. 문 대통령이 ‘높은 산’으로 인식한 중국도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은 미국 앞에 개중 가장 큰 구릉일 뿐이다. 트럼프시대 미국과 북·중 사이에서 오간 언설을 종합하면, 동북아 역학게임에서 북·중 커플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열이라면, 미국이 응용할 수 있는 카드는 스물쯤은 되어 보인다. 그중엔 중국이 경기를 일으킬 것(일본 핵무장)도, 우리 한국과 중국이 함께 멍 때릴 수밖에 없는 것(북핵 동결-북·미 수교)도 있다.
미국을 우리 정부는 너무 쉽고 가볍게 대했다. 정의용·서훈(안)과 정세현·문정인 등 전문가 그룹(밖), 문재인 시기 청와대 ‘안팎’을 관통해서 일관된 편향담론 친중종북 원미극일(親中從北 遠美克日)로는 미·중 패권경쟁의 바다는 물론 이미 그 하위구조가 되어버린 북핵갈등의 강도 건널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북한학계에는 “내재적 접근은 부족하고, 북한 식으로 문제를 보고 푸는 게 맞는다”는 언어가 통하고, '노동신문'을 분석 인용하면 훌륭한 석·박사 학위논문이 되지만 '조선일보'를 인용하면 지적사항이 되는 학풍이 형성되어 있다.
국제정치도 복잡하고 안 풀리면 원칙을 지키고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스포츠 게임과 같다. 이런 때 “북한과 타협할 일은 없다”는 MZ세대 ‘이준석 현상’은 놀랍다. 문제의 본질과 현실을 압축하고 있다. “북한을 손절하겠다”로 해석한다면 너무 편협하다.
김충근 필자 주요 이력
▷미 서던 일리노이대 대학원 국제정치학 수학 ▷동아일보 베이징특파원 ▷다롄(大連)삼영화학 사장
장면1; 5월 21일 워싱턴, 한국전 당시 청천강 전투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서 싸운 미국의 참전용사 앞에 문 대통령이 무릎을 꿇었다. 바이든이 먼저 무릎을 꿇어 문 대통령의 체면을 점잖게 살려줬지만 ‘북·중에 굴종하고 한·미동맹을 배신한 데 대해 벌 서는 한국 대통령’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현대판 삼전도의 굴욕을 연상시키는 사진 속 문 대통령은 웃고 있다.
장면2; 문 대통령이 G7회의 참석차 출국을 앞둔 지난 9일, 왕이(王毅) 중국외교부장이 정의용 외교장관에게 “다른 (미국) 장단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라”고 훈계조 협박전화를 걸었다. 아직도 우리를 속국 대하듯 하는 중국의 저 오만과 무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핵보유국 지위 인정받겠다는 김정은 목표는 불변
북한이 파국으로 가지 않고 살자고 한다면 머잖아 남·북·미 간의 핵 교섭과 외교는 재개될 것이다. 13일 폐막한 G7 정상회의는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을 향해 대화 재개에 응하라고 촉구하고, 모든 국가들이 유엔의 대북 제재를 이행할 것을 강조했다.
중국은 본래 한반도를 속국으로 거느리며 우리를 괴롭힌 국가이다. 6·25 때 압록강을 건너 무단 참전, 목전에 닿은 우리의 통일을 무산시킨 장본인이다, 천안문사태를 무력 진압한 후 서방 제재로 고생할 때 전폭적인 우리의 경제기술 협력과 대미 중재 덕에 개혁·개방의 꽃을 피웠다. 우리 한국에 대해 중국이 오만방자와 하대(下待)의 극을 치닫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중국의 사드 보복(2016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와중에 문 정권이 군사주권 영역에서 3불 약속(2017년)을 해준 데 기인한다. 롯데뿐만 아니라 수많은 우리 기업과 국민들이 중국 땅에서 잃고 흘린 재산과 피눈물을 생각하면 우리가 당할 수 있는 보복은 이미 다 당했다. 중국에서 우리가 잃은 것 중 가장 크고 아픈 것은 중국 인민의 마음 습속(習俗)에서 한국의 정체성이 허물어진 것이다. 그동안 중국인의 뇌리에는 ‘한국은 정치·경제 양면에서 대성했을 뿐만 아니라 알아 갈수록 더 배울 점이 많은 경이로운 나라’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었다. 통일전선 인해전술처럼 진행된 사드 보복은 당시 공산당 주도로 이미 추진되고 있던 역사문화 공정과 겹치면서 중국인의 한국관 자체를 뒤집어 엎어 버렸다. 그 후 한국은 한줌 변방세력으로 추락했고, 한류도 멈췄다. 정체성의 상실은 쉽게 회복될 성질이 아니다. 북한의 핵 무력 완성은 중국의 묵인·방조 없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북제재의 뒷구멍은 대부분 중국 쪽에서 발견됐다. 이런 중국이 우리의 사드 배치에 보복의 칼을 들이댈 때 우리가 순응한 것은 잘못이다. 중국이 한국에 배치되는 사드가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고 우길 때 “그럼 미국하고 다투고 해결하라”고 왜 저항하지 않았나. 이 정권은 남북 교류협력과 한반도 평화에 ‘미국은 방해꾼, 중국은 조력자’라는 이상한 프레임을 갖고 출범했고 미국은 ‘멀리’, 중국엔 ‘더 가까이’를 기치로 삼아왔다. 중국은 반드시 상호주의로 대해야 할 나라다. 안보와 주권은 한 국가가 존립하는 데 전제되는 대원칙이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상대국의 원형과 국가 성격을 잘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은 기본적인 전략사항이다.
중국은 ‘兩彈一星’으로 체제변혁에 성공
1945년 핵무기가 등장한 이래 국제정치사에 정립된 하나의 정설이 있다. ‘핵폭탄을 가진 나라끼리는 전쟁하지 않고, 핵보유국 중 양탄일성을 구비한 국가는 반드시 체제변혁을 거쳐 선진강국으로 도약한다.’ 양탄일성(兩彈一星; 원자탄·수소탄+ICBM) 개발에 성공한 후 구소련과 중국이 걸어온 체제변혁 경로가 그 대표 케이스.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대륙간 탄도로켓 화성-15형 발사실험에 성공함으로써 양탄일성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선언했다. 그 후 북한은 비핵화를 전제로 남북,북·미 연쇄 정상회담에 나왔으나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는 바와 같다. 비핵화만 하면 북한이 누릴 미래 발전상을 문 대통령은 USB에 담고, 트럼프는 CD로 구워 각각 김정은 눈앞에 내밀었으나 그는 꿈쩍도 않고 해묵은 생떼만 반복하고 있다. 북한의 논리는 “비핵화 말고 핵군축은 논의할 수 있다”로 요약된다. 하노이 이후 김정은은 인접한 미국의 두 동맹국 한국과 일본을 겨냥한 미사일 위협을 계속하는 ‘아빠 찬스(김정일의 대미 선군강압외교)’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만 무서워하고 북·미 정상회담을 알선해준 한국엔 은혜를 모욕과 협박·공갈로 갚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과거의 수많은 핵협상 실패 경험칙 상 이미 예견된 것이다. 문 대통령과 주변 전략가들은 공통적으로 “북한이 비핵화하겠다고 하니 그 말을 빌미 삼아야만이 우리가 끼어들 구석이라도 생긴다”고 말한다. 비핵화하지 않을 줄 알지만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무대책의 관여(involvement), 즉 대화중재라도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절대무기 양탄일성을 거머쥐고 세계 최강 미국과 맞짱 뜰 수 있도록 추켜세운 측은 바로 우리 한국이다.
‘親中從北’으로는 북핵의 강 못 건너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대중 봉쇄전략의 핵심은 결국 기술동맹이다. 갈등대치-대화협력이 뉴노멀(New Normal)로 된 미·중 패권경쟁에서 기술 및 생산의 블록화가 본질이 될 때 안미경중(安美經中) 같은 안일한 생각은 4차 산업혁명기 신기술의 속성상 통할 수 없다. 미국은 우리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이념과 가치를 공유한 국가이고, 우리를 북한의 남침적화전쟁에서 구해준 혈맹이다. 무엇보다 남한 적화에 실패한 북한이 수령 3대의 지난 70년 동안 몽매에도 소원하던 관계정상화의 대상이, 문 정부가 거리를 두고자 한 바로 그 미국이다. 문 대통령이 ‘높은 산’으로 인식한 중국도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은 미국 앞에 개중 가장 큰 구릉일 뿐이다. 트럼프시대 미국과 북·중 사이에서 오간 언설을 종합하면, 동북아 역학게임에서 북·중 커플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열이라면, 미국이 응용할 수 있는 카드는 스물쯤은 되어 보인다. 그중엔 중국이 경기를 일으킬 것(일본 핵무장)도, 우리 한국과 중국이 함께 멍 때릴 수밖에 없는 것(북핵 동결-북·미 수교)도 있다.
미국을 우리 정부는 너무 쉽고 가볍게 대했다. 정의용·서훈(안)과 정세현·문정인 등 전문가 그룹(밖), 문재인 시기 청와대 ‘안팎’을 관통해서 일관된 편향담론 친중종북 원미극일(親中從北 遠美克日)로는 미·중 패권경쟁의 바다는 물론 이미 그 하위구조가 되어버린 북핵갈등의 강도 건널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북한학계에는 “내재적 접근은 부족하고, 북한 식으로 문제를 보고 푸는 게 맞는다”는 언어가 통하고, '노동신문'을 분석 인용하면 훌륭한 석·박사 학위논문이 되지만 '조선일보'를 인용하면 지적사항이 되는 학풍이 형성되어 있다.
국제정치도 복잡하고 안 풀리면 원칙을 지키고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스포츠 게임과 같다. 이런 때 “북한과 타협할 일은 없다”는 MZ세대 ‘이준석 현상’은 놀랍다. 문제의 본질과 현실을 압축하고 있다. “북한을 손절하겠다”로 해석한다면 너무 편협하다.
▷미 서던 일리노이대 대학원 국제정치학 수학 ▷동아일보 베이징특파원 ▷다롄(大連)삼영화학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