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칼럼] 사이버 폭력인 줄 몰랐다?

2021-06-15 20:18

[김재영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n번방 사건과 같은 성적 착취의 도구와 유포의 문제부터 동급생에 대한 사이버불링 등 사이버폭력이 더욱 은밀하고 악랄해지고 있다. 웹사이트, SNS, 이메일, 모바일 메신저, 온라인게임 등 인터넷 관련 공간에서 발생하는 사이버폭력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나름대로 PC통신과 인터넷의 시작을 경험했던 세대였기 때문에 수업 중 인터넷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소위 ‘라떼는 말이야’와 같은 꼰대짓을 하곤 한다. MZ세대들의 특성상, 이들에게는 인터넷이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것인 양 인식되고 있지만, 정작 인터넷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우선 '인터넷은 왜 이렇게 보안에 취약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인터넷의 시작과 관련된 부분이다. 더군다나 인터넷의 시작이 전쟁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면 정보 전쟁 정도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그 시작은 미국과 구소련의 냉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련이란 나라를 알지 못하는 지금의 학생들에게 냉전시대 이야기는 마치 할아버지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서인지 관심이 많다. 서로를 향해 핵무기를 겨냥하고서 누가 먼저 버튼을 누르는지를 겨루던 그때, 미국의 입장에서는 핵폭격에 준하는 상황에서도 통신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이 상대국에 보복공격을 할 수 있는 신뢰성 높은 네트워크 구축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를 위해 은밀하게 진행되었던 것이 바로 인터넷 프로젝트이다.

인터넷은 초기 소련의 스파이에 대비하기 위해 학술적 목적의 네트워크로 포장하였지만, 네트워크의 구축에만 급급한 나머지 군사학에서 가장 중요한 보안을 소홀히 하는 우(愚)를 범하게 된다. 이에 따라 컴퓨터바이러스의 출현 이후 인터넷은 군사용이 분리되며 학술적 목적의 네트워크가 지금의 인터넷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이것이 인터넷이 보안에 취약한 대표적 이유이다.

그나마 인터넷이 초기에는 대학의 연구용으로 활용되면서 그 이용자들만의 예의범절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네티즌’이라는 용어를 알지 못한다. 실제 네티즌이란 용어가 사용된 것이 1980년대 후반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하기에 이 용어를 뉴스에서 들어본 분들이 있다면 이미 학생들에게는 소위 옛날사람이다. 왜냐하면 2004년 국립국어원에서 해당 용어를 우리말로 순화한 단어로 세상을 뜻하는 ‘누리’와 전문인을 뜻하는 ‘꾼’의 합성어인 ‘누리꾼’을 사용토록 권해 방송에서 해당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아쉽게도 이러한 우리말 순화 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한 부분이 있다. 찾아 보니 미국의 컴퓨터 이론가이자 작가였던 마이클 하우번(Michael Hauben)이 처음 사용했다는 네티즌이란 용어는 통신망의 ‘net’와 시민을 뜻하는 ‘citizen’이 합쳐진 용어로, 인터넷 속 사람들은 단지 인터넷 이용자가 아닌 통신망 속에서 하나의 문화를 만들고 가꾸어 간다는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가 시민, 즉 사회의 일원으로서 함께 따라오는 권리와 시민적 책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인터넷 속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다면, 이는 다른 사람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오늘날 인터넷을 이용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인터넷은 가상의 익명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마치 배설구처럼 표현과 언행에 어떠한 제동장치도 없는 것같이 느껴진다. 이는 단지 악성댓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학생들의 비대면 수업시간이 증가하면서 학교 폭력 중 사이버 폭력의 비중이 3배 이상 증가하였다 한다. '사이버 폭력이 뭔데'라고 말씀하실 분들을 위해, 사이버 폭력은 온라인상에서 나타나는 언어폭력이나 명예훼손, 따돌림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고 덧붙인다. 학교를 잘 가지 않으니 학교폭력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지만, 안일한 생각이었다.

사이버불링은 SNS나 모바일 메신저와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 특정 대상을 지속적·반복적으로 괴롭히는 대표적 사이버 폭력 행위이다. 온라인에서, 특히 학생들 사이에서 이러한 은밀하고 악랄한 사이버 폭력이 증가한 이유는 역시 인터넷의 익명성과 공연성 등이 주된 이유이며, 인터넷의 확산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인터넷상의 유해 콘텐츠는 올라오면 무한한 전파력을 갖게 되며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최근 사이버 폭력의 큰 특징 중 하나가 관계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 주변, 우리 집단 등 그 안에서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들에게 전파되며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것이다. 악플 대상이 연예인, 스포츠선수, 정치인 등에서 내 친구 또는 동료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댓글문제와 같이 '장난으로 그랬어요', '실제 그럴줄은 몰랐죠' 등 가해학생들의 답변 속에서 보듯, 스스로 인터넷에 의한 사이버 폭력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높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러한 문제가 생겼을 때 이들의 신상이 공개된다는 점이다. 주변의 응원이 자신의 행동이 올바르고 잘하는 행동이라 생각하게 만들며, 소위 네티즌의 정의감으로 포장되지만 이 역시 하나의 엄연한 범죄행위이다. 허락받지 않고 남의 집에 들어가 집안을 둘러보거나 어떠한 내용이 있는지 알아본다면 가택 불법침입 등의 죄에 처해질 것이다. 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왜 이를 옹호하려 하는가?

이는 비단 중·고등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스스로 부끄럽지만 우리 대학에서도 시대에 뒤떨어지는 조롱과 혐오의 글들이 올라와 문제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캠퍼스 간 신분을 따지는 발언 자체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후 개인의 외모와 이름 등의 내용으로 비하하면서 스스로를 지성인이라 일컫는 모습에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자격을 운운하니, 정작 본인들이 그러한 말을 할 자격은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 봤으면 싶다. 분명 잘못 가르친 선생의 문제가 크다. 본인 역시 반성하며, 한편으로는 상처받았을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사이버 폭력에도 성역이 없어야 한다. 우리 주변엔 사이버 폭력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 인터넷의 혁명을 소개하면서, 인류의 역사가 글자로 새겨지고 20세기 후반에 영상 세대가 시작된 이후 미처 한 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네트워크 세대가 시작되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인터넷이 우리 생활에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 하지만 이러한 인터넷 문화가 성숙되기에는 그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공론화가 되고 문제로 인식이 되지만, 오히려 이러한 관심이 자신의 주장에 대한 정당성을 제시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국내 포털사이트가 댓글을 차단한 데 이어 결국 문제가 되자 댓글을 폐지하겠다는 결정을 하였을 때도, 취지는 이해가 되지만 폐지보다는 무분별한 표현 등에 대한 기술적 장치의 강조를 주장하였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인터넷 초기 댓글의 역할은 표현의 자유와 비판적 시각을 활성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인터넷이 미친 영향 중 민주주의 확대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매체로 인식되었고, 지금도 이러한 생각에 변함은 없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사이버 폭력인지 모르는 아이들이나 이들을 옹호하는 어른들이나 사이버 폭력의 본질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회문화적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

자기가 내던진 말과 글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자신에게 비수로 꽂히기 전까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은 가장 큰 문제이다. 아니 이들은 본인에게는 안 돌아올 것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인터넷 공간은 절대로 가상의 익명 공간이 아니며, 피해자가 느끼는 상실감과 공포감만큼 자신의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김재영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영정보학과 ▷고려대 경영학 박사 ▷한국정보시스템학회 이사 ▷4단계 BK21 융합표준전문인력 교육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