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스페셜 칼럼] 기업들, '지구2'를 사라
2021-06-16 06:00
Z세대는 메타버스에 산다
독도에 다녀왔다. 흔들리는 헬기를 타고 얼마간 하늘을 날자, 긴장감이 사라지고 기대감으로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수많은 새가 홍해를 가르듯 비켜서자 장엄한 독도의 모습이 나타났고, 어느새 기대감은 경이롭다고 느끼는 감동으로 다시 교차되었다.
사실 나는 가상·증강현실 기술로 다녀왔다. 아직도 그 경험이 너무 생생해, 순간순간 현실 속에서 실제 독도에 다녀온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와해된 것이다. 즉, 가상에서의 경험과 현실에서의 경험 간의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가상과 현실 구분의 와해
연예인 악성 댓글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성이라는 가면에 기대어 범죄를 저지른 이는 초등학생. 현실 속에서 때 묻지 않은 평범한 아이지만 사이버 세상에서 현실 세상을 구분하지 못한 ‘가상의 나’는 ‘현실의 범죄자’가 되고 만다. 현실과 분리된 가상의 세계로 생각했지만, 사실 가상과 현실이 와해된 세상인 것이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은 가상의 세계를 가져왔고, 메타버스라는 신대륙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다시’ 부상한 메타버스 물결
메타버스가 다시 부상했다. 많은 사람이 메타버스를 코로나19 이후 처음 등장한 신조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오해다. 구글 스칼러(Google Scholar) 툴을 이용해 조사한 결과, 메타버스에 관한 논문은 2000년대 이전부터 존재했고 이후 가파르게 증가해서 2009년 전 세계 687편이 게재된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메타버스에 관한 논문 편수가 감소해 오다가 2018년부터 다시 증가세로 전환되었다. 2020년에는 세계 메타버스 논문 및 특허 건수가 449편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대중들의 관심도 역시 유사한 양상이지만 더욱 폭발적이다. 구글 트렌드(Google Trend) 툴을 이용해 메타버스에 관한 관심도를 분석한 결과, 2007년에 관심이 고조되었다가 2017년부터 다시 고조되는 흐름을 보였다. 특히, 2021년에는 메타버스에 관한 관심도가 가히 폭발적이다. 관심도가 논문 및 특허 건수를 선행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에, 2021년 이후의 과학·기술·산업적 관심이 논문 및 특허 건수로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메타버스는 무엇인가?
메타버스(metaverse)는 meta(초월)와 universe(현실세계)의 합성어로, 가상공간과 현실 세계가 융합 및 상호작용하는 3차원의 초현실 세상을 의미한다.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는 메타버스를 가상과 현실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접근에서 벗어나 교차점(junction), 결합(nexus), 수렴(convergence)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본 고는 메타버스를 물리적 실재와 가상의 공간이 실감기술을 통해 상호작용하고 결합하여 만들어진 융합 세계로 정의하겠다.
메타버스는 크게 4가지로 분류된다. 물론 각 유형이 명확하게 분리되기보다는 점차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향이 있다. 첫째,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은 일상에 가상의 콘텐츠(이미지 등)가 투영된 것을 말한다. 물리적 환경에 디지털 콘텐츠가 겹쳐 놓이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포켓몬고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현실 장소를 비추면 실제 포켓몬을 볼 수 있어 포켓몬을 찾아다니고 잡는 게임으로 유명하다.
둘째, 라이프로깅(Lifelogging)이다. 일상의 디지털화를 뜻한다. SNS는 이미지, 영상 및 텍스트를 이용해 사용자의 일상을 담는 가상공간이 되고 있다. SNS상에는 나의 아바타(Avatar)가 있고, 아바타를 통해 다른 아바타를 방문하고 상호작용한다. 결국, 일상을 디지털화하고, 이를 통해 ‘디지털 미(Digital Me)‘가 형성된다. 현실 공간의 ‘나’는 하나뿐이지만, 다양한 가상공간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나’가 존재한다. 1990년대 유행했던 싸이월드 속의 나, 페이스북 속의 나, 인스타그램 속의 나, 제페토 속의 나, 유튜브 속의 나가 각자 존재하고, 각자 가상공간에서 살아간다.
셋째, 거울 세계(Mirror Worlds)다. 라이프로깅이 개인의 일상을 디지털화했다면, 거울 세계는 세상을 디지털화한 것이다. 물리적 세계를 가능한 한 사실적으로 재현하되 추가정보를 더한 ‘정보적으로 확장된(informationally enhanced)’ 플랫폼이다. 현실 공간의 건물이나 사물들의 모습을 그대로 가상공간에 복제한다는 면에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으로 구현된다. 예를 들어 현실의 공장을 가상의 디지털 공간으로 복제해 놓고, 실시간으로 공장을 모니터링하고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밖에도 댐이나 발전설비 등과 같은 산업현장에서 운영실태를 시뮬레이션해 모니터링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일상 속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예가 내비게이션인데, 주행도로를 스크린에 투영시키고 운전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넷째,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다. 증강현실이 현실 세계에 가상 콘텐츠가 투영되는 방식이라면, 가상현실은 가상 세계에 개인이 들어간 것이다. 기존의 게임이 현실 공간에 머물러 있는 개인이 가상공간과 분리된 채 가상의 모습을 경험하는 방식이라면, 가상현실 게임은 현실을 완전히 잊고 가상공간으로 들어가는 방식인 것이다. 소비자들은 훨씬 실감 나는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가상현실 기술은 게임산업뿐만 아니라 교육, 유통, 금융, 스포츠, 오락 등 전산업에 걸쳐 도입되고 있다.
◆메타버스가 열어준 새로운 세상
첫째, AR 기술을 활용한 산업들은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게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 활용되고 있다. 이케아(IKEA)는 가구가 실제 배치될 공간과 잘 어울리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애플리케이션을 도입했다. 가구의 질감과 명암을 정밀하게 표현하고, 제품의 크기, 디자인, 기능까지 실제 제품 비율을 적용해 배치할 수 있다. 나이키 피트(FIT)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발에 대면 수 초 내로 정밀하게 매핑하고 치수를 저장한다. 저장된 데이터는 많은 소비자의 구매 이력 등의 데이터와 결합해 최적의 신발 사이즈를 제안해 준다. 워너비(WANNABY)라는 스타트업은 AR 기술을 사용해 신발을 미리 신어보거나, 매니큐어를 칠해보고, 반지를 착용해 보고 구매를 진행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둘째, 일상의 디지털화(Lifelogging)는 ‘현실의 나’가 ‘디지털 미’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게 해 준다. 네이버Z는 3D 아바타를 기반으로 가상공간에서의 나를 창조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인 제페토 서비스를 출시했고, 전 세계 2억명이 사용하고 있다. 다양한 패션을 구입하고 공간을 꾸미며 아바타의 제스처를 선택해 ‘디지털 미’를 표현할 수 있고, 많은 사람과 소통한다. 제페토 월드에서 블랙핑크는 아바타 버전의 뮤직비디오를 찍었고, 사인회에는 총 4600만명이 참여했다. 제페토에서 구찌(GUCCI) 의상과 핸드백 등 60여 제품이 출시되었고, 아바타가 이를 착용할 수 있다. 제페토 이용자는 아바타 의상을 직접 제작하고 다른 이용자에게 판매할 수도 있다. 아이템의 80% 이상이 이용자가 직접 제작한 것으로, 하루 7000~8000개의 신제품 의상이 올라간다.
넷째, VR은 비대면·온라인 환경에서 사용자가 실감 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는 린든랩(Linden Lab)이 출시한 VR 게임이다. 게임이라고 하지만 MZ세대 에겐 일상적인 ‘놀이’가 되었다. 사용자는 자신의 세계관을 담은 시·공간적 배경을 구성하고, 아바타를 통해 현실 세계에서 나와 다른 세상에 접속할 수 있다. 게임뿐 아니다. 판타웍스는 다양한 안전교육을 현장감 있게 구현하고 있다. 그동안의 교과서적인 교육이 현실성이 떨어져 ‘교육 따로 현장 따로’였지만, VR 기술로 구현한 콘텐츠는 책상 앞에 앉아 공장이나 건설현장에 접속하는 것이고, 지게차나 컨베이어벨트를 직접 타면서 다양한 재난위험 상황을 가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화재사고나 교통사고 등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학교안전교육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메타버스 초현실 전략
가상은 허상이 아니다. 많은 소비자가 가상세계로 뛰어들고 있다. 특히, MZ세대는 또 하나의 자아를 가상세계에 투영시켜 삶을 꾸미고 있다. Z세대가 경제활동을 시작하고 구매력이 향상되면서 가상세계를 이용한 소비자와의 소통은 기업들이 외면할 수 없는 채널이 되고 있다. 한편, 언택트 시대에는 모든 서비스가 비대면 환경 하에서 전달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비대면 혹은 온라인 환경에서도 옷을 입어 보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할까’와 같은 기업들의 구체적인 고민들이 메타버스로 해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들은 비즈니스 모델의 전환뿐만 아니라 신산업 기회로서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는 5G 보급뿐만 아니라 이미 6G 개발에 착수했다. 디지털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비대면 산업을 육성하고, 메타버스 시장 성장을 촉진하는 다양한 지원정책을 내놓고 있다. 콘텐츠, 통신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하드웨어(헤드셋 등) 등과 같은 메타버스 관련 신산업 진출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메타버스를 선도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메타버스 밸류체인의 주요 영역들로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들이 진입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R&D) 예산을 편성하고,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수 있도록 이끌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메타버스 기술들을 적용할 기업들의 수요를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맞춤화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준다면 메타버스 밸류체인이 강력해질 수 있겠다. 모든 변화는 저항을 받기 마련이다. 강력한 규제나 기존 산업과의 갈등과 같은 저항이 만만치 않다. 기업들이 저항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방향성도 필요하겠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학교 고령사회연구센터 본부장△한양대학교 겸임교수△(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고려대학교 고령사회연구센터 본부장△한양대학교 겸임교수△(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