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당착 빠진 LH혁신안…"어떤 방식이든 남은 1년은 정책 공백기"

2021-05-27 14:31
"해체 수준 혁신하면서 차질 없는 공급대책부터 무리수였다"
과거 통합 때 걸린 시간 8년…이번 정부 임기 내 불가능할 듯

자가당착에 빠진 정부의 LH혁신안이 초안부터 퇴짜를 맞았다. '해체 수준의 혁신'과 '차질 없는 공급대책'이라는 모순적인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다고 거듭 공언해온 탓에 어느 쪽도 만족할 수 없는 결과물이 나온 탓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이번 정부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방식의 개혁이든 1만명 규모의 공공기관을 쪼개는 데 있어 법적 문제에 이어 최소 6개월 이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LH 측에서는 이미 주거복지와 공급대책 모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난색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7일 출범한 LH 혁신위원회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LH]

27일 국토교통부와 국회에 따르면, 이날 이뤄진 첫 번째 한국토지주택공사(LH) 혁신 관련 당·정협의는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회의에 참여한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정부 측에서 이도저도 아닌 혁신안을 가져오자 의원들 대부분 질타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정부 혁신안은 주거복지공사(가칭)를 모회사로, 주택건설 등 기능을 자회사로 나누고 모회사가 자회사를 관리·감독하는 방식을 골자로 한다.

이와 함께 다수 관계자 발언을 종합하면 LH는 이런 혁신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공공 주도 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을 골자로 한 2·4부동산대책의 차질이 불가피해서다.

특히 수익구조가 없는 모회사의 주거복지사업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증권시장 상장사도 아닌 공기업의 형식적인 지배구조에 실효성 논란이 우려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사회적 비용도 문제다. 당초 LH는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로 나뉘어있던 공기업을 2009년 10월 통합해서 만든 회사다. 통합의 당위성은 지역균형발전과 행정 효율이었다.

통합 논의는 2001년 5월부터 나왔고, 2003년 4월 원점 재검토로 무산됐다가 2008년 8월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조치로 1년2개월 만에 비로소 두 회사는 합쳐졌다.

사실상 현재 정부가 내놓은 안이 그대로 국회에서 받아들여져 LH법 개정 작업에 착수한다고 해도 이번 정부 임기 내에 혁신안이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애초에 정부가 국민에게 한 약속들이 지킬 수 없는 정치적 행위에 불과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지난 3월 LH 투기사태가 터졌을 때 당시 정세균 국무총리와 홍남기 부총리 등 주요 인사가 퍼부은 맹공에 대한 반발이다.

실제로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지난 3월 "해체 수준으로 LH를 개혁하겠다"고 말했고, 홍남기 부총리는 "해체 수준의 환골탈태"를 약속한 바 있다.

익명을 요청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일단 문제자 터지자 공기업을 환골탈태 수준으로 해체하겠다는 등 실현할 수 없는 약속을 뱉어놓으니 수습할 수가 없는 지경인 것"이라고 했다.

한편, 지난 7일 출범한 LH 혁신위원회는 이날 △부동산 보유 현황 조기 등록 △매입임대주택 의혹 전수조사 △전관특혜 의혹 근절 △다주택자 승진 제한 등을 골자로 한 쇄신안을 냈다.

김준기 혁신위원장은 "2·4대책 등 주택공급 확대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고 내부 통제를 겹겹이 강화하는 혁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