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루의 저주] 세계 최고층 건물 건축=경기 침체 전조?
2021-05-20 07:00
마천루 완공 시점에 경기 불황 맞는다는 가설
중국 정부는 아예 초고층 빌딩 규제 지침 내놔
중국 정부는 아예 초고층 빌딩 규제 지침 내놔
1999년 도이체방크의 분석가 앤드루 로런스가 100년간 사례를 분석해 내놓은 가설에 따르면 초고층 건물을 짓는 국가는 이후 최악의 경기불황을 맞는다. 초고층 빌딩이 경제위기를 예고하는 신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초고층 빌딩 건설 프로젝트는 주로 돈줄이 풀리는 통화정책 완화 시기에 시작되지만 완공 시점엔 경기 과열이 정점에 이르고 버블이 꺼지면서 결국 경제 불황을 맞는다는 게 이 가설의 논리다.
역사 속 글로벌 초고층 빌딩의 저주
'마천루의 저주'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는 역사 속에서 자주 나타났다.
199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페트로나스타워(451.9m)가 시어스타워의 기록을 경신하자, 이번에는 아시아에 경제위기가 찾아왔다.
2010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오른 부르즈칼리파(높이 828m)도 이 저주를 피해가진 못했다.
코로나가 누른 '마천루 드림'
무서운 가설에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마천루는 의외의 복병인 코로나19로 제동이 걸렸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 붕괴가 마천루 건설 프로젝트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가 최근 발간한 연례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완공된 200m 이상 건물은 총 106개로, 2019년(133개)보다 20% 줄었다.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가 무너지고 프로젝트가 멈춘 것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CTBUH는 최소 9개 프로젝트가 코로나19에 직접적 영향을 받았다고 전했다.
특히 지난해는 2014년 이후 처음으로 500m를 넘는 건물이 단 하나도 완공되지 않았던 해였다. 또 동시에 완공된 건물 중 최고층 빌딩이 5년 만에 중국에서 나오지 않았던 해이기도 했다.
이는 2000년대 들어 초고층 건물을 짓는 데 열을 올리기 시작한 것과 대조적인 분위기다. 당시만 하더라도 중국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빌딩인 상하이타워(632m)를 세우는 등 야심차게 건물의 목표 높이를 올렸다.
이 외에도 핑안금융센터(599미터), 광저우CTF금융센터(530미터), 톈진CTF금융센터(530미터), 시틱타워(528미터) 등 전세계 최고 높이 건물 10곳 중 5곳이 중국에 위치해 있다. 순위를 100곳으로 늘려도 절반에 가까운 44곳이 중국에 있다.
CTBUH에 따르면 중국은 마천루가 세계에서 가장 많으며 150m 이상 건물이 2395곳, 300m 이상 건물이 95곳에 달한다.
전세계 초고층빌딩 절반 가진 중국의 '마천루 규제'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아예 초고층 빌딩을 규제한다는 지침을 내놓았다. 표면적으로는 '도시 경관을 위한다'는 이유였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초고층 빌딩이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결국 정부 차원에서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마천루 프로젝트의 부채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경제계획 총괄부처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최근 500m 이상 초고층 건물 건설을 엄격히 제한한다는 내용을 담은 '2021년 신형 도시화 및 도농 융합발전 중점 임무' 문건을 발표했다. 250m 이상 빌딩을 지을 때도 엄격한 규정을 지켜야 한다.
실제로 중국 골딘금융그룹의 텐진사옥으로 2009년 공사를 시작한 골딘파이낸스117은 재정적 어려움이 닥친 탓에 공사가 중단과 재개가 반복됐다. 당초 2014년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아직 미완성 상태다.
이 건물은 계획했던 597m로 완공시 텐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일 뿐 아니라 선전 핑안 국제금융센터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높은 빌딩이 된다.
SCMP는 "초고층 빌딩은 한때 부유함과 첨단 기술을 상징했지만 유지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