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디지코 혁신 KT 뒤엔 '번개장터' 키운 KT인베스트먼트

2021-05-18 00:10
김지현 KT인베스트먼트 대표 인터뷰
업력 5년차 '작지만 큰' 벤처캐피탈 자리매김
KT 디지코 전환 동력·스타트업 생태계 키울 것

김지현 KT인베스트먼트 대표. [사진=KT 제공]
 

직방에 인수된 부동산 중개거래 플랫폼 호갱노노, 프락시스캐피탈이 인수한 중고거래 서비스 번개장터, 인공지능(AI) 기반 무인 장비검사 솔루션을 제공하는 수아랩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유망한 산업군 내에서도 잘나가는 스타트업으로 엑싯(투자금 회수)에 성공했다는 점, 그리고 KT인베스트먼트가 키운 스타트업이라는 점이다.

KT인베스트먼트는 KT그룹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자회사다. 2015년 설립 후 AI 등 ICT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 전문 투자를 진행해왔다. KT인베스트먼트는 지난달 말 기준 총 1250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펀드운용액 규모는 1730억원이다. 국내 이동통신 사업자 중에서 자회사로 벤처캐피탈을 별도로 두고 있는 곳은 KT가 유일하다.

김지현 KT인베스트먼트 대표는 3년 전 KT전략기획실 내 전략투자P-TF 조직에 몸 담으며 주요 투자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현재 그가 이끌고 있는 KT인베스트먼트는 짧은 업력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투자 실적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설립 후 투자 포트폴리오 대상 스타트업 중 총 6개 스타트업의 인수합병(M&A)과 2개 IPO를 완료했다. 올해에만 6개의 추가 IPO도 예정하고 있다.

김지현 대표는 "직원이 10명에 불과하지만 유망한 스타트업을 잘 키워내는 '작지만 큰' 벤처캐피탈로 이미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며 "스타트업은 KT와 성장하고, KT도 스타트업과 협력해 디지코(Digico, 디지털 플랫폼 기업)로의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KT인베스트먼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아주경제가 17일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KT인베스트먼트 사무실에서 김지현 대표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Q. 국내 이동통신 사업자 중에선 KT만 CVC를 운영한다. 본사 차원의 투자와 CVC를 통한 투자는 어떻게 다른가.

A. 투자 진행 때 본사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원칙을 우선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본사 차원은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신성장 동력을 발굴한다거나 강력한 제휴협력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다. CVC는 그와 달리 투자한 스타트업에서 성공적으로 엑싯(투자금 회수)하는 것을 투자의 주요 목표로 삼는다. 

본사가 아닌 CVC 차원에서 투자를 진행하면 그만큼 의사결정이 빨라진다. 최근 좋은 스타트업을 잡으려는 투자사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요즘엔 투자사 여러 곳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 투자를 단행하는 경우도 많아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해지기도 한다. 저나 저희 심사역들이 토론하고 바로 투자 여부를 결정하게 되니 투자를 신속하게 집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Q. KT가 전문 자회사를 통해 스타트업 생태계에 투자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A. KT는 국민기업을 지향한다. 벤처 전문 자회사를 통해 빠르게 성장하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우고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도 갖고 있다. '아기상어'로 유명한 스마트스터디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KT는 스마트스터디와 IPTV 콘텐츠 분야에서 협력 중이다.

더 이상 대기업 혼자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적 흐름도 있다. KT는 통신기업에서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연구개발(R&D)도 다 우리 혼자했다. 세상도 고객도 빠르게 변하는 지금 같은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외부 기업과 상생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 불가피하다.

Q. 스마트스터디 이외에 KT와 투자 대상 스타트업 간 협업 사례는 어떤 것이 있나. 향후 협업 예정인 서비스는.

A. 대표적으로 AI 챗봇 솔루션 및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 업체인 솔트룩스가 있다. KT AI스피커 기가지니에는 솔트룩스가 개발한 솔루션(ADAMs.ai)이 탑재돼 있다. 솔트룩스 솔루션은 대화 품질을 한층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줬다. KT사내벤처로 출발한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기반 정밀진단제품 판매회사인 엔젠바이오도 KT와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 시너지를 내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자율주행과 클라우드, 스마트물류 분야 스타트업과도 협력을 검토 중이다.

AI 이외에도 KT그룹은 생활 밀착형 커머스 시장에도 관심이 많다. 코로나19 이후 관련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는데 당분간 이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KT그룹 내에는 KTH와 엠하우스 등 커머스 전문 자회사들이 있어, 향후 스타트업과의 협력 기회도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김지현 KT인베스트먼트 대표. [사진=KT 제공]


Q. KT와는 투자 과정에서 어떻게 논의하나 

A. ABC(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를 중심으로 디지코로 도약한다는 KT그룹의 전략과 비전은 이미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다만 투자결정은 KT본사와 별개로 진행한다.

처음 KT인베스트먼트에 왔을 때는 KT와 바로 사업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스타트업을 중점적으로 살폈다. 지금은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스타트업의 비즈니스는 대기업보다 몇 년씩 앞서 나가기 때문이다. 당장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보다는 신생 비즈니스에 뛰어든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쪽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Q. 다양한 스타트업을 만날 것 같다. 스타트업에 투자를 결정하게 되는 기준이 있나.

A. KT인베스트먼트에서 만나는 스타트업만 1년에 최대 300곳이 넘는다. 굉장히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많다. 산업군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창업자와 팀을 유심히 본다. 현재 하고 있는 비즈니스와 관련된 경험을 갖고 있는지, 창업 후 겪을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어떤 방법론을 갖고 있는지 등이다.

사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좋은 스타트업에 투자할 기회를 얻는 게 어려워지고 있다. 쿠팡과 배달의민족 같은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한 유니콘 기업이 탄생하고 생태계가 커지면서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는 기관도 많아지고 있다. 창업투자사부터 자산운용사, 증권사까지 뛰어들고, 정부 정책지원도 늘어나면서 투자사 간 경쟁도 치열하다.

KT인베스트먼트는 시리즈 A와 B단계 투자에 집중한다. 성장 초기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켜보며 신뢰 관계를 맺을 수 있어서다. 이들 스타트업이 성장해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이 커졌을 때도 좋은 스타트업을 초기부터 발굴한 좋은 벤처캐피탈이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좋은 스타트업도, 좋은 투자사도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게 될 것 같다. 우수한 기술 기반 스타트업은 꾸준히 탄생하고, 이에 투자해 생태계를 키우려는 투자사도 계속 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시장의 파이도 점점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

Q. KT인베스트먼트의 향후 목표는.

A. 아직 5년 갓 넘은 회사다보니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시장에서 인정해주는 기업으로 자리잡는 것이 목표다. 스타트업들이 투자를 꼭 받고 싶은 투자사로 자리하는 것, 그리고 KT가 신사업을 키우고 디지코로 발돋움하는 데 KT인베스트먼트가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