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기획칼럼] 2. 어린이-젊은이-늙은이…푸른이-익은이?!
2021-05-07 16:23
청(소)년 대신에 푸른이, 중장년 말고 익은이
어린이는 국어사전에 ‘어린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추어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새로 지은 말이라고 알았지만 찾아보니 이미 과거 문헌에도 나온 말이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경민편(1519년 김정국이 인륜과 법제에 관해 쓴 책)에 ‘어리니’라는 단어가 있다. 그럼에도 소파 선생이 어린이라는 낯선 말을 널리 알리고 쓰도록 했음은 틀림없다.
어린이, 젊은이, 늙은이 모두 어리다, 젊다, 늙다를 꾸밈말로 바꾼 뒤 사람을 높여 부르는 ‘이’를 더해 만든 순우리말이다. 요즘 종종 나이든 성인을 ‘어른이’라고 하는데, 틀렸다. 아마도 젊은이와 늙은이 사이쯤 위치한 어른, 중·장년층을 가리키는 단어인 듯 싶다. 그런데 어른이는 ‘어르다’와 '이'를 합친 거다. '어르다'는 “우는 아이를 어르다”는 문장처럼 어린이나 아기를 달래거나 기쁘게 해준다는 뜻이다. 뜻 그대로 어른이는 어르는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인 거다. 쓸모 없고 쓸 일도 없는 단어다. 틀린 말을 자꾸 쓰면 우리 말을 망치는 거다. 어리지 않은 이를 칭할 때는 그냥 어른.
가만 살펴보면 어린이와 젊은이, 늙은이는 각각 그 사이 기간이 너무 길다. 어리다, 젊다, 늙다는 모두 상대적인 개념이다. 조선시대에는 이팔청춘 16세, 낭랑 18세면 어른으로 인정받아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약관(弱冠), 20세엔 관을 쓸 수 있는 성인이 됐다. 40대 중후반만 돼도 손자들 보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늙은이의 시작, 초로(初老)였다. 어린이, 젊은이, 늙은이, 이 세 단어에 일생을 담을 수 있었다. 하지만 2020년대 대한민국은 여기에 적어도 20년 이상을 더해야 한다. 젊음과 늙음의 변화도 잘게 나눠야 한다. 쌍둥이도 세대 차가 있다 하지 않나.
이런 변화 흐름에 맞게 어린이, 젊은이, 늙은이의 사이를 메워줄 아름다운 순우리말을 곰곰 생각해봤다. 어린이와 젊은이 사이 10~20대 초반 청(소)년을 이르는 말로 ‘푸른이’를 떠올렸다. 청(소)년에 쓰는 푸를 청(靑)을 우리말로 바꾸고 높여 부르는 ‘이’를 합친 말이다. 이 칼럼을 준비하면서 직접 만들었다고 스스로 뿌듯했지만, 최종 확인을 위해 검색해보니 이미 누군가가 지은 말이라는 걸 알게 됐다. <사단법인 아름다운 청소년들> 홈페이지를 보면 기독교대한감리회 양광교회가 1992년 청소년 모임 이름을 정하면서 푸른이를 썼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지는 않는다. 누가 만들었든 푸른이라는 이름이 더 많은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길 바랄 뿐이다.
중장년층을 부르는 새 말 '익은이'는 노래에서 힌트를 얻었다. 가수 노사연이 2015년 발표한 노래 ‘바램’의 후렴구는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이다.
요즘 40~50대를 중년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그런 대접을 해주는 사람도 장소도 별로 없다. 그렇다고 젊은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꽃중년'도 중년이긴 매한가지다.
사실 익은이가 ‘말모이’(한힌샘 주시경 등 한글 학자들이 엮은 첫 우리말 사전. 국어사전을 일컫는 순우리말이며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에 오르려면 '익다'는 제 뜻의 걸맞게 지혜롭고 성숙한 중장년 한국사람이 돼야할 터. 익은이라는 아름다운 순우리말에 어울리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라고 또 바란다. 어린이-젊은이-늙은이 사이사이에 푸른이와 익은이을 보탠다.
가정의 달에는 어린이, 젊은이, 늙은이 모두 저마다 ‘날’이 있다. 어린이날(5일), 성년의 날(17일), 어버이날(8일), 부부의 날(21일)이 그렇다.(노인의 날은 10월 2일이다.) 푸른이날, 익은이날도 만들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