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복마전 ②] 눈감은 감독자들 "그런 법이 있었어요?"…6년간 실종된 비리방지법
2021-04-26 06:00
예산·회계규정 만들고 잊어버려…미흡한 보고서도 무사통과
"법률·조례 개정한 사실 몰랐다…이제부터라도 공개할 것"
"법률·조례 개정한 사실 몰랐다…이제부터라도 공개할 것"
2015년 3월 서울시가 정비사업 자금비리를 방지하고 공정한 자금 사용을 위해 '정비사업 예산·회계처리에 관한 표준 규정'을 개정한다고 밝히면서 당시 담당자가 한 말이다.
당시 주요 개정사항은 △서울시 예산회계규정 작성방법 제시 △공사·용역의 전자입찰 방법 근거 마련 △클린업 시스템 정보공개 양식 통일성 등이다.
그러나 약 6년이 지난 지금 조합이 예산·회계처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관리·감독 체계에 구멍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산·회계 규정 만들고 적용 안해··· 미흡한 보고서라도 올라오기만 하면 무사통과
본지 취재가 시작되자 서울시는 "행정상 실수가 맞다. 당시 예산회계팀과 클린업시스템 담당자가 서로 달라 발생한 문제인 것 같다"며 "이번 기회에 알게 된 만큼 반드시 시정토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서울시는 2015년 예산·회계규정을 개정하고 배포한 뒤 클린업시스템 운영지침을 만들었지만, 이 지침에는 개정된 예산·회계규정 변경사항이 반영되지 않았다.
가장 최근 나온 클린업시스템 운영지침도 마찬가지였다. 법을 집행하기 위한 세칙이 만들어지지 않으면서 현장에서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조합과 세무사는 비리가 만연하던 옛날 예산회계규정을 그대로 사용했고, 서울시와 구청은 기존에 하던 대로 관리감독했다.
예컨대 송파구 A조합 감사가 2019년 감사보고서에서 결산보고서에 첨부해야 하는 사업비명세서와 예산결산대비표·예비비명세서가 누락됐다고 지적했으나, 서울시나 구청은 조합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송파구 관계자는 "결산보고서 항목이 올라오기만 하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서울시에서 제공한 클린업시스템 운영지침에 따라 정보공개가 됐는지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2015년 서울시가 조합의 사업시행 인허가 단계에서 새 예산회계규정 채택 여부를 확인하고 매년 2회 상설 교육도 실시하겠다고 했던 공언이 모두 지켜지지 않은 결과다.
심지어 조합원들이 직접 송파구와 서울시에 민원을 제기해 왔으나 형식적인 답변만 해왔다. 문제가 있으면 법대로 소송하라는 식의 얘기다.
송파구 관계자는 "재건축은 기본적으로 민간 사업이기 때문에 회계 등이 잘못됐다고 해서 구청에서 섣불리 개입할 수 없다"며 "만약 잘못된 점이 있으면 감사가 알아서 신고하면 된다"고 했다.
"개정된 조례 몰랐다··· 이제부터라도 공개"
송파구청과 서울시가 모두 모르고 있는 조례도 하나 있었다. 서울시 도시및주거환경정비조례 제 70조에 따르면 구청장은 120조(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관리처분계획 인가에 따른 계약금액 등 사실을 '정비사업 정보공개서'라는 양식을 통해 공개해야 한다.
이 조례는 2018년 7월 서울시 도시및주거환경정비조례 운영상 나타난 일부 미비점을 보완·개선하고자 개정됐다. 그러나 송파구청은 약 3년간 이 정비사업 정보공개서를 올린 적이 없고, 서울시는 25개 자치구에서 이를 시행하는지 감독한 적이 없다.
이에 대해 송파구 관계자는 "이 부분을 알지 못해서 현 상황에 대해 파악하고 있으며 앞으로 해당 규정에 따른 정보공개를 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도 "70조 조례와 관련해서 우리가 관리·감독 주체이긴 하지만, 조사 주체는 각 구청이 맞다"며 "전 구청에 공문을 보내서 매년 조례에 정한 대로 정보공개서를 작성하도록 독촉하겠다"고 했다.
다음편에서 계속
[재건축 복마전 ③] 을이었던 건설사들 "앞으로 통장은 제가 관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