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몰아치는 퍼펙트스톰] ⑤차상균이 전한 한국교육 개혁案

2021-04-26 03:00
"데이터사이언스는 교양과목…콘텐츠를 바꿔야"

문재인 정부 교육개혁이 위기를 맞고 있다.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대학은 넘쳐나고, 유례없는 감염병에 캠퍼스 낭만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특수목적고등학교 손질과 고교학점제 같은 새로운 개념에 학부모와 학생은 혼란이 가중됐다. 또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했으나 입시 비리는 어김없이 터졌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그동안 정파성을 뛰어넘지 못한 교육개혁이 '이번에는 다를까' 새 정부 때마다 기대하지만 충족되지 않는다. 이에 본지는 총 다섯 차례 기획을 통해 교육개혁 의미를 되새기고, 올바른 방향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라." 정희성 시인의 이 말이 오늘날에도 유효할까. 서울대학교가 4차 산업혁명,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흐름 속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 중심에 차상균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원장이 자리한다. 차 원장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신산업에 맞춘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관련 대학원 설립을 주도했으며 지난해 결실을 맺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기틀을 다진 그는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강화하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수용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열중하고 있다.

◆데이터사이언스에 파격을 더하다
 

차상균 서울대학교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차상균 원장은 '기존 사고에 길들여진 것'을 경계했다. 주체는 대학일 수도 있고, 가르치거나 배우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학사-석사 연계 과정을 만들고 싶지만 정원 제한 등 규제에 막힌 차 원장이 인터뷰 동안 강조한 말이다.

최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만난 그는 촘촘하게 짜여진 내외부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머릿속으로 '파격'을 잊지 않았다. 과거 빅데이터연구원을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으로 올리는 파격을 선보였다면, 지금은 이 학문이 다른 영역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이와 관련해 차 원장은 "학·석사 연계 프로그램이 요구된다"며 "데이터사이언스를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서양사학과 학부생이 데이터사이언스 석사를 연계 전공하면, 국가별 데이터를 맞춰보고 이를 하나의 시스템에 넣어 아카이브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전자를 다루는 생명공학이나 의사를 꿈꾸는 의학 전공 학부생도 마찬가지다. 그는 "데이터사이언스를 같이 공부하면 여러 방면으로 나아갈 수 있고, 이는 학문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그래서인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은 인기가 높다. 2020학년도 신입생 모집 당시 전문석사과정 40명 정원에 257명이 몰려 6대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박사과정 15명 선발에는 43명이 지원했다. 지원자 구성도 통계학, 수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사회학, 언론정보학, 경제학 등 다양했다.

차 원장은 "열의만 있으면 공대 등 이과 계열이 아니어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고 독려했다. 그는 "실제 사범대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가 입학했는데 가장 의미 있는 질문을 던졌다"며 "목적 의식을 갖고 온 학생들이 상당해 서로 (긍정적인) 자극을 준다"고 말했다.

다만, 교수 채용은 난항을 겪었다. 서울대 내부 규정인 겸직 제한과 낮은 보수(호봉제)가 인재 채용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차 원장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올해 이준석 구글 본사 리서치 엔지니어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서울대가 겸직 규정에서 '주당 8시간 이내'를 삭제한 덕분이다. 글로벌 기업 직원이 서울대 교수를 겸직한 첫 사례다.

그는 "정부 예산에 의존하고 있어 어려운 점이 많다"며 "교수 정원이나 공간을 늘리는 것도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석사를 학부과정 연장선으로 보지 않고, 정원을 따로 두고 있는 점을 꼬집으며 "학생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학·석사 연계 과정에 재정 지원은 물론이고, 학부 차원에서도 데이터사이언스를 기본과목으로 두고 4학년 때부터 석사 과목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등 협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박사과정 중에 데이터사이언스 석사를 겸하는 석사-박사 연계 과정도 제안했다. 최근 국내 박사 학위에 대한 인기가 떨어져 정원을 못 채우는 곳이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했다. 차 원장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한 만큼 보상이 있어햐 한다"며 "박사과정 중인 학생이 데이터사이언스 코어(핵심) 과목을 7~8개 들으면 본인 분야에서 응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콘텐츠를 바꿔야 교육이 바뀐다"
 

데이터사이언스 개념. [사진=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홈페이지]


차 원장은 데이터사이언스를 하나의 교양과목으로 여겼다. 누구나 알아야 하는, 현대인이 필수로 갖춰야 하는 소양이라는 의미다. 본인이 대학원 원장이기에 앞서 사회 현상도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효과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어서다.

일자리 확충을 위해 정부가 돈을 많이 풀었는데 왜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지, 돈이 어디로 가는지, 개인 지식을 늘리는 데 돈이 쓰이지 않고 사람·기업이나 단체에 남는지 등 정책 효과를 판단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모든 학문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며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이 허브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대학원을 넘어서겠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선 학부 상관 없이 학생들을 선발하고, 우수한 학생들이 기존에 습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응용할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 트랜스포메이션(Soft transformation)'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규정을 급진적으로 바꾸기 어려운 현실이기에 서서히 변화해 나가야 한다는 취지다.

결국 정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교육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연관된다. 차 원장은 "초·중·고 학생들을 편하게 해준다고 사교육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수학·과학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데, 데이터사이언스 개념을 가지고 과목을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과목을 바꾸자는 것이다. 다만, 별도 과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과목들에 데이터사이언스 개념을 집어넣는 방식이다. 교사 재교육은 사범대에서 가능하도록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도움을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정제된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 전국으로 퍼지도록 하고, 생태성을 구현해 나가야 한다"며 "국가 인공지능(AI) 교육연구원을 만들어 전문가와 초·중·고 교사들이 모여 실험도 하고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제안해본 내용이라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일을 벌이면, 특정 학교만 지원한다는 불만이 나오기 마련이다. 차 원장은 "미리 준비를 하고 전국 지역 대학에 확산해 주겠다는 게 사회적 약속 중 하나"라며 "양질의 콘텐츠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개 교육제도와 관련해선 이념적인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 사실"이라며 "지방대학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문제 해결을 위해선 새 콘텐츠를 만들어서 공유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산·학·연 협력 방향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가장 좋은 모델은 "벤처 창업이 가능토록 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정부는 기초 연구비를 지원하고, 뜻 있는 사람이 회사를 차려서 성공이나 재미를 맛보게 해줘야 한다"며 "창업자가 만든 기술이 사양되지 않고 시장에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생각은 혁명적으로 하고, 실행은 조화롭게 해야 한다"며 "길들여지지 않은 유연한 사고로 전략을 세우고, 교육제도를 혁신해야 한다"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