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신냉전 시대 미.중.러 언론전 ..한국의 목소리가 안 들린다
2021-04-14 20:43
미국을 축으로 하는 서방 민주국가와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 간 언론, 정보 대결은 최근 그 강도가 심해졌다. 얼마 전 베이징에 주재하던 영국 BBC의 존 서더워드 특파원은 중국 정부의 압력에 못 이겨 대만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올해 초 BBC가 중국 신장 지역의 위구르족 강제수용소에서 발생한 집단 강간 등 끔찍한 인권 침해 사태를 보도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그 보도 이후 서더워드 특파원과 그 가족들은 계속적으로 중국 정부와 관영 매체의 공격에 시달렸고 심지어는 신변의 위협까지 느꼈다. 과거 서울에서 근무할 때 필자와도 친했던 서더워드는 진실 보도를 위해 노력하는 용기 있는 언론인이지만 중국의 지속적인 압력에는 견딜 수가 없었다.
서방 언론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작년에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미국 언론사 특파원 15명을 중국에서 추방한 바 있다. 역시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 탄압이나 홍콩 민주화 운동 무력 진압, 중국 지도부의 부패 등을 파헤친 데 대한 보복 조치였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 정부도 자국 내 중국 언론인의 활동과 인원을 제약했다. 또한 얼마 전에는 호주 특파원 2명이 중국에서 추방되었다. 중국의 인권 문제를 호주 정부가 계속 비판하며 현재 양국 관계는 최악의 상태에 있는데, 이것 역시 배경이 되었다. 중국은 이제 미국뿐 아니라 자신의 체제를 비판하는 자유 진영 국가들 모두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다.
중국이 미국 등 서방 언론을 배척하고 공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 악의적이고 편견이 가득찬 기사로 자국의 이미지를 손상하고 체제를 위협한다는 이유이다. 중국의 밝은 면은 무시하고 어두운 면만 부각한다는 판단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한편으로는 서방 언론에 압력을 가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매체를 이용해 대안적인 뉴스와 정보를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더 이상 서방 언론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세계에서 왜곡된 중국의 모습을 바로잡겠다는 명분이다.
러시아도 이와 비슷한 체제 홍보전을 벌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입이라고 일컬어지는 관영 매체 러시아 투데이(RT)는 24시간 영어 TV 방송으로 미국 및 서방에서 꾸준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시청자를 늘려가고 있다. 중국의 매체보다 더욱 신랄하게 서방 체제를 비판하며 러시아의 주요 외교 정책을 옹호하고 있다. 과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합병했을 때 서방의 비판이 거세지자 이 매체를 통해 자국의 입장을 옹호하는 등 체제 수호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60~70년 전 미·소 대결 냉전 시대의 정보전과 유사하다. 당시 미국은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Radio Free Europe, Radio Free Asia 등 정부가 운영하는 매체를 통해 소련과 동구권을 공략했다. 자유와 인권 등 미국 가치의 우월성을 전파했을 뿐 아니라 재즈, 로큰롤 등 서방 대중 문화를 방송하며 자유에 목 말라 있던 공산권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소련도 라디오 모스크바 등 관영 매체를 통해 자신의 체제를 선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런 언론을 통한 정보전의 우위가 미국에 승리를 안겨주고 냉전 체제의 붕괴를 앞당겼다.
이병종 필진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 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