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과거사 청산과 언론개혁

2021-03-31 10:26



우리는 일제강점기 독립투쟁의 역사를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선조들의 독립방략(전략)은 독립전쟁방략(항일무장투쟁론), 외교방략 그리고 실력양성방략(애국계몽운동) 등 세 가지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당시 그 어떤 독립운동세력도 우리가 일본제국주의와 독자적으로 전쟁을 벌여 조국의 해방을 이뤄내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았기 때문에 세계 열강인 일본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여서 조국을 해방시키겠다는 독립전쟁방략을 독립투쟁의 방략으로 삼은 이들은 없었다. 그러므로 독립전쟁방략은 독자적인 독립방략일 수 없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세력의 독립방략은 향후 일본이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을 거듭한 끝에 미국이나 러시아와 전쟁이 벌어질 경우, 우리도 미국이나 러시아와 연합군을 결성해서 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하여 승전국으로서 독립을 쟁취해 내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 독립운동세력은 항일무장투쟁과 외교투쟁을 병행했던 것이다. 이것이 선조들의 유일한 독립방략이었다.

반면, 일제강점기 국내에서 행해진 소위 애국계몽운동이라는 것은 결국 일제에 투항하고 타협한 것일 뿐이었다. 생사를 다투는 적과의 사이에서 투쟁과 투항 외에 중도의 태도란 있을 수 없고, 국내에서 이런 일제의 혹독한 감시와 억압 속에서 애국계몽운동의 방식으로 독립을 도모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애국계몽운동은 독립방략이라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은 일제강점기에 국내에서 애국계몽운동으로써 독립을 준비하고 내실을 길렀던 이들이 있었고, 그들이 해방 후에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6·25전쟁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고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이뤄냈다는 식으로 배워왔다. 필자는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이유가 해방 후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의 소위 주류가 일제와 타협했던 이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언론이다.

대한민국의 대다수 보수언론들은 일제강점기에 설립되었는데, 이들은 일제에 협력한 부역자들이었고, 어떤 언론사도 그 원죄에 대해 해방 후 76년이 지난 현재까지 국민에게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국민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원죄를 지우는 방식으로 과거사를 청산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드골은 2차대전이 끝나자 나치 독일의 점령기간 동안 나치에 부역했던 언론인들을 가혹하게 처단하였고 거의 대부분의 언론사를 폐간한 후, 정론을 세우기 위해 1944년 '르 몽드'지를 창간했다. '르 몽드'지는 드골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곤 했지만, 드골은 "그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했을 뿐이었다. 언론의 막중한 사회적 역할을 고려할 때, 그러한 청산과 재건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통탄스럽게도 우리나라는 그 고름을 짜내지 못했다.

오히려 일본군 하급장교 출신인 박정희 소장은 1961년 5월경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민족 통일과 부정·부패 고발을 사시로 창간한 '민족일보'의 창립자이자 사장인 조용수를 같은 해 12월 21일 사형시켰는데, 조용수 사장은 억울한 죽음 후 47년 만에 재심재판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고 나면 필연적으로 정상이 비정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건전한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 중에 신뢰받고 존중되는 언론은 필수적인데, 우리 대한민국은 그 필수적인 요소가 심각하게 결여된 상태가 아닌가 싶다. 침략자에게 부역하여 동족에게 해를 끼쳤던 언론은 더 이상 그 사회의 공기이고 목탁인 언론으로서의 자격도 없고 온당하게 역할하리라 기대할 수도 없음에도, 우리는 해방 후 76년 동안 그와 같은 사이비 언론들을 이른바 주류 언론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고름이 살이 될 수는 없다’는 옛말은 언론에 대해서도 옳다.

요즘 언론개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 과거사 청산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언론개혁이다.

정철승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법학과 ▷법무법인 THE FIRM 대표변호사 ▷광복회 고문변호사 ▷한국입법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