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 시대 정치개혁 대제언] 지금 민심은 무당파다…상식 中道를 허용하라
2021-03-29 00:00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1>'기득권 vs 운동권' 패권 놀이터
'아주경제·대한정치학회·대한민국지식중심·한국청년거버넌스'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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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최근 한국 정치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통계청의 ‘2020 한국의 사회지표’가 발표됐다. 이 사회지표는 ‘헬조선’에 사는 ‘흙수저’라고 푸념하는 젊은 세대가 왜 기성세대를 ‘꼰대’라 부르며,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부동산과 주식투자에 나설 수밖에 없는지,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만 13세 이상 국민 가운데 결혼 후 자녀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중은 32%로 2년 전 조사에 비해 1.6%포인트 올라갔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는 사람들은 61.6%로 10명 중 6명에 불과했다.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았다.
또한 국민 중 85.4%가 ‘보수와 진보’ 간 진영갈등이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빈곤층과 중·상층(82.7%), 근로자와 고용주(74.2%), 남자와 여자(48.8%), 종교 간(55.4%), 노인층과 젊은 층(60.9%), 수도권과 지방(62.7%)보다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위 사회지표는 젊은 세대일수록 소득양극화와 삶의 질 하락을 더 절박하게 느끼고 있으며, 코로나19 여파로 양극화가 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갈등(정치 양극화)을 경제 양극화보다 더 큰 문제로 보고 있는 점은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감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지표들은 우리 정치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여준다. 정치가 당면한 경제 양극화를 해소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 개선과 국민통합을 실현하는 ‘민생정치’와 ‘공공성의 정치’보다는 당리당략과 기득권 추구에 빠져있음을 보여준다.
‘공공성의 정치’를 팽개치고 있는 데는 보수, 진보가 따로 없다.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새누리당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정경유착과 부패·비리로 가득 찬 기득권정치의 끝판왕을 보여줬다. 586 운동권 그룹이 주축이 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도 촛불시민혁명으로 집권해 적폐청산을 부르짖었음에도 ‘공공성의 정치’는 실패했다.
‘조국 사태’, ‘윤미향 사건’, ‘추미애·윤석열 갈등 사건’, ‘박원순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부모찬스, 특권과 반칙 등 공정과 정의의 문제를 외면하고 진영논리에 갇히는 이율배반의 모습을 보여줬다. 586들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이중 잣대로 기득권과 위선에 빠진 운동권 정치의 민낯을 보여줬다.
◆巨與 직무유기, LH 등 부동산범죄 키워
586의 민낯을 잘 보여준 사건은 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다. 586이 평소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었음에도, 부동산 폭등에 따른 자산소득의 격차를 막지 못했다.
그들은 왜 거대 의석을 가지고도 LH 직원들의 공직을 이용한 부동산투기를 미리 막지 못했을까. ‘공수처법’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그들이 자기 기득권적 이해관계로 인해 입법기회를 사실상 방치했다는 점에서 직무유기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586의 직무유기는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을 방치해 사실상 보수 기득권 정치와 이해관계를 공유하면서 이번 LH 사태를 국가적 부동산투기 범죄로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태는 공직자 직무 수행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을 방지할 통제장치 부재로 벌어진 예견된 참사”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사태가 정치권이 공직자가 업무 수행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해 재산을 증식하는 행태를 근절하고, 자신의 업무와 관련 있는 사적이해관계자를 신고·공개하도록 하는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에 소극적으로 임했기에 벌어진 일로 보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보기에 지난 2013년 김영란법안에 이해충돌방지규정이 있었지만 정치권이 이것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차례 이해충돌방지법을 따로 입법화할 기회가 있었지만 정치권은 그때마다 이를 외면했고 방치했으며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비판이다.
지난해 박덕흠, 윤창현, 윤영찬, 추혜선, 손혜원, 전봉민 등 보수, 진보를 불문하고 국회의원의 이해충돌문제에 대해 국민적 공분이 제기됐지만 정치권은 그때마다 제식구 감싸기, 탈당으로 꼬리 자르기 등으로 관련법 제정을 외면했다. 2013년에 제출된 김영란법이 원안대로 통과됐다면 지난해 국회의원들의 이해충돌과 이번 LH 사태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부동산 투기를 방치한 이번 LH 사태가 운동권과 기득권의 공모가 키운 ‘경제참사’라고 한다면, 양자의 분열이 키운 ‘정치참사’도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퇴여부를 놓고 ‘광화문파’와 ‘서초동파’가 정면으로 대립했던 모습이다. 이들은 맞불집회로 충돌했다.
지난해 9월 28일 진보진영의 ‘서초동 집회’에 맞서는 10월 3일 보수진영의 ‘광화문 집회’가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10월 5일에 진보진영의 ‘서초동 집회’가 열렸다. 당시 서초동에서 광화문까지 양쪽 진영의 세(勢)대결이 광장정치와 거리의 정치로 연결됐다.
이런 ‘맞불집회’에 대해 10월 4일 문희상 국회의장은 “국회가 갈등과 대립을 녹일 수 있는 용광로가 돼도 모자랄 상황에서 이를 부추기는 행태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광화문으로, 서초동으로 거리에 나선 국민의 뜻은 충분히 전달됐으니 정치권이 민생과 국민통합을 위해 머리를 맞대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당시 대통령과 정치권이 대화와 타협 및 협치를 못했으니 국론은 분열되고 광장정치가 살아나면서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치공동체가 분열의 위기에 노출된 것은 당연했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권이 ‘조국수호=검찰개혁’의 서초동파와 ‘조국사퇴=검찰개혁’의 광화문파로 나뉘어 자기 지지층결집을 위해 국론분열과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고 획책했다.
앞서 언급한 통계청의 사회지표는 지난해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4·15총선 공식 선거운동기간 직전에 발표한 ‘21대 새로운 국회 기획’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와 유사해 메시지의 울림이 있다. ‘21대 국회에 가장 기대하는 점’에 대해서는 응답자 중 ‘민생법안 추진’(29.8%)이 가장 많았다. ‘보수, 진보 간 갈등’(22.9%), ‘국민 통합’(16.9%)이 뒤를 이었다. 보수, 진보 간 갈등과 국민 분열이 ‘일하는 국회’를 막아서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국민적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타락한 진영 의식’을 극복하고 민생문제에 천착하라는 응답자가 10명 중 7명에 달한다.
◆文 지금이라도 정치 이분법 극복하라
그렇다면 기득권 보수와 운동권 진보가 극단적인 진영논리에 빠지는 배경은 무엇일까. 경쟁과 협력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규범과 충돌하는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보는 성리학적 유습인 “이분법적 선악관”이 문제로 보인다. 정당이 당론이란 이름으로 이분법적 선악관을 받아들이면 의원들의 생각 차이와 의견의 다양성은 억압될 수밖에 없다. 국회와 정당이 다양성=적, 동질성=동지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의원들 간의 토론과 숙의를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민생과 공공성의 정치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정치권이 진영대결로 국민을 편가르기 하는 ‘정치적 양극화’를 극복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도 일찍이 많은 고민을 제기한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국회와 정부가 힘을 합쳐서 국민을 통합의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오히려 정치권이 앞장서서 국민을 분열 조장하는 건 옳지 않다”며 정치권의 자성을 촉구한 바 있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9월 18일 “협치나 통합은 정치가 해내야 할 몫인데 잘못하고 있다. 정치에서 갈등이 증폭되다 보니 심지어 방역조차 정치화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문 대통령의 언급들은 협치 부재의 책임과 정치적 양극화의 원인이 국민이 아닌 ‘정치권의 양극화 전략’에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제라도 여야 정치권이 자기 진영만의 ‘지지층결집 전략’을 중단하고, 평균적인 전체 국민들을 대변하기 위해 ‘중도수렴전략’을 사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