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 물리는 ‘반도체 인력난’...적도 아군도 없다

2021-03-16 05:16

반도체 산업계의 인력난이 심화되면서 경쟁사간 이직이 더이상 놀랍지 않은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적도 아군도 없다. 그저 고액 연봉만이 반도체 채용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성과급 논란을 야기한 SK하이닉스의 인력 다수가 삼성전자의 개발직군 경력공채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 연구원들이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반도체의 재료인 실리콘 웨이퍼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 제공]



◆삼성, 채용 규모 세 자릿수로 늘려

삼성전자는 지난달 초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위탁생산), 통신 칩 개발 등 42개 분야에서 경력직 채용을 진행했다. 현재는 서류전형을 거쳐 개별 면접을 진행 중이다. 당초 채용 규모는 두 자릿수였으나, SK하이닉스의 성과급 논란과 맞물려 관심이 집중되면서 세 자릿수까지 규모를 늘린 것으로 추정된다. 반도체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내 메모리 사업부와 파운드리, 시스템LSI 등 3개 사업부가 모두 채용을 진행한 영향이 크다. 삼성전자 반도체 DS 부문은 작년에도 반도체 인력 수백명을 경력직으로 뽑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올해 그 어느 해보다 의욕적으로 반도체 인력 수급에 나섰는데 때마침 하이닉스에서 성과급 불만이 분출되면서 반사이익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SK하이닉스 개발직군 사이에서는 이번 삼성 경력 채용에 누구나 한번씩은 지원서를 넣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설령 입사를 못해도 잃을 게 없다’ 식의 지원을 했다는 뜻이다. 여기다 삼성전자는 이르면 이번 주부터 신입사원 공채에 돌입해 대학을 갓 졸업한 인재 유치에도 나섰다.

SK하이닉스도 삼성에 질세라 다각적인 채용에 돌입했다. 인력 풀 확보에 있어 우위인 삼성보다 한 달 먼저 신입사원 채용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달 중순부터 설계, 소자 등 12개 분야에서 수시채용 형태로 인재를 뽑고 있다. 경력직 또한 삼성전자처럼 D램 개발과 반도체 팹(공장) 공정, 데이터 분석 등 핵심 부문에서 발탁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성과급 논란을 진화하기 위해 삼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신규 채용자에 대한 복리후생 조치를 고심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업계 곳곳에서 우수 인재 모시기에 명운을 거는 분위기다. 파운드리 전문인 DB하이텍도 올해 전방위 채용에 돌입했다. 지난 10일 채용전제형 인턴사원 서류 전형을 마감했고, 경력 채용도 서류접수를 거쳐 현재 면접 전형을 준비 중이다.
 

삼성전자 연구원이 화성 반도체 생산라인 클린룸을 오가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필요한 인력, 매년 2% 부족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월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 의뢰해 만든 ‘2020년도 산업기술인력 수급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말 기준 차세대 반도체와 첨단 화학소재 등 5대 신산업 분야 산업기술인력은 11만1000명으로, 앞으로 10년간 연평균 3.4% 증가해 오는 2029년에는 15만5000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차세대 반도체 분야 인력은 2019년 말 현재 3만6000명에서 2029년에는 5만1000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현재 인력 부족률은 2.1%(766명)로 매년 필요한 인력을 제때 충원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끼리 우수한 인재를 뺏고 뺏기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수급실태 조사에서도 반도체 기업들은 스카우트와 이직을 인력난의 주원인으로 꼽았다. 구체적으로 △대기업 또는 경쟁회사로 스카우트 되는 경우가 많아서(5.7%) △인력의 잦은 이직이나 퇴직으로 인해서(18.9%)라는 답변이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촘촘한 인재 육성책을 세우지 않으면, 매년 국내 기업끼리 물고 물리는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 와중에 중국 등은 국내 우수한 인재에게 집과 차량까지 제공하는 등 파격적인 혜택을 제시하고 있어, 해외로 인력 및 기술 유출이 우려된다”고 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