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국민통합' 위해 몸 던져야....아니면? 나오지 마시라

2021-03-11 19:00

[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교수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하 윤석열)이 정치에 뛰어든다면 정치발전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아웅다웅하는 눈앞의 현실정치를 떠나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놓고 고민해보자. 정치발전은 대중의 정치참여가 확장되고, 정치체제의 효율성(문제 해결능력)이 높아지며,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이뤄지는 상태를 말한다. 보편적 정의가 그렇다는 거고 한국적 상황에선 조금 다를 것이다. 정치참여만 해도 ‘과잉’을 걱정할 정도라면 옛날만큼 절대적이지는 않다, 나는 대결정치(진영화)의 완화, 곧 통합을 한국 정치발전의 첫 번째 과제로 꼽고 싶다. 과도한 진영화로 인한 갈등과 분열이 블랙홀처럼 한국사회의 모든 잠재력과 가능성을 집어삼키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정치 진출은 결과적으로 우리 정치의 극단화(진영화)와 단순화를 심화시킬 확률이 높다. 처음부터 적(敵)이었던 사람보다 같은 편이었다가 적이 되는 사람에게 더 원한이 맺히는 법이다. 조국 전 법무장관부터 “진보 정부에 대한 집요한 표적수사로 보수 야권 대권후보로 부각되더니, 대선을 1년 앞두고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국민 보호’를 선언하며(구실로) 사직했다.”고 맹비난했다. “윤석열의 ‘법치’는 “법치로 포장된 ‘검치’(檢治)”일뿐이라고도 했다. 이 한마디에 모든 게 다 들어있다. 싸움은 공수(攻守)가 뒤바뀐 ‘조국대전’이 될 게 분명하고, 어젠다는 ‘법치와 정의’라는 단순화된 원론(原論)으로 시종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을 대선 정국의 한 복판으로 불러낸 건 이 정권이다. 한 꺼풀 더 벗기고 들어가면 운동권적 이중성(위선)이다. 지난 4년 간 국민이 진저리를 친 것은 ‘우리는 정의, 당신네들은 불의’라는 이중 잣대였다. 우리는 정의니까 뭘 해도 옳다는 인식 말이다. 이 정권 들어 국회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만 29명이다. 그 중 한 사람인 국토교통부장관은 LH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당시 사장으로 조사 대상일 텐데 외려 조사를 총괄 중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자신들만이 ‘정의’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독선이 결국 ’윤석열 찍어내기‘로 정점을 찍었다.

尹을 불러낸 운동권적 이중성

‘나만 옳다’는 독선으로 치자면 검찰 또한 뒤지지 않는다. 검찰은 자신들이 수사하고 내린 결론만이 옳고 정의라고 믿는다. 법원의 무죄 판결에 입장표명은 하면서도 잘못 기소된 사람들에게는 재심에서 뒤집히지 않는 한 사과하지 않는다. 2019년 6월25일 당시 문무일 총장이 과거 검찰의 부실수사와 인권침해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게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 사과다. 윤석열의 정치 참여는 정치와 선거를 “내가 정의”라는 두 세력 간의 대결로 단순화시킬 위험성이 있다. 그 싸움의 외피는 물론 문빠 중심의 팬덤 정치와 ‘윤석열 표 법치정치’로 나타날 거고. ‘윤빠’도 곧 생길 것이다. 윤사모 비공식회원만 벌써 2만이 넘는다고 한다.

검찰총장이 정치권력, 그것도 절대권력(통치권력)을 향해 한 번에 직진하는 경우는 일찍이 우리 정치사에 없었다. 총장이 바로 국회의원으로 간 경우조차도 1995년 김도언 총장이 유일하다. 김 총장은 임기를 마치고 이듬해인 1996년 신한국당 공천으로 부산 금정구에서 당선됐다. 당시 검사들은 평소 총장을 정치로부터 초월적인 존재라고 믿었기에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고 한다. 윤석열은 국회를 건너뛰고 단숨에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섰다. 지난주 문화일보 여론조사에선 그의 정치 진출에 대해 “적절하다”는 응답이 47.2%로, ‘적절하지 않다’는 응답 45.7%보다 다소 높았다. 한 진보 언론인은 칼럼(한겨레 3월9일)을 통해 그에게 “출마하지 마시라”고 했지만 그를 정치판으로 불러낸 게 누군가.

지역주의의 유령도 벌써 어른거린다. 윤석열은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친이 충남 논산 출신이어서 충청도 사람으로 간주된다. 그는 이미 충청 대망론의 중심인물이 돼 있다. 지난주 두 차례의 대선지지도 조사(문화일보, TBS)에서 이재명 경기지사(22.4%, 24.1%)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13.8%, 14.9%)를 제치고 1위를(28.3%, 32.4%)차지했을 때도 서울(39.8%)과 대전‧세종‧충청(37.5%)의 지지율이 전국 평균보다 높았다.(동아일보 3월8일)

야권 일각에선 그를 중심으로 충청-TK(대구 경북) 연대를 이뤄 문재인 정권의 호남-PK(부산 경남)에 맞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가 사퇴 하루 전에 전격 방문한 곳이 대구였다는 점을 이와 연관 짓기도 한다.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추억하는 사람들은 한국정치에선 현실적으로 지역 간 연대 없이 대선 승리는 어렵다고들 한다. 윤석열은 어떨까. 정치발전의 암적 존재라는 지역주의에 기대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을까.

호남-PK에 충청-TK로 맞서야?

정체성(identity)의 문제는 더 심각할 것이다. 보수정당의 두 전직 대통령을 잡아넣은 그가 그 정당의 대선후보로 나올 수 있을까. 초한지(楚漢志)를 조금 빌리면 한신(韓信)이 한 때의 적(敵)이자 자신의 손으로 패퇴시켰던 항우(項羽)의 잔병들을 끌어 모아 유방(劉邦)에 맞서는 꼴과도 같다.(실제로는 한신이 유방을 도와 항우를 꺾고 한의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끝내 유방에 의해 죽는다. 이른바 토사구팽이다.)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하 박근혜)에 대한 윤석열의 입장도 궁금하다. 그가 입당하게 되면 그의 손으로 감옥에 보낸 박의 사면을 주장할까. 아니, 주장할 수 있을까. 어떤 논리로? 사면 주장 없이 그가 국민의 힘을 아우를 수 있을까? 실로 미묘하고 복잡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제3지대 창당이 그 대안으로 거론되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문화일보)는 윤이 대선에 나간다면 ‘국민의 힘’ 소속으로 출마해야 한다는 응답이 41.9%로 가장 높다.(신당 창당은 14.4%, 무소속 후보는 13.7%) 비록 인기 없는 야당이지만 반문(反文) 세력을 결집시키려면 국민의 힘을 중심으로 뭉치는 게 낫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정치의 양극화에 대한 우려를 가중시킨다.

윤의 주변에선 신당 창당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었다는 전언도 있다. 그럴 경우 국민의 힘 측에서 만족할 만큼 동조 탈당(헤쳐모여)이 이뤄질지, 안철수도 합류할지가 핵심 포인트라고 하겠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은 “이재명의 독주와 윤석열의 사실상 출사로 양 진영이 해체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내년 대선은 진영이 최대로 결집한 2012년 대선보다는 양 진영이 모두 분열된 1987년 대선과 유사할 것”으로 내다봤다.(경향신문 3월6일) 그러나 대권주자들 수가 늘어난다고 진영이 해체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낙연, 이재명은 해체될 진영도, 뛰쳐나갈 진영도 없다. 안철수는 이미 서울시장 쪽으로 빠져나갔다. 홍준표는 2017년 다자구도 대선에서 쓴맛을 봤는데 또 나설까?

‘4자 필승론’의 수혜자는 민주당?

박성민은 다자구도가 되면 87년 대선 때처럼 ‘4자 필승론’‧이 다시 나올 거로 예측했다. 당시엔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노태우 후보가 출마해 노태우가 승리했다. 야권 표가 양 김 사이에서 갈린 탓이었다. 이번에도 4자 구도가 된다면, 야(野)쪽에서 누가 나오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설령 윤석열이 국민의 힘에 입당해도 케미스트리(화학적 결합)가 안되면 ‘4자 필승론’의 수혜자는 결국 민주당이 될 것이다.

4자든, 양자든 이번 대선이 양극단으로 치닫는 우리 정치에 그만 브레이크를 걸어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정치인 윤석열의 소명(召命)은 여기에 있다고 나는 본다. 이왕 정치에 뛰어들기로 했다면 국민을 가르기 보다는 국민이 하나가 되는 정치를 구현하는데 앞장서는 게 옳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내용과 실질이 있는 정치를 하겠다는 구체적인 어젠다로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단순성 구호와 반문 정서, 국민의 분노에만 기대서는 한계가 있다.

그가 내세우는 ‘법치와 정의’만 해도 국민은 헷갈린다. 법치와 정의라면 검찰개혁이 핵심인데 윤석열의 검찰개혁은 이 정권의 개혁과는 어떻게 다른가. 수사와 기소를 더 확실하게 분리하자는 것인가, 아니면 어정쩡한 상태로 두거나, 과거 상태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어디 검찰개혁 뿐일까. 다른 많은 영역에서도 이런 구체적인 물음에 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원론이 아닌 각론으로 구축된 그 토대 위에서 국민통합을 얘기해야 한다. 국민이 편이 갈려 서로 증오하고 싸우는 나라에선 백약이 무효다. 문재인 정권에서 우리는 질리도록 경험했다. 그의 주사위가 이미 던져졌다면, ‘별의 순간’이 오고 있다면, 구체적인 비전과 어젠다로 국민통합을 위해 몸을 던져야 한다. 그런 각오와 리더십과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나오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