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고령화 시대 여성 경제활동 늘려라... 기업들 압박 커진다

2021-03-09 08:00
남녀 성비 등 불균형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심각한 수준
정부·기업 여성 일자리 확대 노력... 제도 개선 등 영향

기업들에 대한 여성 일자리 창출 압박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 시대로 접어드는 우리나라 경제 생태계의 생존을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정부도 여성 일자리 창출 관련 기본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자본시장법 개정안 등을 통해서 우리사회의 깨지지 않는 ‘유리벽’도 허문다는 방침이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공군회관에서 열린 '2021년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해 '위대한 여성, 함께하는 대한민국'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여성가족부 제공]

◆남녀 성비 등 불균형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심각한 수준
기업분석 전문 한국CXO연구소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국내 주요 30개 대기업의 1999년과 2019년 남녀 성비·평균 보수 변동 현황을 분석한 결과 남녀 불균형이 개선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실제 1999년 30대 기업 전체 직원 수는 37만362명에서 2019년 54만5087명으로 20년 새 17만명(47.2%)이 증가했다. 남자 직원은 31만4765명에서 43만6210명으로 38.6% 늘었고, 여자 직원은 5만5597명에서 10만8877명으로 95.8% 확대됐다.

하지만 성비로 보면 1999년 당시 100명 중 여성은 15명꼴에서, 2019년 20명꼴로 늘었다. 여성 비율이 높아지긴 했지만, 남성 직원이 압도적으로 많은 불균형 상태라고 CXO연구소는 지적했다.

유리벽도 여전히 존재했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자산 2조원 이상 147개(2019년 결산 기준) 기업의 등기임원(사내·사외이사) 가운데 여성 이사의 비중은 5.1%로 조사됐다. 전체 1086명의 등기임원중 여성 이사가 55명에 그친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늘리지 않으면, 고령화 시대로 넘어가는 우리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제고가 인구감소와 노인부양률 급증을 해결할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조언이다.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만 15~65세 여성인구 중 경제활동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80년 예상 노인부양률이 국제경제협력기구(OECD) 평균(60.8명)보다 낮은 23개 국가 중 20개국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모두 OECD 평균 여성 경제활동참가율(2019년 기준 65.1%)을 상회했다.

또 23개국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평균 70.1%였지만 한국은 이보다 10% 포인트 낮은 60.0%에 그쳤다.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노인부양률을 낮추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일할 사람은 적어지고 부양해야 할 대상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여성을 경제활동인구로 최대한 합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끌어올려 출산율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3시스탑 공동행동 소속 회원들이 8일 서울시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3.8여성의날 기념 기자회견에서 성별임금격차 해소와 여성노동자의 가난과 불안해소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기업 여성 일자리 확대 노력... 제도 개선 등 영향
이에 정부는 기업과 함께 중단기 대책을 통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우선 코로나19로 크게 감소한 여성 일자리를 회복시킨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 등을 통해 올해 총 78만개의 여성 일자리를 추가로 만들어낼 예정이다.

여성을 채용하는 기업들에 대한 지원 확대 등을 통해서다. 일례로 경력단절 여성에게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주고 해당 기업과 개인에게 총 380만원의 보조금을 주는 새일여성인턴제 참여 인원은 기존보다 2000명 더 늘린 9777명으로 확대한다.

중소기업이 6개월 이상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을 채용하면 정부가 1인당 월 최대 100만원씩 6개월간 지원하는 특별고용촉진장려금은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모두 1만8000명의 여성에게 지원할 예정이다.

정부는 2006년부터 시행한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A) 제도에 15년만에 처음으로 절대평가 요소도 도입한다. 현재는 업종별 평균 여성 고용률과 관리자 비율이 70%가 안 되는 기업에만 여성고용 개선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데, 앞으로는 일정 숫자 이상을 충족하도록 절대평가 요소를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제도 적용 대상도 상시근로자 500인 이상 사업장에서 3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한다.

여성 기업인의 지위를 높여 동기도 부여하고 기업 내 혁신도 이끈다. 정부는 내년 8월부터 여성 이사를 1명 이상 두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시행한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법인은 이사회 전원을 특정 성(性)의 이사로 구성해서는 안 된다’는 개정안의 조항을 따라 여성 이사가 1명도 없는 100여개 기업들은 올해 또는 내년 3월 주주총회까지 여성 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한다.

실제 올해 주총을 앞두고 기업들에 여성 이사 선임이 줄을 잇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주요 상장 계열사들이 처음으로 올해 주총에서 여성 이사 선임안을 결의할 예정이다.

LG그룹도 지주사인 ㈜LG를 비롯해 LG전자, LG유플러스, LG하우시스 등 5개 상장 계열사가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한다. 지난달 26일에는 ㈜한화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한화그룹 계열이 여성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한 주총 안건을 공개했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아무래도 현재 기업 사내이사를 여성이 맡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개정법 시행 전까지 상당수 기업이 사외이사를 통해 성비를 맞출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5.1%인 여성 등기임원 비중이 올해까지 10% 선으로 늘어날 것”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