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국·공유지 ‘지끌’…안 합니까, 못 합니까

2021-02-23 14:25
부동산 대책, 상상력은 ‘국공유지 끌어 모으기’부터
정부 강제 수용, 서울시 곳곳 제2,3의 용산 참사 우려
대통령이 땅 마련, 변창흠 장관은 집 짓고



어느 정부든 대한민국 부동산 정책의 고갱이는 ‘집 없는 설움’ 방지다. 최대한 많은 국민에게 자기 소유의 집을 한 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임대주택에 만족하는 한국인은 (아직까지) 흔하지 않다. 그래서 분양가가 적정한 내 아파트, 내 집 후보를 수요에 맞춰 공급하는 게 중요하다.

과거엔 농사 짓는 사람이 밭을 가졌고(경자유전·耕者有田), 이제는 거주하는 사람이 집을 가져야(거자유택·居者有宅) 한다.

동시에 집이 투기 대상이 되지 않게, 될수록 다주택자를 억제하고 초고가 주택 보유자에게는 세금을 더 거두는 건 상식이다. 

20억~30억원 아파트에 살면서 세금 낼 돈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이들에 공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공정과 정의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월급이 오르면, 재산이 많아지면 당연히 세금을 더 낸다.

문재인 정부 들어 25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시장은 거세게 저항했다. 정부 신뢰의 문제가 가장 크다. 집값을 잡겠다는 대통령과 정부의 말을 믿지 못한다. 양질의 주택 공급과 투기 억제 대책을 비웃는다.

◆용산 참사 되풀이될 수도
지난 4일 정부가 전국적으로 총 83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책, 이른바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2·4 대책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의 공급 방안이다.

공공이 개발을 주도해 2025년까지 서울 32만호 등 전국적으로 83만호의 주택을 짓겠다는 것이다. 가장 핵심은 저개발 도심지 땅 주인, 세입자 등에게 각종 혜택을 줘 부지를 마련한다는 거다. 역세권·준공업지역·저층주거지에서 공공기관이 부지를 확보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이다.

그런데 이 핵심에 결정적인 변수가 있다. 입지가 미정이다. ‘어떻게’는 나왔는데 ‘어디에’가 빠졌다. 당국은 최종 검토 중이라고 하는데 누구나 오래된 구도심, 저개발지라고 예상한다. 거론되는 후보 지역 땅 주인들은 벌써부터 현수막을 내건다. ‘누구 맘대로?!’라며. 서울 강남 등 재건축에 공공의 개입을 원치 않는 지역 주민들은 아예 싸늘하고 차가운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럼에도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자신감에 차 있다. “집 주인, 땅 주인이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사업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며. 떡 가진 사람들은 줄 생각이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다.

변 장관 주장은 이렇다. “도심에선 주택을 지을 부지 확보가 중요한데, 부지를 강제로 얻을 수는 없으니 결국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결정권을 가진 이들에게 이익이 되게 만들어 주면 된다··· 안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변 장관은 스스로 이 정책의 문제점을 시인했다. 땅(집) 주인, 세입자들이 공공 수용을 거부할 때 ‘강제할 수 있는 수단’ 대목이다.

“사업 동의요건을 (기존 4분의3에서) 3분의2로 줄였는데 결국 마지막에는 수용권을 발동할 수밖에 없다··· 결국 지자체와 조합 등 주체들이 설득을 해야 한다. 결국 해낼 거다.”

변 장관의 주장에 용산 참사의 악몽이 떠올랐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6명이 숨진 사건. 용산 4구역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던 중 일어났던 참사다.

변창흠표 대책이 잘 작동되지 않아 민간인 소유의 땅, 건물 세입자에게 강제 수단을 동원해 수용권을 발동하면 언제 어디서든 제2, 제3의 용산 참사가 날 수 있다.

국·공유지 살펴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용산 참사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낮은 땅, 신속하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준)공공기관이 소유한 땅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2·4대책 중 공공자가주택의 경우 공공택지 및 국공유지를 통해 본격 공급되기 때문에 무주택 실수요자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집을 마련할 수 있다”고 호평한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디'가 빠졌다.
 

[e나라재산 홈페이제 접속하면 국유재산 관련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사진=홈페이지 캡처]


국유지는 기획재정부(행정재산)와 한국자산관리공사(일반재산)가 관리하고 있다.

'e나라재산'이라는 국유재산 포털에 들어가면 지역별 국유부동산 조회가 가능하다. 여기에 나온 기획재정부의 ‘2019회계연도 국유재산관리운용총보고서’에 따르면 국유지는 2만5158㎢, 금액으론 484조8771억원이다. 1㎢가 30만2500평이니까 755억여평에 달한다. 이곳을 꼼꼼히 제대로 살펴 집을 지을 수 있는, 부동산 대책에 포함시킬 수 있는 모든 땅을 다 점검하는 게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확인해 봤다. 국유재산 관리 책임 기관 두 곳에 정부 부동산 대책 마련에 얼마나 간여했는지를, 요컨대 정부의 부동산 대책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답은 “예나 지금이나 없다”였다.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관리 중인 공유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문재인 정부가 25차례에 걸쳐 부동산 대책과 연동해 국공유지 실태를 종합적으로, 전면적으로 점검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7·10 부동산 대책에서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와 태릉골프장 등 대형 후보지들을 거론하며 국방부와 논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지역은 공공주택지구 지정도 안 돼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가 관리 중인 서울시내 국유지 면적 기준 톱10 지역]


◆국공유지 끌어모으는 ‘지끌’
변창흠 장관이 오랜 경험과 고민 끝에 ‘역대 최대 공공주택 공급’이라는 회심의 역작을 내놓으려는 노력은 옳다. 하지만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 국토교통부 수준을 뛰어넘어, 모든 정부 부처·지자체·기관 소유의 국공유지를 끌어모으는 '지끌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일부에서 이미 완료했고 준비 중인 곳도 적지 않다.

 

[서울 구로구가 건설한 18층 규모의 오류1동주민센터와 행복주택 건물. 사진=구로구]


최근에 준공한 서울 구로구 오류1동 주민센터 복합 건물이 바로 그 예다. 연면적 1만327㎡, 지하 4층, 지상 18층 규모로, 2∼5층은 오류1동 주민센터, 6∼18층은 행복주택이 자리했다. 지난달 말부터 절찬리에 입주가 시작됐다.

2016년 정부와 SH(서울주택도시공사), 구로구 삼자가 모여 복합개발키로 합의한 지 불과 4년 만이다. 구로구는 땅, 정부는 건축비, SH는 행복주택 운영권을 맡았다.

서울시 25개 구청이 한데 모여 이와 유사한 프로젝트를 꾸리고, 정부와 SH가 본격적으로 공공주택 개발 부지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400여곳에 달하는 주민센터에 더해 작지만 알찬 지자체 소유 공유지를 영혼을 다해 끌어 모아 보자.

이미 강동구 강일동 버스차고지 등에서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마련했고, 중랑구 신내동의 북부간선도로 입체화 사업, 서대문구 연희동과 은평구 증산동의 빗물펌프장 복합개발 사업 등도 있다.

이를 전 부처와 공공기관으로 크게 확대하는 게 '국공유지 지끌 TF'의 요체다.

지자체, 각 부처별로 알토란 같은 땅을 국가 명운이 걸린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내놓게 해야 한다.

기획재정부가 총설계를 하고, △교육부는 도심 초·중·고 통폐합 △국가정보원은 서초구 내곡동 본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우체국, KT 등 유관기관 △법무부는 노후 검찰청사 △국방부는 골프장, 부대 이전, 예비군훈련장 △행정안전부는 경찰서 및 치안센터(옛 파출소) 통폐합, 면허시험장 △농림부는 농협 △환경부는 기상청 이전 △국토교통부는 공항, 역사, 차량기지 등 무궁무진하다.

금융위원회는 관치금융 칼만 휘두르지 말고, 5대 시중은행을 포함한 대형 금융기관이 가진 막대한 땅을 공공주택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

정부 말고 입법부와 사법부 역할도 없지 않다. 국회는 일단 여의도 본청 이전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국·공유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관련 법을 만들거나 개정하는 데 여야가 합의해야 한다.

법원도 전국 요지에 자리한 지방법원을 오류동 주민센터와 비슷하게 공공복합건물로 탈바꿈하는 아이디어를 고려하면 좋겠다.

이미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은 정세균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주택용지를 확보하기 위해 국·공립시설 부지를 최대한 발굴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잘 안 되고 있다.

무주택 서민들은 집을 사려 '영혼까지 끌어 모으고(영끌)'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국·공유지를 '지끌'하고 변창흠 장관이 집을 짓는 그림을 그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