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완전한 승리를 위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

2021-02-24 13:21

 
 
 

[노창희 실장]




아직 며칠 남아 있기는 하지만 2월 한 달 동안 국내에서 가장 많이 회자 된 콘텐츠 혹은 단어 중 하나는 ‘승리호’일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공개하기까지 개봉일을 몇 차례 연기하고 넷플릭스를 유통창구로 선택한‘승리호’에 대한 기대와 우려는 양쪽 모두 상당했다. ‘승리호’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직후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에서 제공하는 넷플릭스 영화 순위에서 글로벌 1위를 기록했다. 이 정도면 기대치 이상의 결과라고 할 만하다.

평단에서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 잡지 <씨네21>에 실린 한 줄 평을 보면 ‘승리호’에 대한 평이 대체로 우호적이지만 ‘승리호’가 남긴 과제 역시 존재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각각 별 4개를 준 이용철 평론가가 “이건 정말 극장에서 봐야 해”라는 한 줄 평을 남겼고, <씨네21>의 김성훈 기자는 “휴머니티, 연대 등 넷플릭스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조성희 월드”라고 평했다. 반면, 별 2.5개를 준 김철홍 평론가는 “언젠가 승리의 발판이 될 최초의 패배”라는 평을 남겨 아쉬움을 드러냈다. 역시 별 2.5개를 준 이동진 평론가는 블로그를 통해 “기술적 성취를 가리는 몰개성의 작법”이라고 ‘승리호’의 내러티브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평단의 반응은 대체로 기술적 완성도는 기대 이상이었지만 서사에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승리호’의 성과와 한계는 단순히 비평적인 측면뿐 아니라 미디어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거리들을 던지고 있다. <승리호>가 거둔 성과는 성과대로 인정해야겠지만 ‘승리호’가 우리에게 남긴 구조적인 과제와 텍스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가장 아쉬운 점은 국내에서는 아직 콘텐츠를 글로벌하게 유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유통창구가 되면 2억명이 넘는 넷플릭스 가입자들에게 우리 콘텐츠를 알릴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출연 배우를 비롯한 제작진, 제작사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부분 역시 큰 메리트다. 제작비를 회수하면서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것도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넷플릭스에 방영권을 넘겨 주게 되면 대체로 넷플릭스가 IP를 보유하게 된다. 넷플릭스는 240억의 제작비가 투입된 ‘승리호’의 판권을 310억을 내고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자 간 사적 계약에 대해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그간의 관행을 봤을 때 ‘승리호’의 투자와 배급을 맡은 메리크리스마스가 향후 IP에 관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승리호’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이후 오히려 메리크리스마스의 모회사 위지윅스튜디오의 주가는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넷플릭스에서 제작비를 투자받거나 넷플릭스에 판권을 넘겨주게 되면 제작사 측에서 IP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상당히 공유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넷플릭스와 방영권 계약을 한 이후에는 콘텐츠를 공급한 제작사 측이 ‘승리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승리호’의 성공으로 메리크리스마스와 모회사 위지윅스튜디오의 가치는 앞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와 협업할 경우 국내 미디어 산업 차원에서 갖는 한계는 분명하다.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춘 국내 플랫폼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승리호’와 같이 글로벌 유통을 해외 플랫폼 사업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IP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거나 권리 행사에 제약이 존재하기 때문에 리스크를 줄일 수는 있으나 소위 말하는 ‘초대박’을 내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평단에서 지적하고 있는 내러티브의 한계는 산업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극복이 필요한 부분이다. 미디어산업 특히, 콘텐츠산업은 리스크가 큰 산업이며, 이로 인해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기존에 성공한 서사의 관행을 참조한다. 대중문화에서 기존의 형식을 따르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승리호’가 비판받고 있는 지점은 대한민국 영상서사에서 자주 쓰이는 신파적 내터리브 전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신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신파적인 정서로 승부를 보고자 하는 영상서사가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지점은 ‘승리호’는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신파가 대한민국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글로벌 시장에서도 신파가 안전장치로 기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원천 서사를 웹툰에 의존하는 경향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웹툰을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하면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이미 내러티브의 경쟁력을 검증받은 서사를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상으로 제작할 때 실패할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또한, 웹툰의 서사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며, 국내 웹툰 산업의 경쟁력과 영상산업의 경쟁력이 상호 간에 시너지를 창출 할 수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자본이 투입되는 영상서사가 내러티브에 있어 웹툰에만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심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웹툰의 서사를 영상화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스토리 텔링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승리호’는 분명 의미 있는 시도였고, 주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어냈다. ‘승리호’가 달성한 성취는 성취대로 박수를 보내야 하겠지만 ‘승리호’가 남긴 과제 역시도 소홀히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