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학교폭력’... 법은 용서해도 피해자는 용서 못한다

2021-02-16 17:10
TV에 나오는 가해자에 고통받는 피해자... 미투 운동서 용기 얻어 '학투' 활발
연예계는 학교폭력 사전 검증 나서, 스포츠계도 관련 제도 도입해야

본인이 장관이 될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장관이 과거 SNS를 통해 ‘막말’을 했다는 논란이 일어나자 한 답변이다. 사람은 누구도 나중 일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때문에 과거에 많은 '악행'을 저지르곤 한다. 전에는 악행을 했음에도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지만, 이제 SNS를 포함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발해지면서 달라지고 있다. 과거의 악행이 현재의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면 인성부터 다듬어야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16일 아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의 잘못을 사회에 고발하는 '학투' 행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학투'란 '학'교 폭력과 과거의 피해를 대중에게 폭로하는 '미투'를 합친 신조어다. 피해자들은 SNS, 커뮤니티 등 온라인 채널을 활용해 '학투'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분야 가리지 않고 터지는 '학투'···법적 처벌은 어렵다

한국 여자배구 흥국생명 소속 이재영(왼쪽), 이다영 선수. [사진=연합뉴스]

'학투'는 주로 연예계와 스포츠계 등 대중에게 많은 관심을 받는 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연예·스포츠 스타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피해자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모습을 볼 때마다 학교폭력 당시의 아픈 기억이 떠올라 정상적인 삶을 살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지난 1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국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 소속 간판스타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의 과거 학교폭력 사례를 폭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글은 총 21가지 피해 사례가 상세히 소개되어 있어 신빙성을 더했다.

이후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각자 SNS를 통해 과거 학교폭력 행위에 대한 자필 사과문을 올렸지만, 이미 여파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구단 측은 두 선수에게 무기한 출전정지 처분을 내렸고, 대한민국배구협회도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국가대표 자격을 무기한 박탈했다.

방송계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앞서 출연했던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 E채널 ‘노는 언니’, 채널A ‘아이콘택트’ 등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다시 보기나 관련 영상에서 지워졌다. 이들이 모델로 등장한 자동차 광고도 중단됐다.

방송계에선 TV조선 인기 프로그램 ‘미스트롯’ 시즌2에 출연한 가수 진달래가 학교폭력 논란으로 중도 하차해야만 했다. 진달래의 학교폭력 논란 역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학투' 폭로 글이 시발점이었다.

이 밖에 래퍼 양홍원, 그룹 블락비 멤버 박경, 배구 선수 송명근‧심경섭, 야구 선수 안우진‧김유성 등 수 많은 연예·스포츠 스타가 학교폭력 전적으로 대중의 비판을 받았다.

'학투'로 인해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 대부분은 구단 내 자체 징계를 받거나 활동을 중단하고 방송에서 하차했다. 하지만 법적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사례가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다.

관련 법에 따르면 폭행죄 공소시효는 5년, 상해죄는 7년이다. 단체로 행동했거나 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사용해 상해를 입힌 특수상해죄도 공소시효는 10년에 불과하다.

이필우 변호사(법무법인 강남)는 “학교폭력을 특정한 법안도 없고 학교폭력과 폭행죄 개념이 다르다. 학교폭력은 포괄적이라 그 중 형법에 해당하는 행위를 개별 범죄로 따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도 있는 날로부터 10년이라 처벌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재 '학투'를 주장하는 세대는 대부분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에 태어난 MZ세대로 추정된다. 이재영·이다영 선수(1996년생), 가수 진달래(1986년생) 등 '학투' 가해자로 지목받은 스타 대부분이 여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MZ세대는 모바일을 우선하여 사용하고, SNS 문화에 익숙하다. SNS는 간편하게 자신 의견을 표출할 수 있으면서도 익명이 상당 부분 보장되는 만큼 피해자가 용기를 내 '학투'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사회적 강자에게 받은 피해 사실을 고발하고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는 '미투' 운동이 활발해진 것도 피해자들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한 요인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예전에 맞거나 때리는 게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 나중에 큰 트라우마로 남은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문화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관리 나선 연예계···스포츠계는 아직 갈 길 멀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타를 육성·관리하고 수입을 창출하는 연예계에서 활동 자체를 멈춰야 하는 학교폭력 문제는 소속사 매출에 치명타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에 많은 연예기획사가 데뷔에 앞서 10대부터 시작하는 학교폭력 검증 체계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반면 성인이 돼 프로로 입성해야 소속사 관리를 받는 스포츠계는 학교폭력 검증 프로세스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SM엔터테인먼트를 포함해 상당수의 연예기획사가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키기 전부터 SNS 점검은 기본이고, 생활기록부 확인, 담임 선생님과 주변 지인 인터뷰 등으로 철저히 학교폭력 검증 과정을 거친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요즘 예체능계 전반적으로 학교폭력이 논란이 돼 소속사들도 신경을 많이 쓴다. 데뷔 전 행동을 막을 수는 없지만 (문제가 있는 연습생과는) 얽히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연예계에서 학교폭력 문제를 일으킨 이들은 어릴 때부터 관리를 받은 연습생 출신보다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급격히 인기를 얻은 케이스가 많다.

반면 스포츠계는 여전히 학교폭력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에 발표한 ‘운동선수 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폭력 또는 성폭력을 겪었다고 응답(중복 포함)한 초‧중‧고 운동선수는 5만7557명 중 1만6687명(28.9%)에 달했다. 인권위는 "폭력에 노출된 학생일수록 경기성적이나 팀워크를 위해 폭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스포츠계도 악습 개선에 나서고 있다. 예를 들어 스포츠 인권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마련된 ‘국민체육진흥법’이 오는 19일 시행될 예정이다. 법안은 △체육인에게 인권침해·비리 즉시 신고 의무 부과, 신고자·피해자 보호 조치 강화 △직권조사 권한 명시, 조사 방해·거부 시 징계 요구 등 스포츠윤리센터 조사권 강화 △가해자에 대한 제재 및 체육계 복귀 제한 강화 △상시적 인권침해 감시 확대 및 체육지도자 등에 대한 인권교육 강화 △체육계 표준계약서 도입 및 실업팀 근로감독·운영관리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고통에 못이겨 '학투'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교육·언예·스포츠 업계가 뒤늦은 대처보다 학교폭력 예방과 조기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필우 변호사는 “성인이 돼 학교폭력 관련 고소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형사 범죄는 입증이 돼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 검증이 어렵고 주장만으로는 처벌될 가능성도 적다”고 말했다.

정익중 교수는 “가해자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 생각하지만 피해자는 상처가 크다. 보통 3~6년 정도 함께 학교를 다니는데 학교폭력이 겉으로 드러난 정도면 오랫동안 쌓인 것”이라며 “예방이 가장 우선이고 조기 발견과 치료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아주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