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우리 먹거리 '김치'를 내 것이라 하는 이들은 누굴까

2021-02-04 17:00
김치부터 한복까지...한국 의식주 넘보는 동북공정
이면에는 애국주의 교육받은 '링링허우' 세대 있어
마윈 비롯해 연예계·기업도 링링허우 세대 눈치
전문가 "중국의 애국주의 강화는 오히려 도박될수도"

식탁 위 김치가 때아닌 한국과 중국 간 외교 문제로 비화했다. 중국 언론을 비롯해 구독자 수 1400만 명을 보유한 중국인 유튜버가 김치를 자국 음식문화로 소개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장쥔(張軍) 유엔 주재 중국 대사까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김장하는 사진을 올리면서 '김치 논쟁' 불씨가 한중 문화 갈등으로 옮겨붙었다.

한국 역사를 중국에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은 의식주까지 넘보고 있다. 중국 모바일 게임 '샤이닝니키'는 지난해 11월 한복을 한국 전통의상으로 소개한 뒤 중국 누리꾼들에게 벌떼 공격을 받았다. 이들은 "왜 중국 전통의상을 한국에 먼저 업데이트했느냐"며 개발사 페이퍼게임즈에 집단항의했다. 이에 페이퍼게임즈는 "중국 기업으로서 우리 입장은 항상 조국과 일치한다"며 한국 서비스를 철수했다. 중국 누리꾼들의 인해전술에 페이퍼게임즈는 백기를 든 셈이다.
 

[그래픽=김한상 기자]

 
김치는 어쩌다 음식이 아닌 이념이 됐나

한국 의식주에 손을 뻗고 있는 중국 동북공정 광풍 이면에는 링링허우(零零後) 세대가 있다. 이들은 2000~2009년에 출생한 세대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강도 높은 애국주의 교육을 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애플리케이션(앱) ‘쉐시창궈(學習强國·학습강국)’를 출시해 시진핑 지도 이념 전파에 열을 올리고 있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링링허우 세대 맞춤형 사상 교육인 셈이다. 이 앱은 지난 2019년 1월 출시한 뒤 이용자 수 1억 명을 돌파해 앱 다운로드 횟수 1위에 올라섰다.

특히 링링허우 세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유년 시절에 겪으면서 세계 강대국으로 올라선 중국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심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공산당의 모바일 앱 '쉐시창궈(學習强國)'[사진=로이터 통신 사진 캡처]


철저한 사상 교육을 받은 링링허우 세대는 외교 문제에 집단 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2019년 10월 미국프로농구(NBA) 휴스턴 로키츠의 대릴 모리 단장이 홍콩 '반중국 시위'에 지지 의사를 보내자 중국 누리꾼들이 찢어진 NBA 입장권 사진을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올린 것이다. 류양이라는 웨이보 이용자는 "1만6000위안을 주고 표를 구했지만, 난 농구팬이기 전에 중국인"이라고 말했다.

다른 이용자는 "국가의 존엄과 통일에 비하면 NBA는 공놀이일 뿐"이라며 표 3장을 찢고 티셔츠에 쓰여 있는 '중국'을 가리켰다. 여기에 관영 중국중앙방송(CCTV)까지 합세해 NBA 프리시즌 경기 중계를 잠정 중단하고, NBA와의 모든 협력을 점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실상 NBA 보이콧을 선언한 것이다.

이같은 맹목적 애국주의를 바탕으로 외교 문제에 나서는 링링허우 세대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들은 중국 정부가 한자녀 정책을 폐지하기 전에 태어난 마지막 소황제(小皇帝) 세대로, 부모가 지나치게 떠받들어 키워 이기적이고 버릇이 없다는 편견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링링허우에 대해 "중국에서 가장 독선적인 세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또 일각에서는 유례없이 강한 사상교육을 받은 링링허우 세대를 경계하기도 했다. 중국 주간지 '신주간(新周刊)'은 “링링허우는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으나 (그들이)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부모와 사회가 대신 내렸다”며 “링링허우는 중국 역사상 가장 큰 행운을 타고났지만 가장 불행한 세대”라고 우려했다.
 
링링허우 '독주' 막을 수 없는 이유

문제는 중국에서 링링허우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기업과 연예인 등이 이들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업가인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도 지난해 4월 중국 동영상 사이트 '비리비리(嗶哩嗶哩·bilibili)'에 "996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전생에 덕을 쌓아 얻은 복"이라고 말한 영상을 올린 뒤 링링허우 세대에 '공공의 적'이 됐다.

'996'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6일 일하는 강도 높은 근로 문화를 말하는데 중국 누리꾼들은 마윈을 향해 "자본가의 참모습을 드러냈다", "너나 그런 복 누려라" 등 십자포화를 쏟아냈다. 결국 마윈은 영상을 삭제하며 꼬리를 내렸다. 영상이 올라온 비리비리의 회원은 1억5000만명으로, 이용자 대부분이 링링허우인 10대로 알려져 있다.

중국 연예인들도 링링허우 세대를 의식해 애국주의 편에 서고 있다. 아이돌 그룹 엑소(EXO)의 중국인 멤버인 레이는 2019년 삼성전자와 맺은 광고계약을 돌연 파기했다. 삼성전자가 온라인 사이트에 중국과 홍콩을 구분해 표기한 건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어긋난다는게 이유였다. '하나의 중국'은 중국 대륙과 홍콩, 마카오, 대만은 나뉠 수 없는 하나라는 중국 정부 방침이다.

그룹 갓세븐(GOT7)에서 활동했던 잭슨도 홍콩 출신이지만, 자신의 웨이보에 "홍콩이 부끄럽다"는 글을 올렸다. 그룹 워너원 출신 라이관린도 대만 출신이지만 한 홍보 영상에서 "저는 라이관린입니다. 중국 대만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해 애국주의 흐름에 합류했다.
 

중국 미래를 이끌어갈 '링링허우'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한편, 중국의 동북공정은 애국주의로 무장한 링링허우 세대를 등에 업고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 중앙정법위원회(정법위)는 지난달 13일 공식 웨이보 계정에 김치 논쟁을 ‘구우일모(九牛一毛·아홉 마리 소에서 떨어져 나오는 털 하나, 너무 하찮은 것을 의미)‘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우리 문화적 유산을 보호하는 동시에 중화민족 창조와 혁신 정신을 보호하는데 더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법위는 '김치는 한국 것'이라는 한국 누리꾼 주장에 "속 좁은 인간들의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비꼬았다. 이같은 김치 논쟁을 두고 중국의 비뚤어진 애국주의가 오히려 독이 될 것이란 주장도 있다.

홍명교 동아시아 연구활동가는 지난해 12월 CBS 라디오 '김종대의 뉴스업'에 출연해 "(중국 정부가) 내부 위기를 애국주의 강화로 돌파하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중국 사회 자체가 자본주의로 많이 변한 상황에서 더 이상 사회주의라는 이상을 가지고 교육을 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라며 애국주의를 강화하는 중국 행태를 두고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