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 전략폭격기 띄운 미국...꼬여가는 한국 케미호 사태

2021-01-29 10:59
바이든, 新핵합의에 탄도미사일 추가 조건 예고
이란, 우라늄 농축농도 20%까지 높일 것 반발
예비역 해군 준장 조영주 교수 "나포 첩보 입수하고도 대응 조치 미흡"

미군의 B-52 전략폭격기. [사진=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취임 후 전략폭격기 B-52를 페르시아만 일대에 전격 배치했다. B-52는 '하늘을 나는 요새'로 불리며 미군이 운용하는 전략폭격기 중 가장 큰 규모로 알려져 있다. 최대 31t의 폭탄을 싣고 6400㎞ 이상의 거리를 비행하는 장거리 폭격기다.

AP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는 이란과의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시 이전 보다 더 강력한 협정 체결을 예고했다. JCPOA 후속 협상에서 원 협정문에 없던 탄도미사일 추가 조건을 넣겠다는 것이다. 이란은 다음달 19일까지 미국이 먼저 제재를 풀지 않으면 IAEA의 핵사찰을 제한하고, 우라늄 농축농도를 20%까지 높이겠다고 통보했다.

미국과 이란이 첨예하게 서로의 입장을 관철하며 '핑퐁게임'을 계속하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깊어질수록 억류된 한국 케미호 선원들의 석방이 점점 어려워지는 데 있다.

한국 케미호를 관리하는 선사 등에 따르면 해양오염에 대한 피해 조사를 맡은 보험사 조사관이 이란 해양청으로부터 관련 자료는 물론 승선허가서조차 받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선사 측은 최근 국내 로펌 2곳과 선주상호보험 피앤아이(P&I)를 통해 이란과 두바이 현지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사건 의뢰를 요청했지만 모두 부정적인 답변을 얻었다.

이란이 한국 케미호를 나포한 이유로 한국에 동결된 이란의 석유수출대금이 꼽힌다.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로 한국에 동결된 이란의 석유수출대금은 약 70억 달러(7조8000억원) 규모다. 이란은 밀린 유엔 분담금을 한국에 동결된 자금으로 내는 방안을 한국 정부와 유엔에 제안한 상황이다.

또 다른 이유로 미국의 대(對)이란 군사압박 훈련이 있다. 이란이 한국 케미호를 나포하기 전인 지난해 12월 미국은 이란 옆 쿠웨이트에서 다연장 로켓, 하이마스 실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하이마스 실사격 훈련 일주일 뒤에는 미 본토의 B-52 전폭기가 이란 인근으로 투입됐다. 이례적으로 공중급유기의 연료 공급까지 받아가며 무려 1만 km를 비행했다. 지난해 12월 말에는 아라비아해에 배치된 니미츠 항모에서 슈퍼호넷 함재기가 잇따라 출격하기도 했다.

미국이 이란 앞에서 육·해·공에 걸친 대규모 군사훈련을 감행한 것을 두고, 2018년 JCPOA 파기 이후 이란에서 단행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무력화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군사압박에 이란은 핵시설 우라늄 농축 농도를 20%로 올리겠다며 날을 세웠고, 이 시점에 한국 케미호는 나포됐다.

아쉬운 점은 우리 군이 한국 케미호의 나포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막지 못했다는 점이다.

예비역 해군 준장인 조영주 충남대 국가안보융합학부 해양안보학과 교수는 지난 22일 한국해양전략연구소에 기고한 '한국케미호 억류와 한국의 해양 안보'라는 글을 통해 "이란의 우리 선박 나포와 관련해 사전에 첩보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양국의 우호 관계 유지에 필요한 이란의 요구사항에 대해 외교부와 관계부처 등의 대응조치가 미흡했다. 이와 함께 유사시 나포 예방을 위한 청해부대의 우리 선박 호송 등 필요한 선제적 조치가 미흡했다"고 강조했다.

한국 케미호 사태의 실낱같은 희망은, 현재 외교부가 국내 은행에 예치된 이란 원유 판매대금이 스위스 인도적 교역 채널(SHTA)을 통해 조속히 활용될 수 있도록 관계 당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최근 이란의 숙적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최신예 전투기 F-35 등 230억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를 일시 중단키로 한 것도 협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