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칼럼] LG폰의 충격, 삼성에겐 반면교사다

2021-01-26 19:39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스마트폰이란 인터넷 기능을 장착한 모바일폰이다. 종래 전화기능만 있던 모바일폰에 인터넷 기능을 장착함으로써 손안에 컴퓨터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2007년 미국 애플사가 세계 최초로 아이폰이라는 스마트폰을 세상에 선보임으로써 전 세계 언제 어디서나 시공을 초월해서 인터넷으로 연결할 수 있는 혁명적인 초연결 시대가 열린 것이다. 스마트폰이 출시된 후 인류문명은 상전벽해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 시대가 열리고 게임산업도 모바일게임이 대세로 바뀌고, 스마트폰에 장착된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영업을 할 수 있는 수많은 플랫폼이 등장하며 스마트폰을 바탕으로 한 플랫폼 강자가 글로벌시장을 지배하는 플랫폼 혁명시대가 열렸다. 금융도 종래 점포 위주 금융에서 스마트폰을 토대로 한 핀테크가 활짝 꽃피고 있고, 최근에는 빅테크 기업들의 금융산업 진출도 러시를 이루고 있다. 바야흐로 스마트폰이 없으면 한시도 인류문명이 돌아갈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이런 스마트폰 혁명시대에 LG전자가 지난 26년간 키워온 모바일사업을 접을 것이라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기업의 현실이 얼마나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직면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LG전자가 어떤 회사인가. 삼성전자와 반세기 넘게 경쟁하며 한국 정보기술(IT) 산업을 초일류로 키워낸 주역이다. 가전 경쟁력은 지금도 미국시장 점유율이 삼성·월풀에 이어 3위를 기록하며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고, 피처폰 시절 세계 점유율이 10%에 육박하던 글로벌 강자였다.

초연결시대는 세계 초일류만 살아남는 시대다. 최근까지도 지난 11일 온라인으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인 ‘소비자가전쇼(CES) 2021’에서 차세대 전략 스마트폰 ‘LG롤러블’의 영상을 보여주면서 반전을 노렸지만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매출 63조2638억원, 영업이익 3조1918억원의 사상 최대 실적으로 삼성전자·현대차에 이어 매출 3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스마트폰 부문은 23분기 연속 적자행진을 해왔고 누적적자가 5조원에 달했다. 2007년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스마트폰 출시에 실기하면서 시작되었던 LG 휴대폰의 위기는 끝내 고객들의 외면을 받으며 되돌리기 힘든 지경까지 가고 말았다. 한번 사용된 상품이 고객을 잡아두는 '록인(Lock-in) 효과'가 IT산업에서는 유독 큰 데 따른 것이다.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구조조정은 비록 잘나가던 글로벌 기업도 한순간의 방심이나 잘 못된 의사 결정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글로벌기업이 당면하고 있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노키아, 소니도 같은 길을 걸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수감은 오랜 사법당국의 검토결과이기는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면 한국경제가 당면한 여건을 고려해 볼 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삼성그룹, 특히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의 위상은 누가 봐도 한국경제를 견인하고 있다는 데 이의가 없을 정도다. 삼성은 한국수출의 4분의1을 차지하고 법인세의 5분의1을 내고 있는 대기업군이다. 삼성전자만 해도 2019년 기준 임직원 직고용이 29만명이고, 협력업체만 해도 2208개에 달한다. 또 2020년 매출액이 235조원, 영업이익은 36조원으로 매출상위 9대기업을 모두 합한 영업이익의 2.2배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 제일의 기업이다. 코로나 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투자가 선방하고 있는 데는 삼성전자 반도체와 삼성바이오의 대규모 투자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글로벌로도 메모리반도체 점유율 세계 1위, 스마트폰 점유율 세계 1위, 미국가전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세계 초일류기업이다. 세계 반도체산업 현황을 보면 메모리반도체는 한국이 1위이고, 비메모리 시스템반도체는 여전히 미국이 1위다. 반도체의 시작은 1970년대 미국의 인텔이다. 1980년대에는 NEC, 도시바, 히타치, 후지쓰, 파나소닉 등 일본기업이 주도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소니가 이미지센스 정도만 생산할 뿐 완전히 몰락했다. 한국이 메모리반도체에서 미국, 일본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선 데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1980년대만 해도 불모지였던 반도체에 진출해 막대한 투자를 해온 삼성전자 덕분이다. 삼성 고(故) 이병철 회장이 1983년 한국반도체 육성을 위한 ‘도쿄 선언’을 했을 때, 당시 미쓰비시연구소가 ‘삼성이 반도체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비웃던 일도 있었을 정도로 한국은 반도체 불모지였다.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2030년까지 세계 1위가 되기 위한 비전을 선포하고 경기도 화성에 대단위 투자를 하고 있다. 모바일폰에서도 미국의 애플, 일본의 소니 등을 제치고 한국이 1위로 올라선 데는 삼성전자가 1등공신이다. 1980년대 소니의 워크맨을 차고 다니던 세대로서는 한국 전자산업이 일본을 제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도 못했을 것인데, 삼성이 그 위업을 이루어낸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불모지나 다름없던 바이오 산업에도 삼성바이오가 진출해 인천 송도에 제4공장을 추가로 설립하는 등 2023년까지 CMO(위탁생산) 시장점유율을 30%까지 올려 세계 1위를 목표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LG전자의 모바일사업 손절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치열한 글로벌 경쟁 환경은 한순간에 글로벌 1위에서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4차 산업혁명의 쌀이라고 일컫는 반도체는 반도체 굴기를 외치며 사력을 다하고 있는 중국과 미국이 경제패권의 사활을 걸고 ‘반도체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이로 인해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부문에서는 여전히 세계 1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반도체 위탁생산인 파운드리업체로서는 대만의 TSMC가 세계점유율 64%로 부동의 세계 1위다. 한국은 18%로 2위, 중국이 6%로 3위를 점하고 있다. 반도체공장 하나 건설하는 데는 대개 10조~30조원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오너의 결단이 없이는 불가능한 투자규모다. 대만의 TSMC는 파운드리 1위를 지키기 위해 금년에만 31조원에 달하는 설비투자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의 반도체 전쟁 가운데 살아남아야 하는 지상과제를 안고 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삼성이 애플을 제치고 1위를 고수하고 있지만 그 폭이 줄어들고 있다. 삼성은 2020년에 글로벌시장에서 2억6300만대를 팔았는데 2021년에는 2억6700만대 판매가 전망되고 있다. 반면 애플은 2020년에 글로벌시장에서 1억9900만대를 팔았는데 2021년에는 2억2900만대 판매가 예상된다. 2021년에 1억9800만대 판매가 예상되는 중국 샤오미의 추격도 거세다. 특히 중국시장의 부진이 발목을 잡고 있다. 2014년까지만 해도 삼성은 중국 시장에서 스마트폰 1위를 자랑했지만 이젠 7위로 밀려난 상태다. 과감한 초격차 투자가 필요한 실정이다. 삼성바이오는 과감한 투자와 시장 개척을 통해 금년에는 매출 1조원 시대를 열어야 한다. 전기차시대를 맞아 현재 글로벌시장 점유율 5.8%에 불과한 배터리시장에서도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글로벌시장에서 초격차 유지를 위해서는 글로벌 초일류기술기업의 공격적인 인수·합병도 중요하다. 실리콘밸리 IT기업들은 초일류기술기업의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초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구글이 인공지능 육성을 위해 2014년 영국 딥러닝업체 딥마인드를 인수·합병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구글, 애플은 매년 10여개의 글로벌 초일류기술기업을 인수·합병해 오고 있다. 해마다 4~6개씩 인수·합병해 오던 삼성은 2017년 이재용 부회장 구속 이후 이렇다 할 중요 기술기업의 인수·합병이 중단되다시피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기술기업 인수·합병으로는 삼성페이를 출시하기 위해 '마그네틱 보안 전송(MST)' 특허를 보유한 루프페이의 인수·합병(2015년)과 자동차 전장사업체 하만을 80억 달러(약 9조2000억원)에 인수·합병(2016년)한 것이다. 이러한 대규모 인수·합병도 역시 오너의 결단이 없이는 불가능한 투자규모다.

총수 부재 리스크는 이처럼 대규모 투자와 대규모 기술기업 인수·합병의 어려움으로 인해 글로벌 초격차 유지를 위한 '뉴삼성' 글로벌 경영전략에 차질을 가져올 우려가 크다. 잘못하면 치열한 4차 산업혁명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될 우려도 있다. 지배구조 개편과 회장 취임 불확실성 문제도 크고 11조원 상속세 납부 문제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일명 삼성생명법이라고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의 국회처리 가능성도 삼성을 압박하고 있고, 상법 시행으로 3% 룰 적용 시 경영권을 공격 받을 우려도 적지 않다. 이처럼 산적한 과제를 두고 이 부회장이 구속수감된 것이다.

CES 주최기관인 미국소비자기술협회의 게리 샤피로 회장은 2021년 CES에서 "AI가 주도하는 디지털혁명이 가속화되고 있는 앞으로의 2년은 지난 200년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반도체, 모바일, 인공지능, 전기차 등 앞으로 2년이 초격차 확대의 골든타임이라는 의미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총수 없는 삼성이 제대로 글로벌 초격차 경쟁력을 유지해 한국경제를 견인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한순간의 잘못된 의사 결정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구조조정을 보면서 위기감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