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다케오와 전주, 두 도시 이야기
2020-12-28 19:47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 ‘지방소멸대응 TF팀’이 출범했다. 그만큼 지방은 위기에 처했다. 지방 소멸시대, 어떻게 하면 지방을 살릴 수 있을까. 한국과 일본 두 도시에서 해답을 찾아보자. 일본 다케오(武雄)시와 전주시 이야기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지방소멸을 겪는 중이다. 일본은 2014년 ‘지방소멸 보고서’를 계기로 지방에 눈을 돌렸다. 총리 직속 기구로 ‘마을·사람·일 창생본부’를 설치하고 관련 법 제정, 5개년 종합계획을 추진했다.
창의적인 성공 사례도 소개됐다. 아사히야마(旭山) 동물원, 나오시마(直島) 예술 섬, 다케오(武雄) 시립도서관. 이들 세 지역은 각각 동물원, 미술관, 도서관을 매개체로 살아났다. 쇠락한 지역에 관광객이 몰리고 일자리가 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이 가운데서도 다케오시는 드문 사례다. 도무지 흥미 없을 것 같은 책과 도서관을 밑천 삼아 성공했다. 전주시 또한 책과 도서관을 앞세워 도시 정책을 추진 중이다. 성공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후쿠오카와 나가사키 사이에 위치한 다케오시는 소도시다. 인구는 5만명에 불과하다. 일본 평균을 웃도는 고령화에다 특별할 것 없는 농촌이다. 다케오시는 도서관을 리뉴얼함으로써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목표는 ‘사람이 찾는 편안한 도서관’. 도서관은 조용히 책을 읽거나 빌려가는 곳이라는 고정관념부터 깼다. 대신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며 대화도 나누는 공간으로 바꿨다. 이용자 중심 운영 방식과 편안한 내부 공간 배치는 사람을 불렀다.
사람은 줄고, 신생아 울음은 그친 지 오래다. 빈집과 폐교도 해마다 늘고 있다. 한때 50만에 달했던 마산시 인구는 36만여명으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호남선과 전라선이 분기하는 요충지 익산시도 최근 40년 동안 무려 25% 이상 급감했다. 반면 1960년대 전체 20%에 불과했던 수도권 인구는 절반을 넘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전국 228개 기초단체 가운데 46%에 해당하는 105곳이 소멸위험 단계에 접어들었다.
전주시 인구는 65만명, 작은 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지방도시 특유의 정체는 피하기 어렵다. 한때 뜨거웠던 한옥마을 열기도 식었다. 전주시는 ‘품격 있는 도시’를 내걸고 재도약을 꿈꾼다. 획일적인 성장과 개발 대신 가장 한국적인 도시를 지향한다. 놀고먹는 도시가 아니라 존중받는 도시다. 책과 도서관을 얽은 ‘책 중심 도시’는 그 대안이다. 시청사 로비를 도서관으로 바꾼 것은 이런 정책 의지를 담고 있다. 다양한 도서관 정책은 귀를 붙잡는다.
테마 도서관은 흥미롭다. 호수, 길, 정원, 예술, 시가 주제다. 아중호수를 따라 270m짜리 도서관을 짓는 도시계획심의 절차가 진행 중이다. 개관하면 명소로 부상할 게 분명하다. 길게 늘어선 도서관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책을 읽다 수다를 떠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또 무형유산전당 인근에는 길(道) 전문도서관이 들어선다. 신정일, 서명숙, 한비야 등 평생 걷기에 힘써온 이들이 쓴 책을 소장하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걷기 강좌를 한다.
덕진공원에는 정원(庭園)전문도서관, 서학동 예술마을에는 예술전문도서관이 들어선다. 또 책 쓰는 도서관, 책 만드는 도서관도 구상 중이다. 내년 초 개관하는 시(詩)전문도서관은 김용택 시인을 명예관장으로 모실 예정이다. 동네책방도 활성화한다. 김승수 시장은 “책 쓰기-출판-도서관·서점-책 읽는 개인과 동아리를 연결하는 책 중심 도시를 추진 중이다. 관광객들은 도서관을 여행하면서 전주가 지닌 인문학적 자산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책을 읽지 않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다. 책과 도서관은 지방 소멸시대 대안이 될까. 다케오시는 도서관이 사람과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확인시켰다. 전주시가 성공한다면 또 하나 성공 모델을 추가하게 된다.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만든 건 유년시절을 보낸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라고 했다. 두 도시가 가져올 변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