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新아방강역고-12] 일본은 고려의 속국이었다

2020-12-29 07:00
'고려는 황제국' 스모킹건 12선<9>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

일본은 고려의 속국이었다(고려사·사고전서)
∙ 왜국은 일본국이다. 본래 이름인 왜를 부끄러워했는데, 동쪽 끝에서 스스로 일본이라 부른다.
지금 고려에 신하로서 속하고 있다. (倭國乃日本國也,本名倭,既耻其名,又自以在極東,因號日本也。今則臣屬高麗也.)
- 『사고전서』, 「도화견문지」

‘고려는 황제국’ 증거는 『고려사』와 『사고전서』 등 한·중 양국 정사와 대표문헌에도 무수히 많이 기록돼 있다. 이를 다 말하려면 『아라비안나이트(천일야화)』처럼 1001일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다 못할 것 같다. 그리하여 필자는 앞서 이야기한 ‘고려는 황제국’ 11개 스모킹건에 이어 나머지 12개 작은 스모킹건을 간략히 요약하고자 한다.

1. 고려제국의 통치체제는 황제국 체제다. 중서문하성과 상서성과 6부(이·병·호·형·예·공)로 이루어진 2성6부(二省六部) 황제국의 중앙정치체다, 제후국 조선은 성(省)은 없이 6조(六曹)를 사용했다.

2. 황제국 고려는 제국의 수도 개경을 '황성(皇城)' 또는 '황도(皇都)' 부르고 대도시 행정단위를 개경, 서경(평양), 남경(한양), 동경(경주)과 같은 '경(京)'이라 불렀다. 제후국 조선은 한양부, 전주부, 함흥부, 평양부, 계림부(경주)등 경이 아닌 '부(府)'의 행정단위 명칭을 써야 했다.

3. 고려제국의 수도 개경의 구조는 황제국 송나라 수도 개봉보다 한 개 더 많은 나성(외성), 내성, 황성(발어참성), 궁성 순의 4중구조였다. 제후국 조선은 궁궐만 세우고 궁궐 주변에 1개 담장같은 성벽을 쌓은 단일 구조였다.

4. 황제에 대한 경칭이자 황제 자체를 의미하는 ‘만세(萬歲)’를 사용했다. 고려 황제의 제1정전인 '연경궁 정전 상량문'에는 '주상만세만세(主上萬歲萬歲)'라는 구절이 있다. 조선왕국 군주는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 10월 12일 이전까지 천세(千歲)를 사용해야만 했다.

5. 고려 역대 황제와 황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태묘(太廟)라고 했다. 조선왕국은 태묘라 하지 못하고 종묘(宗廟)라고 불렀다. 황제와 황비의 제사명을 대사(大社), 기타 황실 가족의 제사명을 왕사(王社)로 칭했다. 조선은 국사(國社)로 불렀다.

6. 고려 황제들은 견행력(見行曆)·칠요력(七曜曆)· 태일력(太一曆)등 황제국 고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역법(달력)을 제정했다. 철리국 정안국 등 고려 주변국에서 고려제국의 역법을 받아 사용했다는 기록은 고려가 황제국으로 행동했다는 증거다.

7. 고려 황제와 태자 태후의 생일을 절일(節日)로 만들어 기념하였다. 제후국의 군주는 탄일 또는 생일을 썼다. 예: 문종; 성평절, 태자; 장흥절/ 예종; 함춘절, 태자; 영정절, 태후: 지원절 등

8, 고려 황제의 집무실(정전)의 명칭앞에 천자국만이 쓰는 '하늘 천(天)'을 붙였다. 제1정전 연경전을 '천복전', '천성전'으로, 제2정전 수덕궁을 '천덕전', '천령전'으로, 제3정전 구제궁의 정전을 '천흥전'으로 불렀다

9. 고려제국 수도인 개경의 모든 문에도 '하늘 천(天)'을 붙여 불렀다. 천우문', '승천문', '통천문', '좌우조천문', '천복문', '천덕문이라 불렀다. 만월대를 '천지(天墀)', '천구(天衢)', '천문(天門)'이라 불렀다

10. 황제의 후계 왕자를 태자(太子)로 불렀으며, 태자에 대한 경칭이 왕에 대한 칭호 '전하'였고 '태자부‘라는 직속기관을 별도로 설치했다. 태자외의 왕자들은 '제왕(諸王)'이라 통칭하였고 산하기관은 '제왕자부'였으며 '영공전하'라 불렀다.

11. 고려 황족의 결혼을 '천인(天姻)'이라 했고 고려 황제가 내리는 사면령은 '대사천하(大赦天下)'라 했다. 조선 국왕은 사(赦)라 못하고 ‘유’(宥) 또는 영지 경내에 내리는 (宥境內)라 해야 했다. 대외국호 고려공화국 우리나라 대통령의 사면권은 유일하게 남은 고려제국의 유산이라 할까?

12. 고려제국은 일본, 동여진, 서여진, 흑수말갈, 흥요국, 정안국, 철리국, 탐라등 수십개 나라와 민족을 제후국으로 부렸다.

『사고전서』속의 송대의 저명학자 곽약허(郭若虚)의 『도화견문지图画见闻志』(1080년) ‘고려국(高麗國)’편(1)*에는
“왜국은 일본국이다. 본래 이름인 왜를 부끄러워했는데, 동쪽 끝에서 스스로 일본이라 부른다. 지금 고려에 신하로서 속하고 있다(倭國乃日本國也,本名倭,既耻其名,又自以在極東,因號日本也。今則臣屬高麗也).”로 기록, 일본을 고려의 속국으로 명시하고 있다.
 

『사고전서』 『도화견문지图画见闻志』‘고려국(高麗國)’ 좌측 끝부분 상단에 “왜국은 일본국이다. 본래 이름인 왜를 부끄러워했는데, 동쪽 끝에서 스스로 일본이라 부른다. 지금 고려에 신하로서 속하고 있다"倭國乃日本國也,本名倭,既耻其名,又自以在極東,因號日本也。今則臣屬高麗也”로 명기되어 있다.[자료=강효백 교수 제공]



◆◇◆◇◆◇◆◇참고문헌

(1)*高丽国
皇朝之盛,遐荒九译来庭者,相属于路。惟高丽国敦尚文雅,渐染华风,至于伎巧之精,他国罕比,固有丹青之妙。钱忠懿家有着色山水四卷,长安临潼李虞曹家有《本国八老图》二卷,及曾于杨褒虞曹家见细布上画《行道天王》,皆
有风格。熙宁甲寅岁,遣使金良鉴入贡,访求中国图画,锐意购求,稍精者十无一二,然犹费三百余缗。丙辰冬,复遣使崔思训入贡,因将带画工数人,奏请模写相国寺壁画归国,诏许之,于是尽模之持归。其模画人颇有精于工法者,彼使人每至中国,或用折迭扇为私觌物,其扇用鸦青纸为之,上画本国豪贵,杂以妇人鞍马,或临水为金砂滩,暨莲荷、花木、水禽之类,点缀精巧;又以银泥为云气月色之状,极可爱,谓之倭扇,本出于倭国也,近岁尤秘惜,典客者盖稀得之。倭国乃日本国也,本名倭,既耻其名,又自以在极东,因号日本也。今则臣属高丽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