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EP 시대 윈난성이 뜬다]중국이 850조원 쏟아붓는 이유

2020-12-29 06:00
中·아세안 잇는 관문, 전략가치 상승
독자 산업망 구축·美 포위 약화 임무
RCEP 체결로 취소된 박람회도 부활
향후 5년 新인프라 건설 5조 위안 투입

지난 12일 중국 윈난성 쿤밍에서 열린 '중국·남아시아 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한 롼청파 윈난성 서기(오른쪽 일곱째) 등 현지 지도부와 아세안 및 남아시아 국가의 주쿤밍 총영사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이재호 기자 ]


지난 12일 중국 윈난성 쿤밍(昆明)에서 개최된 '중국·남아시아 박람회(南博會·난보후이)' 개막식 현장.

단상에 오른 왕위보(王予波) 윈난성 성장은 "윈난성은 중국과 동남아시아·남아시아를 잇는 개방의 길목"이라며 "일찍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동남쪽을 주목하라고 강조한 바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최근 열린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5중전회)에서 쌍순환(雙循環) 발전 전략이 새로 채택됐다"며 "이를 통해 주변국에 더 많은 사업 기회와 개방의 성과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왕 성장에 이어 축사에 나선 뤄자오후이(羅照輝) 외교부 부부장은 지난달 체결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언급하며 "글로벌 경제 회복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RCEP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호주·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협정(FTA)이다.

뤄 부부장은 "일방주의가 만연하고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도 올 상반기 중국과 아세안 간 교역액은 4820억 위안(약 81조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5%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도 아세안 지역을 특별히 중시한다"고 덧붙였다.

쌍순환 전략의 핵심은 자립과 자강이다. 내수 중심(국내 대순환)으로 발전하되, 중국 주도의 가치·산업사슬(국제 대순환)을 완성하려면 외부의 호응도 중요하다.

RCEP 체결은 미국의 대중 포위망을 약화시킬 수 있는 호재다. 특히 중국 의존도가 높은 아세안 및 남아시아와의 협력 강화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중국 본토와 해당 지역을 잇는 길목에 자리한 윈난성이 RCEP 시대의 새 허브로 각광 받는 이유다.
 

지난 12일 중국 윈난성 쿤밍에서 열린 '중국·남아시아 박람회' 개막식에서 런훙빈 상무부 부장조리가 화상으로 축사를 하는 동안 베트남 상무부 관료들(오른쪽 화면) 역시 화상 연설을 준비 중이다. [사진=이재호 기자] 


◆취소된 박람회, RCEP 계기로 부활

2013년 처음 열린 난보후이는 이번에 6회째를 맞았다. 당초 올해 행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개최되기 어려웠다.

지난 5월 난보후이 집행위원회는 행사 취소를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중국 내 코로나19가 잦아들고 RCEP 체결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윈난성 정부는 난보후이를 개최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온라인 플랫폼 기업 징둥의 기술 지원을 받아 화상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개막식에는 롼청파(阮成發) 윈난성 서기 등 지방정부 수뇌부가 총출동했고, 아세안과 남아시아 7개국 총영사를 초청하는 등 구색을 맞추려 노력했다.

행사 관계자는 "취소된 행사를 다시 준비하느라 힘들었다"며 "상부의 의지가 강했다"고 귀띔했다.

아세안과 남아시아 지역 국가의 정부 관료들이 현지에서 생방송으로 개막식에 참석한 것도 이색적이었다.

이들 역시 중국과의 협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파키스탄의 상무부 특별비서는 "이번 박람회에 파키스탄 기업 36곳이 참가했다"며 "중국의 경험을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덕담을 건넸다.

라오스와 스리랑카 관료들도 전자상거래·디지털 금융 등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해 나가자고 말했다.
 

중국이 아세안과 남아시아를 겨냥한 무역 창구로 육성 중인 쿤밍 자유무역시험구 전경. [사진=이재호 기자 ]


◆주변국과 산업·공급사슬 형성 주력

중국이 내년부터 시행하는 14차 5개년 계획(14·5계획)에는 30조 위안 규모의 신(新) 인프라 투자 예산이 포함됐다.

총 12개 성(省)에 배정됐는데 윈난성에만 5조 위안(약 846조4000억원)이 투입된다.

철도·도로 등 기존 인프라 프로젝트 외에 5G·신재생에너지 차량 충전소·빅데이터 센터 등이 포함돼 있다.

윈난성에 거액을 쏟아붓는 건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를 겨냥한 포석이다.

미국의 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중국은 반도체 등 핵심기술 확보와 더불어 독자적인 산업·공급사슬 형성이 시급하다. 이는 최근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도 언급된 내용이다.

특히 저부가가치 소비재를 생산하던 역할을 아세안과 남아시아 등에 넘기고 가치사슬의 윗 단계로 도약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과 두 지역을 연결하는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왕 성장은 난보후이 개막 연설에서 "윈난성은 쌍순환 전략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며 "산업·공급사슬 형성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방문한 쿤밍 자유무역시험구. 기자와 만난 장추(張秋) 제도혁신부 부장은 윈난성의 지리적 이점에 대해 장시간 설명했다.

중국은 올해 막 문을 연 쿤밍 자유무역시험구를 아세안과 남아시아로 향하는 무역 창구로 육성 중이다.

장 부장은 "윈난성은 아세안 및 남아시아와 커우안(口岸·국경 통과 지점)으로 직접 연결돼 물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며 "동남아 국가들과 문화·인문 등 영역의 공통점이 많아 소통도 용이하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의 서남부 변경 지역 국가들은 발전 단계가 다 달라 맞춤형 협력이 필요하다"며 "주변국과 함께 발전하는 게 목표"라고 부연했다.

이어 "많은 글로벌 기업이 윈난성으로 오고 있다"며 "아세안과 남아시아에 관심이 있는 한국 기업도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고 웃으며 말했다.